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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Sep 10. 2024

불면증 (12)




     그가 출근하기 위해 빌라를 나섰을 때는 죽은 고양이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치워진 후였다. 고양이의 사체를 바로 눈앞에서 볼 생각에 바짝 긴장하고 있던 그로서는 이만저만 마음이 놓였던 게 아니었다. 핏자국 흔적이 아직 도로에 남아있긴 했지만 이미 핏자국인지 기름 자국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서둘러 가게로 출근한 현태는 그 날도 바쁜 하루를 보내며 죽은 고양이에 대해서는 깨끗이 잊어버렸다. 어차피 흔하디흔한 길고양이 중 하나일 뿐이었다.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어도 상관없었을 있으나 마나한 생명이었다. 오늘이 아니었어도 멀지 않은 날에 역시나 이렇게 혹은 저렇게 죽고 말았을 것이다. 

     현태는 퇴근 후에 수철과 거하게 한잔 하고는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니 어느새 그의 머릿속은 죽은 고양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현태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놀랍게도 고양이 사체가 놓여 있던 자리에는 여전히 짙은 얼룩이 선명했다. (핏자국은 그 뒤로도 며칠 동안 남아있었다. 핏자국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 그는 그 때 처음 알았다.) 그는 누군가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혀를 찼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불행한 일이었지만 불행은 세상에서 가장 흔한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이것은 불행 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로 사소하기만 했다. 그런데도 현태는 그날 밤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찻길과 그 사이에는 그저 얇디 얇은 벽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과연 상징이 실용이 된 것일까 실용이 상징이 된 것일까. 그는 마치 길바닥에 누워있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떨었고 당장 무언가 찻길로 뛰어들 것 같은 강박에 전전긍긍하다가 날이 밝아오기 직전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끝없이 반복되는 오랜 불면의 밤들의 시작이었다.

     딴 생각에 빠져 있던 그는 혹시 자신이 졸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눈은 그쳐 있었다. 하얀색으로 얼룩덜룩한 밤거리는 춥고 지루해 보였다. 벽시계를 보니 시간은 새벽 3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 11시쯤 고양이가 길을 건넌 이후로는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았으니 오늘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하룻밤에 3번, 4번씩 쫒아나가야 할 때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지치곤 했다. 이렇게 밤을 새워가며 지키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지 궁리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고양이들이 싫어한다는 레몬즙을 길가에 뿌려 볼까, 고양이들에게 거슬리는 소리를 밤새 거리 쪽으로 틀어놓아 볼까, 길 가에 난간을 설치해달라고 구청에 요청해 볼까 등등, 이리저리 머리도 짜내보고 그 중 몇 가지는 실행에 옮겨보기도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특히 내심 큰 기대를 가지고 구청에 찾아 갔던 일은 여러 사람들의 비웃음만 샀을 뿐이었다. 

     “사람도 아니고 고작 길고양이들 때문에 찻길에 난간을 만들어요? 예산이 남아 돕니까?”

     왼쪽으로 가르마를 탄 머리를 귀 뒤로 말끔하게 넘긴 구청 직원이 딱딱하게 덧붙였다.

     “죽은 고양이는 최대한 빨리 치워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늦어지면 이 번호로 연락 주십시오. 1시간 내로 처리해 드릴테니까요. 그 이상의 조치는 힘들어요.”

     직원의 심퉁한 반응에 화가 치밀어 오른 현태는 하마터면 그 직원을 붙잡고 자신의 매일 밤의 노고에 대해 털어놓을 뻔했다. 단지 고양이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자신의 고충을 하소연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구청 직원은 위로는커녕 분명 조롱섞인 충고만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만 두세요. 무슨 바보 같은 짓입니까? 그렇게 한가해요? 제발 당신 일에나 신경 쓰세요. 당신 인생도 다른 사람들의 인생만큼이나 번잡하고 한심할 거 아닙니까. 더 중요한 일을 하시라구요.]

     그 말이 옳았다. 현태가 그 공무원이었어도 똑같이 얘기했을 것이다. 고양이가 이 동네에 살게 된 것, 재개발이 이루어진 것, 공터가 찻길이 된 것, 고양이들이 찻길을 건너다니는 것, 그러다가 차에 치여 죽는 것, 이 모든 것에 현태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일말이라도 책임이 있을 리 만무했다. 방관이나 방치도 무책임의 일종이라는 주장은 말도 안되는 억지였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문제에 대해 모든 책임을 져야한다는 따위의 최신 유행하는 헛소리. 그런 식이라면 길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에도, 신호등 고장에도, 불량식품에도, 노숙자에게도, 남녀 차별에도, 물가 상승에도, 빈부 격차에도, 환경오염과, 출산율 저하와, 자살률 상승과, 전쟁과, 고아와, 불치병과, 권력 비리와, 수철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들어대는 그 거대한 음모에 대해서도 모든 개인들이 일일이 책임을 떠맡아야만 했다. 그럼 어찌할 것인가. 길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줍기 위해, 추운 골방에서 떨고 있는 노인을 돕기 위해, 전쟁터에서 포탄에 맞아 죽어가는 소녀를 구하기 위해, 불치병을 연구하기 위해, 자살을 막기 위해,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음모의 수장들을 단죄하기 위해 모두가 뛰쳐나가야만 하는가? 그는 그럴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는 설사 가까운 지인이 자살을 하더라도 죄의식에 빠져드는 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성인이고, 성인인 우리는 각자의 무한한 자유와 책임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며, 성인인 상대방의 무한한 자유와 책임에 간섭할 수 있는 권한은 그 누구에게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고작 찻길에서 죽어나가는 길고양이들 때문에 이토록 쩔쩔 매고 있으니 참으로 영문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마침내 새벽 4시가 되자 현태는 잠자리에 들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는 양치질과 세수를 한 뒤 전등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커튼 없는 창문에서 비쳐드는 거리의 가로등과 교회 네온사인 불빛 때문에 실내는 훤하게 밝았다. 아직도 창문 밖에서는 차 지나가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고 있었다. 현태는 벽 쪽으로 돌아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 올렸다. 이제 그만 이 지긋지긋했던 하루를 끝내고 싶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하루라고들 하지만 실상 어제와도, 내일과도 다르지 않은, 아까울 게 하나도 없는 하루였을 뿐이었다. 

     [오늘은 어제 죽은 누군가가 그토록 원했던 하루이다.]

     한 때 크게 유행하기도 했었던 이 문구는 약간 변형된 채 그의 꽃집 벽에도 코팅되어 붙어 있었다. 

     [오늘은 어제 죽은 누군가가 그토록 원했던 하루입니다. 바로 오늘 사랑하는 이에게 꽃과 마음을 전하세요.] 

     하지만 사실 현태는 그 말에 신물이 났다. 오늘이 어제 죽은 누군가가 그토록 원했던 하루인 것만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설사 오늘 하루를 더 살 수 있는 기회가 그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해도 그는 그 하루를 다시 내일을 소원하는 데 다 써버리고 말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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