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커진 아들의 대응
#왜 성이 다르지?
다음날 여의도 사무실
여의도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사무실, 김피디가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여의도 한강고수부지에는 아침 운동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김피디는 지금까지 촬영하고 인터뷰한 것을 머릿속으로 정리중이다, 아직도 썩 풀리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습관처럼 가족관계 도표를 정리해 본다.
큰 원에 아빠가 있고 맞은편에는 엄마가 있다. 그리고 엄마 옆에 병구를 그려 넣고,
그리고 어린 두 아이는 아빠 옆에 그려 놓는다. 그리고 서로간의 관계를 정리하고 있다.
5년 전 이 집에 들어와 밖으로 도는 아들, 아들과 불편한 동거를 하는 아빠.
둘 사이의 갈등을 온 몸으로 막아내고 있는 엄마. 아빠 삶의 희망이 된 두 아이.
이렇게 5가족이 사는 모습을 2주간 담아냈다. 키포인트는 아빠와 아들 그리고 엄마의 역할
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빠와 아들사이의 갈등이 단순히 병구 때문일까? 저렇게 골이 깊어진 것은 결정적인
계기나 사건이 있지 않았을까? 여기 까지 생각이 미치자, 김피디는 김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교수는 심리상담 전문가 이다, 특히 7년간 대학병원에서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심리치유과정을 진행하면서 임상경험이 많은 실전파다. 이 가족을 끝까지 상담할
전문가이기도 하다.
잠시 후 ,, 김교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김피디, 작가가 보내준 진행상황은 봤어요, 큰아들이 이 집에 들어 오면서 생긴
전형적인 결합가족의 형태 인데..”
결합가족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많이 보이더군, 서로가 준비되지 않고, 이해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같이 살게 되면 갈등이 나타나지. 아들을 두고 싸우는 부부.
제 자리를 찾지 못하는 아들, 결합가족에서 보통 그런 갈등 양상이 나타나지“
김피디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한다.
“엄마와 아들의 관계는 이이해가 되는데, 아빠와 아들의 관계에서는 점점 더
갈등이 증폭되고 있어요, 물이 흐르지 못하게 뭔가 막혀 있다고 할까? 그런 거요.
아빠는 여전히 소극적이고,,“
김교수가 물어보는 의도를 알겠다는 듯 말을 한다.
“아마 아빠가 소극적인 이유가 있을 거야,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나, 행동을 위축하게 만드는 사건이 있을 거야 .. 그걸 꼭 알아보라고
김교수와 전화를 끊고 김피디는 다시 창밖을 보면서 상황을 정리해 본다
“마음을 닫아버린 결정적 사건, 그것이 무얼까?”
이제 가족들을 관찰할 시간이 며칠 남지 않았다, 머릿속에 다시 가족들을 떠올린다.
아빠 최석구, 엄마 박혜경, 아들 최우람, 딸 최해미 그리고 박병구.
큰 아들 박병구, 아빠 최석구 ,,, 왜 성이 다르지?
김피디는 급히 어딘가 전화를 하고 화성으로 향했다.
#갈 때 까지 간 사이
오후 아파트 주변 호프집
오후 4시. 동네 호프집에는 남편과 김피디 둘이 앉아있다.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풀고 솔직한 대답을 듣기 위해서는 한잔이 그래도 먹힌다.
조금 일찍 퇴근한 남편과 김피디가 마주 앉았다.
한 잔을 가장한 녹취 인터뷰, 김피디는 카메라를 옆으로 밀어놓고 레코딩을 누른다.
남편 “4학년때 결혼하기 전에는 할아버지가 다 키우신다고 했는데
결혼 한지 한두 달도 안돼서 데려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사이가 그랬던 거 같아요
없던 게 갑자기 나타나서..“
‘없던 게 갑자기 나타나서‘ 병구가 이집에 오기 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병구만 이 집에서 나가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이 집에서 나가야 할 사람은 병구, 남아야 할 사람은 그 외 모든 사람이다.
남편의 말 속에는 ‘가족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그럼 언제 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남편이 말을 이어 나간다.
남편 “그러니까 작년 같은 경우에도 집에 친구들 데리고 오지 말라고 했어요,
알겠어요 하고 대답을 하더라고요
근데 낮에 오니까, 집에서 친구 8~9명이 모여서 술 먹고 담배까지 피고 있는 거예요.
저는 눈이 뒤집어 졌죠 ‘이 새끼들 다 나가’라고 뭐하는 짓이냐고 얘기하고 쫓아
냈죠, 병구가 죄송해요 하더라고요
근데 이틀 지나서 또 와서 그런 짓을 하니까, 화가 나죠 더군다나 그때는
아버님도 있을 때거든요.“
이 때부터 남편과 병구의 갈등은 갈수록 깊어져 갔다. 사고 만 치는 병구를 남편은 매로
다스렸다. 중학교 1학년 때 까지는 매를 맞아도 ‘죄송하다’는 말도 곧잘 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병구는 덩치가 커지고 거친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남편 중학교1학년 때 까지는 가만히 있다가 2학년 여름방학 때 가출한적 있어요.
가출 하고 들어온 날, 그때도 병구를 때리는데 저항을 하더라고요.
저를 집어던지더라고요. 저는 창문으로 넘어졌고 현관 유리가 싹 깨졌어요.
결국에는 부자지간에 몸싸움 까지 갔었구나 김피디는 예상했던 일이라는 듯
다시 물어본다
김피 그 뒤에는?
아빠 그 뒤에 싸울 때 칼 2번 들고,. 눈이 돌아가더니 칼을 빼서 오더라고요
그 걸 엄마가 칼을 잡고 피 흘리면서 ‘뭐하는 짓이냐’고 울면서 말렸죠
안되겠다 싶어서 저는 야구방망이를 들고 와서 한바탕 난리 났어요,
덩치 큰 놈이 칼을 드니까 저도 움찔 했었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죠.
그 뒤로 저는 더 이상 정나미가 뚝 떨어진 거죠
가족 간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구나. 김피디는 그 정도 일줄 몰랐다.
아빠의 말을 들으면서 내심 놀라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인가? 김피디는 긴장감을 느낀다.
이것이 서로의 ‘기대가 완전히 무너진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다시 한잔을 기울이며 김피디가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호적에 올리지 않은 아이
김피 호적은 지금 어떻게 되어 있어요?
아빠 그 생각도 해봤는데요 장남이 바뀌어져 버리잖아요
그게 맨날 사고치고 싸우고 그러는데 해주고 싶겠어요?
더군다나 제사 같은 것도 저희 집에서 지내는데, 바뀌어져 버리면
그렇잖아요.
아빠의 말은 지금은 성을 바꿔주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아빠는 병구를 아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김피디는 생각했다.
뒷맛이 좀~ 씁쓸하네 ! 그럼 솔직히 남의 제사에 왜 그토록 안온다고 화를 내지?
엄마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간다.
아빠의 입장은 뭐지? 한 번 본적도 없고, 피 한 방울도 안 섞인 친할머니도 아닌데,
내가 병구라면 굳이 제사에 참석할 필요가 있나?
김피디는 생각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병구가 측은해 보인다.
아무도 병구의 입장에서 제대로 생각해 주지 않는 구나!
김피디는 차라리 홀가분한 감정을 느꼈다.
이제 모든 궁금증은 다 풀린 것 같다. 이제 다음 주 부터 가족 솔루션이 시작된다.
본격적으로 엉킨 실타래를 푸는 프로젝트가 시작될 것이다.
과연 실타래는 제대로 풀 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