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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Sep 03. 2024

불면증 (11)




     꽃집을 하고는 있었지만 현태는 딱히 꽃이나 식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꽃이나 식물이 생물이라는 지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꽃이란 그저 공장에서 찍어 나오는 공산품과 다를 바가 없었고, 자신 역시 물건을 떼어다 파는 장사꾼에 불과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꽃을 사주는 고객들의 심정에도 냉담했다. 길어야 고작 2주 후면 시들어 버릴 꽃다발에 몇 만원씩 지불하다니, 참 한가하고 값비싼 허영이 아닌가 하고 속으로 혀를 찰 때조차 있었다. 물론 그 덕에 그가 먹고 살고 있으니 비난 할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청년이 돌아가고 난 뒤, 현태는 영수증 정리를 조금 하고는 다시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요즘 들어 그는 가게에서 조는 일이 잦아졌고 또 조는 시간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오늘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책상에 엎드려 깊은 잠에 빠진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밤마다 망을 보는 일이 점차 그의 일상생활을 짓누르고 있었다. 스물스물 몸도 아프고, 머리도 무겁고, 쉽게 짜증이 나는가 하면 또 눈도 깜짝 하기 싫을 만큼 무기력해 지기도 했다. 어쩌면 그가 망보는 짓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도 이 무기력증의 악순환 때문인지도 몰랐다.

     저녁때쯤 중년 여자 둘이 집들이 선물로 산세베리아와 아레카야자 화분을 사 간 후로 더 이상 손님은 오지 않았다. 저녁밥은 귀찮아서 건너뛰고 다시 자리에 앉아 몇 번이나 졸다 깨다를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퇴근 시간인 9시가 되었다. 그는 굳어져버린 몸을 억지로 일으키며 거창하게 기지개를 켰다. 오늘도 참으로 긴 하루였다. 그리고 그 긴 하루도 결국에는 끝이 나기 마련이었다. 그는 대충 주변 정리를 끝낸 뒤 마지막으로 전등을 껐다. 실내가 어둠에 휩싸이자 낮지만 무거운 한숨소리가 사방에서 들리는 듯 했다. 하루 종일 햇빛과 전깃불과 사람의 활기에 시달렸던 식물들은 마침내 찾아온 적막한 어둠이 반가웠을 것이다. 

     그는 가게를 나와 문을 잠그고 셔터를 내렸다. 예전에는 그냥 문만 잠그고 말았었는데 5개월 전 새벽에 누군가 가게 앞에 버려져 있던 화분으로 쇼윈도 창문을 깨고 달아난 뒤 꼭 셔터도 함께 내리고 있었다. 셔터에 자물쇠를 채우고 옆을 돌아보니 이미 수철의 가게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슬쩍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불 꺼진 핸드폰 가게는 길쭉한 유리 진열대들과 커다란 책상들이 덩그렇게 놓인 채 을씨년스러웠다. 

     보통 수철은 집으로 돌아가기 전 현태에게 들려 인사를 했다. 날짜로 치자면 365일중 300일 정도는 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나머지 65일은 왜 말없이 돌아가는지, 300일과 그 65일의 차이는 무엇인지 현태는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수철은 무심코 내키는 대로 했을 뿐일 테지만 수철이 말없이 돌아간 날이면 괜히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었다. ‘무심코’나 ‘내키는 대로’에도 어떤 공식이 있지 않을까? 그는 구부렸던 어깨를 뒤로 젖히며 한 손으로 마른 이마를 지그시 문질렀다. 과연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미세하게 살아가고 있을까. 불 꺼진 수철의 가게를 기웃거리고 있는 자신이 가소롭기만 했다.

     터덜터덜 차를 몰고 집에 도착한 현태는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길고 장대하게 숨을 내쉬었다. 마치 하루 종일 숨을 내보내지 않고 몸속 깊이 꾹꾹 담아두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그는 남은 숨을 마저 흘려보내며 반듯하게 허리를 폈다. 하루 종일 햇빛과 전깃불과 사람의 활기에 시달렸던 그로서는 두꺼운 벽으로 빈틈없이 둘러싸여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가게에서처럼 누군가 집 안으로 불쑥불쑥 들어올 염려가 없다는 건 크나큰 축복이었다. 하긴 오늘 날 혼자가 되고 싶지 않은 도시인이 누가 있겠는가. 심지어 혼자 있을 때조차 충분히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괴로울 지경이 아닌가. 좀 더 철저하게 고립되어 세상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고립시키고 싶다는 바램은 요즘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평범한 판타지였다

     그는 냉장고를 뒤져 바나나 한 개와 차갑게 식어 딱딱해진 주먹밥 두 개를 찾아냈다. 그는 바나나와 주먹밥을 묽게 탄 커피 한잔을 곁들여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밥을 삼키는 와중에도 잠은 어김없이 몰려들었다. 낮에 그만큼 졸았는데도 별 소용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괴로운 심정으로 둥그런 금속 재질의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고작 10시 40분 이었다. 잠자리에 들기까지는 아직 5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그는 잠시 우두커니 소파에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수많은 차들이 찻길을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곧 11시를 기점으로 차량이 줄어들고 자정이 지나면 눈에 띄게 뜸해질 것이다. 그 때가 고양이들이 찻길 주변으로 슬금슬금 모여들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운이 없으면 그 중 한 마리가 비명횡사하게 될 것이다. 어제는 무사히 넘어갔지만 오늘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창가에 놓인 노란색 철제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턱을 괴고 거리를 내다보았다. 어느새 희끗희끗 약한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눈보라가 물결치는 아스팔트와, 이빨 빠진 듯 드문드문 불을 밝힌 고층 건물들,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들, 빨간 불빛에 매달려 있는 신호등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 바로 밑으로는 방금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희뿌옇게 얼어붙은 어둠 속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현태는 어서 빨리 자정이 지나 차도 사람도 없는 텅 빈 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깨끗하고, 고요하고, 모두에게 잊혀진 거리 말이다. 그가 밤을 지새우면서 유일한 얻은 소득이라면 자신이 새벽의 텅 빈 밤거리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는 점이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어두운 창가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그 순간이야 말로 그는 자기 자신을 가장 선명하게 느끼곤 했다.

     그때 갑자기 현태의 빌라 옆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튀어나와 쏜살같이 찻길을 가로질렀다. 고양이는 달려오던 차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재빨리 건너편 골목으로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현태는 미처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얼떨결에 양 주먹을 앞으로 불쑥 뻗었을 뿐이었다. 아차 했으면 큰일 날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다. 건너편 길에서 달리고 있던 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급정거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마터면 고양이가 차에 치여 죽는 꼴을 눈 앞에서 볼 뻔하지 않았나. 하긴 고양이가 차에 치이지 않도록 망을 본다는 건 그만큼 고양이가 차에 치이는 광경을 볼 확률이 높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는 처음 고양이 사채를 봤을 때가 떠올라 두 다리를 바짝 움츠렸다. 

     일 년 반쯤 전 봄날 아침, 그는 일찌감치 잠자리에서 일어나 이빨을 닦으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별히 무얼 보려고 한 건 아니었고 그저 초점 없이 거리로 시선을 두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출근길에 나서는 자동차들이 무언가를 피해 줄줄이 차선을 옮기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자세히 보니 아침햇살이 하얗게 내리쬐고 있는 넓직한 아스팔트 길 한가운데에 고양이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것은 황토색과 잿빛이 섞인 덩치 큰 고양이었다. 터진 옆구리에서는 내장 한쪽이 죽 찢겨 나와 엉겨있고 주변 아스팔트는 온통 검붉은 바퀴자국으로 어지러웠다. 고양이의 얼굴은 털에 묻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오그라든 네 발을 있는 힘껏 앞으로 뻗치고 있는 모양새가 징그럽도록 선명했다. 분주한 도시의 아스팔트 차도 한가운데에 널부러진 고양이 시체라니, 현태에게는 그것이 역겨운 장면이기에 앞서 참으로 가당치않게 느껴졌다. 적나라한 궤변을 들었을 때처럼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이다. 대체 저 고양이는 몇 시에 차에 치인 걸까? 정확히 몇 시 몇 분 몇 초에? 한참을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던 그는 냉냉한 치약 맛에 헛구역질이 치밀어 올라 화장실로 뛰어가 재빨리 입을 헹구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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