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남편
아내
손님
고양이 빅토리아 (뮤지컬 ‘캣츠’의 빅토리아와 같은 모습이다.)
◎ 남편과 아내의 체형을 고려할 수 있다. 남편이나 아내 한쪽이, 혹은 둘 다, 마른 체형, 정상 체형, 비만 체형일 때 인물의 이미지와 대사 의미 전달에 변화를 줄 수 있다.
◎ 남편과 아내는 중년의 나이이며, 손님의 경우 성별은 상관없으나 젊고 다소 중성적인 느낌을 준다.
◎ 이 연극은 냄새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소극장 무대가 적당하다.
◎ 고양이 빅토리아는 마지막 한 순간을 제외하고는 절대 인간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 뮤지컬 노래에서 [ ] 안에 있는 가사는 남편과 아내가 함께 부른다. 경우에 따라 남편과 아내가 따로 특정된 부분도 있다.
◎ 빅토리아에 대한 지문은 거의 없다. 그것은 연출과 배우에게 달려있으며 빅토리아의 차이가 각 공연의 개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1부]
평범한 가정집. 무대 한 가운데 탁자가 있고 탁자 위에는 고양이 장난감이 가득하다. 전면을 제외한 탁자의 세 면에 각각 의자가 하나씩 놓여있다. 무대 뒤쪽으로는 옷장과 스텐드 옷걸이, 간단한 부엌이 있고, 벽에는 커다랗게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가족사진 속 남편과 아내는 고양이 귀가 달린 머리띠를 하고 있고 아내의 품에는 실제 새끼 고양이가 안겨있다. 사진 속 새끼 고양이와 빅토리아는 털 색깔이 같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부터 빅토리아는 무대 위에 있다. 빅토리아의 목에는 커다란 고양이 목걸이가 둘러져 있다. 빅토리아는 들어오는 관객들과 장난을 치거나, 그들에게 재롱을 피우거나, 간식을 받아먹거나, 그루밍을 함으로써 관객들이 ‘고양이’에게 익숙해지도록 한다.
연극이 시작되고 아내와 손님이 무대에 등장한다. 아내는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한 반면 손님은 쭈뼛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아내가 코트를 벗자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와 성적인 매력이 도드라지는 옷차림이 드러난다. 목에는 화려한 목걸이를 하고 있다. 아내는 자신의 코트와 손님의 겉옷을 옷걸이에 건 뒤, 신발을 벗어서 슬리퍼로 갈아 신고 손님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한다.
아내 편하게 계세요. 느긋하게요. 시간은 많으니까요.
손님 (주변을 둘러보며) 네네.
손님은 어색한 모습이 역력하지만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빅토리아에게 달려간다.
아내 빅토리아-. 빅토리아-. 아구구, 우리 아기. 잘 있었어요? (빅토리아를 꼭 안아주며) 엄마가 좀 늦었지요. 정말 미안해요. 오늘 손님을 모시고 오느라 좀 늦어버렸어요. 자아, 빅토리아, 손님한테 안녕하세요, 해야지? (손님에게 인사시키며) 안녕하세요-.
손님 (어색하게 웃으며 손인사를 한다)
아내 (명랑하게) 빅토리아-. 빅토리아-. 아구구, 우리 아기. 우리 빅토리아처럼 착하고 귀여운 고양이는 세상에 없을 거야. 우리 귀염둥이, 요 새침데기, 깜찍한 공주님. 이리 와. 이리 좀 와봐요. 저런, 하루 종일 혼자 있었지요. (관객들을 둘러보며) 아무도 없었지요. 텅 빈, 이곳에서, 홀로. 뭘 하고 있었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니. 무슨 꿈을 꾸었니. 난 알 수가 없구나. 미안해, 빅토리아. 정말 미안해. 나를 이해해 줘. 나를 불쌍히 여겨줘. 그리고 제발 나를 용서해다오. (손님에게) 저기요, 거기 탁자에서 ‘영혼의 탈곡기’ 좀 가져다주시겠어요?
손님 네에? 뭘 달라구요?
아내 ‘영혼의 탈곡기’요. 거기 탁자 위에 있는 거요.
손님은 탁자 위에 있는 여러 가지 해괴망측한 모양의 고양이 장난감들을 수상한 물건이라도 만지듯 하나씩 조심스럽게 들어 보인다.
아내 아니요, 그거 말구요. 아니 아니, 그 옆에요. 아이 참, 거기 낚싯대처럼 생긴 거 말이에요. 네, 맞아요. 그거에요.
손님이 낚싯대처럼 생긴 고양이 장난감을 찾아서 아내에게 가져다준다.
아내 고마워요. 자, 빅토리아. 그럼 한번 시원하게 털어볼까요?
아내가 장난감을 흔들어대자 빅토리아가 정신 나간 것처럼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 댄다.
아내 (기뻐하며) 어머, 어머, 우리 빅토리아, 아유, 그렇게 좋아요? 그렇지.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손님에게 박수를 유도하며)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손님 왜 그 장난감 이름이 ‘영혼의 탈곡기’인 줄 알겠네요. 뭐, 고양이에게는 영혼이 없지만요.
아내 (놀라서 손을 멈추며) 뭐라구요? 고양이에게 영혼이 없다구요?
손님 그럼요.
아내 정말 괴상한 생각이네요.
손님 그런가요?
아내 물론이죠. 뭐랄까. 패륜적이랄까?
손님 어어, 그건 너무 심한데요?
아내 전혀 심하지 않아요.
손님 패륜이라니, 패륜이란, 그러니까, (핸드폰으로 검색하자 무대 뒷벽에 '패륜'의 사전적 뜻이 보인다 - 패륜: 인간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도리에 어그러짐 또는 그런 현상) 인간으로써 마땅히 하여야 할 도리에 어그러짐이란 뜻이잖아요.
아내 맞아요.
손님 그런데 고양이를 상대로 패륜이라뇨.
아내 제 말이 바로 그거에요.
손님 아니, 저기요. 저는 그저 고양이에 대해 한 마디 했을 뿐이에요.
아내 아니요. 당신은 고양이에 대해 말한 게 아니라 고양이의 영혼에 대해 말했어요. 그건 전혀 다른 문제라구요.
손님 뭐가 다르죠?
아내 고양이의 실존적 본질을 부정한 거니까요.
손님 (어리둥절해하며) 고양이의 본질적 실존을 부정한 거라구요?
아내 말 돌리지 말아요. 영혼이 없다면 당신은 대체 우리 빅토리아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죠?
손님 음, 그야 물론 동물이죠.
아내 그게 무슨 뜻인데요?
손님 무슨 뜻이냐구요? 이상한 질문을 하시네요. 동물이야 당연히, 살아있는, 살아가고 있는, 어떤, 그러니까 (핸드폰으로 검색하자 무대 뒷벽에 '동물'의 사전적 뜻이 보인다 - 동물 : 생물계의 두 갈래 가운데 하나) 생물계의 두 갈래 가운데 하나인 거죠.
아내 그럼 생물은 뭔데요?
손님 생물, 생물이라, 에, (핸드폰으로 검색하자 무대 뒷벽에 '생물'의 사전적 뜻이 보인다 - 생명을 가지고 스스로 생활 현상을 유지하여 나가는 물체) 생명을 가지고 스스로 생활 현상을 유지해 나가는 물체요.
아내 (화를 내며) 뭐라구요? 물체라구요? 세상에, 그러니까 우리 빅토리아가 물체라는 말인가요?
손님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요.
아내 어떻게 이렇게 모욕적일 수가 있죠?
손님 아, 아니, 물론 빅토리아는... 놀라울 만큼 부드럽고 섬세하고 특별한..... 그러니까 더할 나위 없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다시 말해 천하에 둘도 없이 소중한......... 물체죠.
아내 말도 안돼요. 절대 용납할 수 없어요.
손님 음, 그래요. 제가 보기에도 물체라는 표현은 좀 그렇네요. 그럼 명품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값비싼 순종이니까.
아내 아니요, 이건,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보세요. 그렇게 치면 인간도 역시 물체 아닌가요.
손님 인간이 물체라구요? 에이, 설마요. (핸드폰으로 검색하자 무대 뒷벽에 '인간'의 사전적 뜻이 보인다 - 인간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 인간은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이다. (핸드폰으로 검색하자 무대 뒷벽에 '동물'의 사전적 뜻이 보인다 - 동물 : 생물계의 두 갈래 가운데 하나. 현재 100만~120만 종이 알려져 있고 그 가운데 약 80%는 곤충이 차지한다. 원생동물부터 척추동물까지 23개 문(門)으로 분류된다. 주로 유기물을 영양분으로 섭취하며, 운동, 감각, 신경 따위의 기능이 발달하였다. 소화, 배설, 호흡, 순환, 생식 따위의 기관이 분화되어 있다) 동물은 생물계의 두 갈래 가운데 하나로, 현재 100만~120만 종이 알려져 있고 그 가운데 약 80%는 곤충이 차지한다. 원생동물부터 척추동물까지 23개 문으로 분류된다. 주로 유기물을 영양분으로 섭취하며, 운동, 감각, 신경 따위의 기능이 발달하였다. 소화, 배설, 호흡, 순환, 생식 따위의 기관이 분화되어 있다. (말을 얼버무리다가) 네에, 뭐, 그래요. 인간도 물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내 (기뻐하며) 그거 보세요.
손님 (핸드폰으로 검색하자 무대 뒷벽에 '인간'의 사전적 뜻이 보인다 - 사람을 제외한 길짐승, 날짐승, 물짐승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아하, 하지만 동물에는 또 다른 뜻이 있다구요. 동물이란 '사람을 제외한' 길짐승, 날짐승, 물짐승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자아, 보셨죠?
아내 하지만 우리는 A와 B의 교집합인 C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나요?
손님 천만해요. 우리는 C의 여집합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아내 하지만 C의 여집합이 별볼일 없다면요? 그러니까 모든 본질이 교집합에 있다면 말이에요.
손님 자고로 본질이란 여집합에 있는 법이죠.
아내 그렇지 않아요. 동물에게도 감정이 있고 고통과 슬픔이 있지요. 인간처럼 말이에요.
손님 죄송하지만, 동물에게도 일종의 감정이 있고, 일종의 고통과, 일종의 슬픔이 있다는 말씀이시겠죠.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건 인간과는 달라요. 인식론적 유사성을 존재론적 유사성과 혼동하는 것뿐입니다. 그것을 착각이라고 하죠.
아내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구요.
손님 또 다른 착각이군요. 그건 사랑이 아니에요. 집착일 뿐이죠.
아내 집착이라구요?
손님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집착 말입니다. 고양이는 당신에게서 음식과 안전을 필요로 하고, 당신은, 당신에게서 음식과 안전을 필요로 하는 고양이를 필요로 하구요.
아내 그게 바로 사랑 아닌가요.
손님 아니요. 전혀 다른 문제에요. (핸드폰으로 검색하자 무대 뒷벽에 '사랑'과 '집착'의 사전적 뜻이 나란히 보인다 - 사랑 :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집착 - 어떤 것에 늘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림) 사랑은 ‘어떤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란 뜻이구요, 집착은 ‘어떤 것에 늘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림’이란 뜻이거든요. 자아, 차이가 확연하죠?
아내 대체 어떤 차이가 있다는 거예요?
손님 (좌우로 손짓을 해 보이며) 마음과, 매달림. 마-음-과 매-달-림. 모르시겠어요? 매달리는 거요. 그러니까 뭐 끈이나 막대기 같은 것에, 물체에 매달리는 거죠.
아내 (화가 나서 신음소리를 내며) 하아, 이제 보니 우리는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다른 것 같네요. 과연 우리가 함께 오늘 밤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상당히 의심스러워요. 아무래도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겠어요.
손님 (당황하며) 이런, 혹시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사과드릴게요. 실은 제게 좀 나쁜 버릇이 있어요. 미신을 견디지 못하거든요.
아내 미신이라구요?
손님 에, 물론 애완동물은 일반 미신과는 좀 다르긴 합니다만.
아내 저기요.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이에요.
손님 네, 네, 그럴 수 있죠. 모든 미신은 단어가 분열되는 그 미묘한 틈새에서 나오는 거니까. 어쨌든 중요한 건, 저는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이 고양이가, 빅토리아가, 예쁜 건 사실이니까요. 그러니까 제 말은 고양이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으시는 것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우리, 빅토리아가, 예쁘다는 겁니다. 저도 그 점에 100% 동의해요. 미학은 인간과 동물, 영혼과 육체, 생명과 사물의 경계를 초월하죠. 그래서 미학이 언제나 윤리, 종교, 과학보다 옳은 거구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