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샤워를 마친 뒤 옷을 도로 갖춰 입고 욕실에서 나왔을 때, 그녀는 아까와 똑같은 포즈로 앉아있다가 얼른 텔레비전을 껐다.
“다 씻었어?”
“네.”
“옷은 뭐 하러 다시 입었어? 어차피 벗을 건데.”
“뭐, 그냥.”
“뭐야. 그렇게 긴장하지 마. 막상 하려니까 역시 늙은 여자라 신경 쓰여? 그렇다고 내가 자기 엄마뻘도 아니잖아.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테니까 염려 말고 이리 와.”
그녀는 현태의 손을 자신 쪽으로 잡아끌더니 입고 있던 란제리를 스스럼없이 벗어던졌다. 현태 역시 어물쩍 윗도리를 벗었다. 그가 채 바지를 벗기도 전에 오마담은 알몸이 되었다. 그녀는 현태를 향해 거리낌 없이 두 팔을 벌려 자신을 보여주었다.
“어때, 생각보다 나쁘진 않지? 물론 경애처럼 젊은 애들 몸매만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관리하고 있으니까.”
확실히 그의 예상보다는 젊어 보이는 몸이었다. 짙은 화장 때문에 얼굴과 색깔이 확연히 다른 목에는 제법 주름이 패였지만 아래로 이어지는 그녀의 하얀 속살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만큼 매끈했다. 현태도 마저 바지를 벗고 팬티 차림이 되었다.
“현태 씨는 여자 몸 보는 걸 좋아한다면서?”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몸 전체를 쭉 펴고 침대에 걸터앉으며 마담은 여유 만만한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남자를 잘 알고 있었고, 현태라는 남자 역시 뻔하기만 했다.
“자, 아무 염려 말고 하고 싶은 데로 해요. 응?”
그는 아무 대꾸 없이 오마담 곁에 앉았다. 그리고 희번덕거리는 눈길을 피해 그녀의 어깨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넓고 깡마른 어깨가 강박한 기분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그는 곧바로 그녀의 가슴으로 눈길을 돌렸다. 경애의 것보다 더 큰 가슴이었다. 양쪽으로 주름져 있긴 해도 늘어지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현태가 내심 깜짝 놀랄 정도로 짙은 색의 젖꼭지였다. 색칠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진한 고동색의 젖꼭지는 뾰족하고 오뚝하게 솟아 있어서 위협적일 정도였다. 가히 오마담 다운 젖꼭지라 할만했다. 어쩌면 지문처럼 여자들도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젖꼭지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태는 혀로 입천장을 긁어대며 시선을 더 아래로 향했다. 탄력이 없는 아랫배는 여러 겹으로 주름져 있었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허벅지는 오히려 경애의 것보다 탱탱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그는 그녀의 허벅지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놓았다. 섬세한 푸른색 실핏줄들이 일제히 허벅지 안쪽을 향해 뻗어있었다. 그 핏줄들을 따라 손을 허벅지 안쪽으로 밀어 넣자 따듯한 체온과 함께 옅게 뛰고 있는 맥박이 느껴졌다. 그는 잠시 동안 꼼짝 않고 그 맥박에 몰두했다. 자기 자신마저 잊고 언제까지나 그 생명의 맥박을 세고 있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치 그곳이 그의, 그리고 모든 것의 목적지이자 종착지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는 점점 가중되는 열기에 이끌려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를 수 없었다. 삶의 비극은 원하는 곳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곳에 도달하고도 끝내 지나치고야만다는 것일까. 그는 몸을 일으켜 두 손으로 그녀의 허벅지를 벌렸다. 이제껏 평온했던 그녀의 몸 전체가 별안간 양쪽으로 갈라지더니 그녀의 성기가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경애의 것 못지않게 충격적이고 또 그만큼이나 신비했다. 한마디로 그리 크게 다를 것 없는 여자의 몸이었다. 저절로 움직이듯 현태의 손가락이 안쪽으로 깊숙이 미끄러지자 마담이 해시시 웃으며 몸을 꼬았다. 현태도 웃었다. 눈이 부신 것처럼 눈가가 시렸다. 여자의 몸이란 똥으로 가득 찬 똥통일 뿐인데 무엇을 그리 탐내느냐고 나무랐던 옛 성현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러나 삶에는 이런 한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현태는 생각했다. 뼈와 살덩어리와 분비물로 가득 찬 똥통이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순간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뼈와 살덩어리와 분비물을 하나의 형상 안에 꾸역꾸역 쑤셔 담을 수 있겠는가.
“뭘 그렇게 열심히 보는 거야?”
마담이 이빨 사이에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 그는 어쩐지 소름이 끼쳤다.
“그냥, 그냥 보는 거예요.”
“보니까 어떤데?”
“예뻐요.”
마담은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 그거 고맙네. 아직까지 내 몸이 예쁘다니, 나쁘지 않은데?”
그녀는 다섯 손가락을 쫙 펴서 그의 눈앞에서 어지럽게 흔들더니 길쭉한 엄지손가락을 그의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는 그녀의 손가락을 우물거리며 그녀의 가슴에 두 손을 얹었다. 뾰족한 젖꼭지가 그의 손바닥을 찔러왔다. 그의 이마가 붉게 달아올랐다.
“이제 그만 조물딱 거리고 이리 와. 언제까지 만지작거리기만 할 거야. 아니면 내가 만져 줄까? 응?”
그녀는 중얼거리며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손을 뻗어 전등을 끄고 무기력하게 그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녀는 확실히 솜씨가 좋았다. 그를 함부로 휘두르지 않으면서도 능숙하게 그를 이끌었다. 결국 그는 와락 달려들어 그녀를 부둥켜안았다. 오래간만인 탓에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그는 녹초가 되었고 꽤나 만족스러웠다. 그러니까 그 만족스러움을 순순히 인정할 만큼이나 만족스러웠다는 뜻이다. 그런데 – 경애와는 다르게 - 그녀는 일을 마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서둘러 샤워를 하고 옷을 입기 시작했다.
“가려구요?”
“가서 가게 열어야지. 지금은 대신 열어 줄 사람도 없구.”
그녀는 핸드백에서 화장도구를 꺼내 재빨리 화장을 고치고는 그의 머리맡으로 다가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그의 앞 머리카락을 넘겨주려 했지만 그는 고개를 돌려 피해버렸다.
“어때, 오늘 괜찮았어?”
“네.”
“나도 아직 쓸 만하지?”
그는 그렇다고 대답하기도 뭐해서 그냥 웃어버렸다.
“자, 그럼 나는 먼저 가 볼게.”
하지만 마담은 움직이지 않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잠시 어안이 벙벙하던 그는 겨우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늘 그가 경애보다 먼저 방을 나섰기 때문에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옆에 벗어 두었던 잠바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돈을 셌다.
“여기. 모텔비도 같이요.”
“뭐야, 나한테는 봉투에 안 넣어 주는 거야?”
돈을 받아 들며 오마담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경애는 작은 것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떠벌린 모양이었다.
“아, 죄송해요. 급하게 오느라.”
“됐어. 상관없어. 솔직히 누가 상관하겠어?”
마담은 돈을 받아 들고 곧바로 그 자리에서 세기 시작했다. 경애는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에 현태는 당황스러워서 고개를 돌렸다.
“모텔비 빼고 10만원이네?”
“네. 그때 10만원이라고 하셔서.”
“맞아. 내가 그렇게 말했지. 근데 말이야, 혹시 내가 경애보다 별로였어?”
“네? 아, 아니오.”
“경애보다 못하진 않았지?”
“예에.”
“에이, 그럼 다음부터는 경애한테 준 것만큼 줘. 오늘은 내가 첫날이니까 그냥 이것만 받을게. 어때?”
“아, 네. 그럴게요.”
그는 혐오감이 치받쳐 올라왔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녀의 요구가 정당한 것 같기도 해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앞니를 드러내고 크게 미소를 짓더니 돈을 접어 핸드백 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둘둘 말린 하얀색 스타킹을 주머니에서 꺼내 능숙하게 신기 시작했다. 조그만 스타킹 구멍 속으로 커다란 발이 허벅지까지 쑥쑥 뻗어나가는 걸 보면서 현태는 저렇게 닳고 닳아 화석처럼 단단한 조각만 남은 것 같은 그녀에게도 과연 외로움이란 게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고마워. 그럼 나는 먼저 갈 테니까 좀 쉬어. 다음에 또 연락 주고. 기다릴게, 응?”
그녀는 하얀색 코트를 걸치고 검은색 낡은 루이비통 핸드백을 손에 쥐고는 가벼운 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