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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 (35)

by 곡도




현태는 머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벌써 며칠째 지독한 두통이 계속되고 있었다. 평소 약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과 두려움을 갖고 있던 그였지만 (말레인산클로르페니라민, 파라옥시안식향산프로필, 아세트아만펜 같은 성분 이름을 보고 어떻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쩔쩔매다가 결국 두통약과 아스피린을 복용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고 어젯밤에는 악몽까지 꾸었다. 머리와 성기가 마른 가지처럼 말라비틀어지더니 힘없이 떨어져 나가는 꿈이었다. 머리도 성기도 없이, 그러나 이상하게도 여전히 자기 자신인 채로 더러운 잿빛 진창 바닥을 나뒹굴며 어떻게 해서든 몸을 바로 세우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그는 꿈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그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에 채 안도하기도 전에 찌르는 듯한 두통에 나가떨어졌던 것이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팔다리가 무겁고 손가락이 헛돌아 말을 듣지 않았다. 꿈이 현실로 연장된 건지 현실이 꿈으로 연장된 건지 알 수 없어 현태는 스스로 신랄한 미소를 지었다. 요즘 여러 가지로 무리를 했던 건 사실이었다. 오마담도 너무 자주 만나고 있었고, 잠은 여전히 부족했고, 행사가 많은 5월이라 또다시 바빠지고 있었다. 오늘만 해도 이렇게 어물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꽃 배달 트럭이 7시 30분까지 가게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에 배달을 하던 민규가 그만 둔 뒤로 두 번이나 사람이 바뀌다가 한 달 전쯤부터 일을 시작한 김상현은 게으르고 매몰차서 현태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현태는 축축 늘어지는 팔다리를 억지로 앞세워가며 이빨을 닦고 세수를 했다. 몸 상태가 심각하다는 게 점점 더 분명해졌지만 미적거릴 수가 없었다. 서둘러 집을 빠져 나와 빌라 옆에 세워둔 차를 향해 잰걸음을 옮기던 그는 별안간 우뚝 멈춰 섰다. 찻길 가장자리에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있었다. 하얀색 털이 많이 섞인 노란 줄무늬 고양이였다. 얼핏 보면 몸을 동그랗게 말고 곤히 잠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고양이가 차가 지나다니는 찻길에 누워 잠을 자고 있을 리 만무했다. 어제도 새벽 4시가 넘을 때까지 보초를 섰었는데 언제 이렇게 됐단 말인가? 만약 그가 5분만, 혹은 10분만 더 늦게 잠자리에 들었어도 저 고양이는 죽지 않았을까? 현태는 이빨을 맞부딪치며 이마를 움켜쥐었다. 죽은 고양이에 대한 연민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다. 그는 요즘 들어 더 열심히 보초를 서고 있었다. 새벽 4시는 물론이고 새벽 5시까지 깨어 있을 때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계속 죽어나갔고 그의 고단함도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그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정말 단 몇 마리의 고양이나마 살리고 있기는 한 건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이것은 자신이 영원히 산다 해도 결코 끝나지 않을 일임이 분명했다.

그때 막 아파트를 빠져 나온 남색 승합차 한 대가 노란 줄무늬 고양이를 향해 달려드는 게 보였다. 현태는 얼굴을 돌리고 자신도 모르게 한쪽 손으로 귀까지 가렸다. 뒤늦게 고양이를 발견한 운전자는 날카로운 타이어 마찰 소리와 함께 아슬아슬하게 차를 세웠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망치로 정수리를 함부로 내려치는 것같은 요란한 소리였다. 잠든 고양이였다면 단박에 펄쩍 뛰어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노란 줄무늬 고양이는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현태 역시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이윽고 경적 소리가 멈추고 회색 양복 차림의 덩치 큰 남자가 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성큼 앞으로 달려가더니 축구공이라도 차듯 고양이를 인도 쪽으로 힘껏 걷어찼다. ‘딱’ 소리와 함께 고양이는 동그랗게 말린 모습 그대로 원반처럼 빙글빙글 돌아 현태의 앞까지 날아왔다. 발끝에 닿을 정도는 아니었는데도 현태는 기겁을 하며 멀찍이 뒤로 물러났다. 죽은 고양이를 향한 남자의 모진 발길질에 그는 살아있는 고양이가 발길질을 당한 것 이상으로 겁에 질렸다. 고통이 없는 고통이고, 잔인함이 없는 잔인함이고, 논리가 없는 논리였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 덕에 현태도, 또 다른 사람들도 죽은 고양이가 여러 번 차에 치이는 흉한 꼴을 보는 건 면한 셈이니 선행이라고 해야할까. 남자는 바닥에 발을 세차게 굴러 구두의 먼지를 털어낸 다음 현태를 한 번 흘끗 보더니 차를 타고 사라졌다.

현태는 우두커니 서서 자기 앞까지 굴러온 노란 줄무늬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입가에는 붉은 피거품이 지저분하게 엉겨있었지만 다행히 – 진심으로 다행히 - 눈은 감겨 있었다. 몸이 이상할 정도로 납작해 보이는 것만 빼면 딱히 찢어지거나 터진 곳은 없었다. 다만 벌어진 입술 사이로 비어져나온 조그맣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그 이상 하얄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가만 있자, 저게 몇 번째 죽은 고양이더라. 17번째까지 센 뒤로는 더 이상 따져보지 않았다. 아마도 서른 몇 번째 쯤 되려나. 어쩌면 그새 마흔 마리를 훌쩍 넘겼는지도 모른다. 무슨 상관이람. 그는 그곳에 서서 태평하게 셈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곧 환경미화원들이 쓰레기들과 함께 고양이 사체를 치우고 나면 거리는 다시 평온하고 깨끗해질 것이다. 현태는 죽은 고양이를 지나쳐서 서둘러 차에 올랐다. 그리고 좁은 골목을 가로질러 겨우 제 시간에 가게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가 막 가게 문에 열쇠를 꽂자마자 트럭이 도착했으니 참으로 아슬아슬했던 셈이었다.

트럭 문이 열리고 20대 초반의 앳된 청년이 운전석에서 내렸다. 늘 그렇듯 상현의 홀쭉한 광대뼈와 딱딱한 입매에는 만사가 재미없다는 싫증이 단단히 틀어박혀있었다. 현태에게 꾸벅 목인사를 한 상현은 조끼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 손에 끼더니 ‘문래동’이라는 노란 딱지가 붙어 있는 물건들을 신속하게 트럭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5, 6월에는 결혼식, 집들이, 개업식 등의 행사가 많아서 현태가 주문한 물건들에는 무게가 나가는 대형 화분들이 꽤 있었다. 현태는 저 화분들을 혼자 가게 안으로 옮길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민규를 비롯한 예전 직원들은 모두 가게 안까지 물건을 옮겨주곤 했는데 상현은 늘 물건을 가게 앞에만 내려놓고 휭하니 가버리곤 했다. 사장에게 전화해서 따져볼까 몇 번이나 생각해 봤지만 상현과의 사이가 불편해지는 것도 신경 쓰이고, 또 가게 안까지 물건을 옮겨 줘야할 책임이 실제로 상현에게 있는지도 분명치 않아서 현태는 지례 포기해버렸다. 하지만 오늘은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기 때문에 현태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저기, 미안하지만, 오늘은 큰 화분이 많아서 혼자 옮기기 힘들 것 같은데, 좀 도와주면 안 될까요?”

막 마지막 화분을 내리고 손을 탁탁 털던 상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안되겠어요. 지금 배달이 밀려서요. 빨리 가지 않으면 다른 가게들이 난리를 칠겁니다. 모두들 저한테만 뭐라고 하니까요. 주변 분들께 좀 부탁해 보세요.”

상현은 자신의 냉담하고 사무적인 태도를 강조라도 하려는 듯 허리를 굽혀 꾸벅 인사하고는 곧바로 트럭을 몰고 떠나버렸다. 현태는 불쾌하기도 하고 또 막막하기도 해서 일단 화단에 기대앉았다. 상현의 인색함에 화가 치밀었지만 역시나 확신이 가지는 않았다. 과연 상현이 현태에게 친절해야 할 의무가 있을까? 또는 다른 사람의 친절이 현태에게 있어 당연한 권리일까? 사람 사이의 도리를 한 뼘씩 재다보면 어느새 불쾌감은 사라지고 모든 게 그저 구질구질하고 지겹게 여겨질 뿐이었다.

어쨌든 계속 화분들을 가게 앞에 쌓아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작은 화분부터 조심스럽게 가게 안으로 옮겼다. 자꾸만 오그라드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데다 머릿속도 멍해져서 그것만으로도 제법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큰 화분들이었다. 현태는 그중에서 제일 작은 축에 속하는 킹벤자민 화분 한 개를 시험 삼아 들어보았다. 그러나 역시 마음먹은 대로 되지가 않았다. 화분을 껴안고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씨름하던 현태는 불현듯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물 빠진 허름한 초록색 와이셔츠에 검은 청바지를 입은 키 작은 남자가 기척도 없이 옆에 서 있다가 현태가 돌아보자 주춤거리며 다가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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