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곡도 Sep 18. 2024

불면증 (13)




     2월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현태는 무척이나 바빠졌다. 졸업식과 입학식 시즌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졸업식과 입학식은 소위 꽃집의 3대 대목 중 하나로, 꽃집은 졸업식이 있는 2월, 입학식과 화이트데이가 있는 3월, 어버이날이 있는 5월, 이렇게 세 달을 벌어서 일 년을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발렌타이데이에도 꽃이 얼마간 나가긴 했지만 아무래도 여자들이 선물을 받는 화이트데이의 매출이 훨씬 더 높았다.

     일주일에서 열흘에 한 번씩 오던 꽃 배달 트럭도 요즘에는 3, 4일에 한 번씩 오고 있었다. 어제 아침에만 해도 10상자나 되는 꽃들이 새로 들어온 탓에 꽃집 안은 온갖 종류의 꽃향기가 진동했다. 각종 향수를 마구잡이로 뒤섞어서 양동이 째 가게 안에 들이 부은 것만 같았다. 그 속에서 하루 종일 있으려니 꽃향기에 익숙한 현태마저도 두통 때문에 머리가 깨질 지경이었다. 

     [웬걸요. 이젠 냄새만 맡아도 역겨워서 구역질이 나는데요.]

     토스트 가게 사장이 했던 이 말의 뜻을 현태만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누군가 “이렇게 향기로운 냄새만 맡으면서 일하시니 좋으시겠어요.”라고 묻는다면 그는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딱 저렇게 대답할 것이다. 웬걸요. 이젠 냄새만 맡아도 역겨워서 구역질이 나는데요. 다만 사장이 그 말 직후에 지었던 야릇한 웃음에 대해서는 현태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알듯 모를 듯, 진짜인 듯 가짜인 듯, 애매하면서도 노골적인, 마가린에 쩔어있는 것만 같은 웃음.  

     현태는 오늘도 6시간째 꼼짝 않고 앉아서 꽃다발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하나를 더 만들면 그만큼 돈이 더 들어오니 조금도 쉴 수가 없었다. 돈을 더 벌 수 있는데도 포기하는 건 일종의 죄악이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현태의 꽃다발은 근방에서 제법 인기가 좋았다. 때때로 멀리서 일부러 그의 가게를 찾기도 했다. 그는 구슬끈이며, 별 장식, 비단 리본, 레이스 등으로 꽃다발을 화려하게 장식했고 꽃 위에 반짝이 가루까지 뿌려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꽃다발은 조잡하고 거창한 장식들에 가려 꽃은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그 점이 종종 주변 꽃집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고, 천박하다거나 꽃에 대해 개뿔도 모른다는 식의 험담들이 꼬리를 물곤 했다. 사실 그들의 지적은 정확하고도 정당했다. 그에게 처음 화훼장식을 가르쳐 주었던 강사 역시 꽃이 돋보이도록 과도한 장식은 자제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던 것이다. 꽃다발의 주인공은 장식이 아니라 꽃이 되어야 한다면서. 하지만 그가 직접 꽃다발을 만들어 팔아보니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취향이 저열하거나 심지어 취향이란 게 아예 없다시피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위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꽃다발보다는 크고 장식이 화려한 꽃다발을 더 좋아했다. 어차피 꽃다발이란 선물용이어서 무언가 번쩍이는 것이 많이 붙어 있을수록 폼이 났다. 파는 입장에서도 포장과 장식을 더하고 꽃을 줄이는 편이 이문이 더 남았기 때문에 현태는 그런 손님들에게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수철은 초저녁쯤 일찌감치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현태는 저녁 9시가 넘도록 카라, 수국, 리시안, 핑크조팝 등을 이용해서 크고 화려한 꽃다발을 만드는 데 골몰해 있었다. 3중으로 두른 포장지 가장자리에 연두색 레이스를 붙이고, 금색과 보라색의 커다란 공단 리본을 두른 뒤 다시 그 위에 반짝이는 보라색 구슬 끈을 감았다. 리본 끝에는 딸랑거리며 흔들리는 은색 방울도 달아 주었다. 마지막으로 꽃 위에 은색 반짝이 가루를 뿌리자 척 보기에도 거북할 정도로 사치스러운 꽃다발이 완성되었다. 이정도면 6만원을 불러도 금세 팔릴 것이다. 세상에, 무려 6만원이라니. 만약 누군가에게 낭비벽이 있다면 꽃다발을 사는 것보다 더 적당한 일은 없을 거라고 그는 혼자 혀를 내둘렀다.

     그 때 핸드폰 벨 소리에 그는 앞치마 주머니에 꽂아 두었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발신자표시를 보니 그의 어머니인 미숙이었다. 현태는 받을 생각은 않고 그대로 핸드폰을 들고만 있었다. 마침내 벨소리가 멈추자 그는 도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러나 몇 초도 되지 않아 다시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받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예, 엄마.”

     “바쁘니?”

     “예, 좀 그래요. 요즘 졸업식 시즌이잖아요.”

     “그래, 벌써 그렇구나. 그럼 지금 꽃다발 만들고 있었니?”

     “네.”

     “그런데 요즘 졸업식 선물로 꽃다발이 영 별로라던데.”

     “네?”

     “방금 뉴스에 나오더라. 비싸고 짐만 된다고 졸업식에 꽃다발 안 가져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데. 사탕부케나 조화꽃다발 같은 게 인기를 끈다고 하더라. 넌 장사가 괜찮니?”

     “괜찮아요.”

     “하여간 앞으로는 꽃다발이 영 별로겠어. 경기도 안 좋은데 누가 꽃을 사겠니. 그러게 내가 예전부터 누누이 얘기 했지. 꽃집은 전망이 없다니까.” 

     또 시작이었다. 그는 속이 뒤틀리는 걸 참느라 왼쪽 손가락을 비비 꼬았다. 

     “장사란 게 그렇게 앞일을 예측하기 힘든 거야. 오늘 흥하다가도 내일 망할 수 있는 게 장사야. 거기다 손님 상대하는 건 또 얼마나 치사스러우니. 푼돈이나 지불하면서 마치 그게 파는 물건에 매겨진 가격이 아닌 파는 사람에게 매겨진 가격이라고 생각하지. 그러게 내 말처럼 진작에 계속 공부해서 사법시험 준비했으면 얼마나 좋아. 10년 동안 매달리는 사람도 있는데 고작 2년 만에 포기하다니.”

     “대학도 그만 두고 2년이나 매달렸는데도 안됐으면 그건 그냥 안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냥 포기한 거 아니에요. 적성이 아니라서 그만 둔거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적성? 그래서 장사치 일은 니 적성에 맞고?”

     현태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말이 틀리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아니,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어떻게 적성에 맞을 수 있겠는가?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불면증 (1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