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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피디의 제작노트 Oct 24. 2021

게임하는 아빠, 훈수 두는 아들

가족공간의 변화

#보호감찰 교육장의 두 남자


며칠 후 주말, 병구와 아빠가 같이 집을 나서고 있다.

“여보 고마워” 아파트 문 앞 까지 나와서 배웅하는 엄마의 소리가 들린다.

걱정 반, 고마운 맘 반, 이렇게 엄마는 두 남자를 쳐다보고 있다.


# 서울 시흥에 자리 잡은 청소년 수련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강당에 아빠와 병구가 나란히 앉았다.

병구는 지난번에 오토바이를 훔쳐 탄 일 때문에 보호감찰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병구는 40시간, 보호자와 함께 8시간의 교육도 받아야 한다.


엄마가 늘 같이 가던 교육을 이번에는 아빠가 가겠다고 자청하며 나섰다. 

‘그래서 엄마가 고마워 했구나!’ 김피디는 두 남자를 바라다 주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 흡사 예비군교육을 받는 느낌이랄까?

교육관이 출석여부를 체크하며 호명하고 있다.

“한석구” 아빠가 대답한다 “네”

“박병구” 아들이 대답한다 “네~”


대답한 곳으로 얼굴을 돌리는 교육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한번 얼굴을 쳐다보며 호명한다.  

“한석구” “네” 

“박병구” “네”

두 분 부자지간 아니예요? 아빠가 대답한다 “맞는데요” 

교육관이 다시 물어본다, “그런데 왜 성이 달라요?”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하는 아빠, 대답이 쪼그라드는 아빠 “아~거 사실은..”


얼굴이 빨개지는 아빠, 당황스러운 표정에 시선을 둘 곳이 없다, 병구는 고개만 숙이고 있다.

교육관이 모여 있는 사람들을 크게 얘기 한다.

“여기 교육은 보호자가 와야 합니다, 삼촌이나 이모나 옆집 아저씨가 대신 오면 

인정되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깔깔대는 모두의 웃음 속에 두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

어떻게 2시간이 흘러갔는지 알 수 없다. 

두 남자는 그렇게 편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교육장을 나섰다.


#한달밖에 안 남았는데


여의도 사무실.

김피디는 아침부터 일찍 출근해서 지난 두 달 동안 찍은 촬영본을 돌려 보고 있다.

빠르게 돌려보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장면이나 인터뷰가 나오면 돌려보고, 

창밖에 한강을 보다가 다시 돌려보고, 이런 행동을 벌써 2시간 째 하고 있다. 

편집실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김피디. 최작가가 노트북을 들고 편집실로 들어온다.

피디에게 작가는 동지와 같은 관계다. 프로그램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한다. 

첫 섭외미팅부터 마지막 편집과 방송송출 그리고 프로그램 평가까지 같이 가는 동지다.

촬영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김피디가 최작가에게 불쑥 물어본다.


       김피디   어디까지 온 것 같아? 전체 진행에서.

       최작가   중반은 그래도 돈 것 같은데요

       김피디   앞으로 제작 스케줄이 어떻게 되지?

       최작가   내일 가족상담하고, 그리고 드라마치료 남았고, 강남 정신과에 가서 

                   최박사님 만나야 해요. 거기서 가족들 심리변화에 대해서 체크하고.. 

                   그나저나 편집 일정이 빠듯하네!

       김피디   그렇네, 12월 말에 방송이니까 최소한 촬영은 15일 전에 마쳐야 되는데..

마음이 바빠지는 김피디, 일어서며 최작가에게 한마디 던진다.

 김피디  마음의 거리는 그래도 좁혀졌다고 생각하는데, 가족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어, 

 특히 아빠와 병구 사이에.이 문제가 마무리 포인트 인데, 어떻게?

김피디의 질문에 최작가도 고개를 끄덕이지만, 딱히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교수님과 통화해 볼게요” 

이제 한 달 밖에 제작기간이 남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지는 김피디, 

일단 화성가족 집으로 향하고 있다.


“병구를 아들로 받아들이는 것은 안 되는 일인가?” 


#쇼핑하고 돌아오는 병구와 아빠


아빠와 병구가 나란히 현관문을 들어서고 있다, 병구의 한 손에는 나이키 쇼팽백이 들려 있다.

부엌에서 파를 다듬다가 병구의 손에 먼저 시선이 가는 엄마, 

        병구   다녀왔습니다

        엄마   그거 뭐야, 나이키 샀어?

        병구   응, 30만 원 짜리야 


아내가 놀라며 남편을 쳐다본다, 남편 멋쩍은 듯이 서 있다.

‘이래도 돼? 비싸잖아“ 물어보는 아내의 말에 ’괜찮아‘하고 남편이 식탁에 앉는다

        엄마    아빠한테 고맙다고 얘기했어?

        병구    네 

        엄마    진짜 아빠 큰돈 쓴 거야 알아?

        병구    알아요~ 

새삼 남편에게 고맙기도 하고, 고맙다고 얘기한 병구가 또 고맙기도 하고,, 

아내는 마음의 안도를 느낀다, 사실 아내는 같이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둘이서 쇼핑을 함께 가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다. 싸울까봐.. 김피디가 물어본다.


김피 아들하고 쇼핑해 본적이 예전에도 있었겠지만, 얼마만이에요? 

아빠 한 번도 없어요, 단둘이 간적 없어요

처음이네! 사이좋은 부부가 쇼핑을 가도 싸우는 게 흔한 일이다. 더군다나 처음 가는 

병구와 아빠의 외출은 엄마도 불안했다. 하지만 이렇게 사이좋게 들어 온 것이다.

엄마가 흥분된 표정으로 자랑스럽게 말을 한다.

           엄마    엄마가 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어, 근데 둘이 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지나가는 거야 

          병구     엄마랑 간 것보다 좋았어요!

          엄마     그래?

          병구     엄마 갔으면 말렸을 걸요, 비싸다고

          병구     불안했지만 결과는 좋았네!


엄마의 말하는 표은 굉장한 내기를 걸어서 승리한 사람 같았다. 

태블릿을 보고 게임하는 아빠와 옆에서 훈수 두는 아들. 누가 뭐래도 평범한 가족의 

모습이다. 이런 날이 나에게도 찾아온 건가? 신이 난 엄마의 모습 뒤로 나란히 앉은 

병구와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김피디는 처음 이집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2개월 전, 이 가족은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았다. 병구는 방에, 아빠는 식탁에, 엄마는 부엌에서 

각자의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두 아이가 아침을 먹고 출근하면

병구가 문을 열고 나와서 밥을 먹었다. 밥 먹으라고 부르는 가족도 없었다.

이 거실은 함께 있기 불편한 공간에서, 이제 모두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마음의 거리도

아빠와 병구의 모습처럼 좁혀지고 있다.


# 부부합심,병구야 기다려!


소파에 앉아 게임을 구경하던 병구가 엄마에게 천천히 다가온다.

그리고 엄마에게 슬며시 말을 건넨다

        병구 싼거 하면 지금도 살 수 있어요? 

        엄마 기다려, 기다리라고 했지!

엄마의 말이 단호해 진다. 엄마의 목소리 톤에 약간 움찔하는 병구의 모습이 보인다.

병구는 아빠랑 쇼핑할 때 봐 놓은 핸드폰이 있었다. 진학문제가 마무리 되면 핸드폰을 

사주기로 약속 했는데, 마음이 급해진 병구가 엄마에게 조를 태세다.


출처를 알 수 없는 핸드폰. 길가다 주운 핸드폰이라고 하는 병구. 그 핸드폰을 벌써 6개월 

째 쓰고 있다. 

3학년 들어서 병구의 핸드폰은 5번이나 바뀌었지만 누구 건지는 알 수가 없다. 

병구 말로는 아는 형 그리고 친구 그리고 지나는 사람, 말이 그때그때 바뀐다. 

편하게 둘러대고 편하게 쓰고 편하게 바꾼다. 

엄마는 고등학교 입학이 정해지면 사준다고 약속 했지만, 병구는 하루빨리 자기 

핸드폰을 갖고 싶다, 

병구가 졸라보지만 엄마의 대답은 단호했다. 이것을 지켜보던 아빠가 한 마디 한다.

           아빠     엄마가 아까 기다리라고 했냐? 안했냐? 

아빠가 한마디 하고 엄마가 거들어 준다

           엄마     그건 아빠하고 똑같아, 엄마도 반대..


엄마 아빠의 한결 같은 반대에 병구도 할 말이 없어진다. 예전 같았으면, 아빠가 반대하면 

‘이왕 사줄 거 지금 사주라고’ 엄마는 병구의 편을 들었을 것이다.

엄마가 보인 예상 밖의 행동에 병구가 멋쩍게 ‘네~’하고 대답한다.


‘부부 공동대응’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걸까? 

‘병구 문제는 부부가 함께 의논하고 공동대응 해 주세요’ 김교수가 내준 미션이다.

병구를 두고 ‘공격하는 아빠와 방어하는 엄마의 포지션’이 완전히 변한 것일까?

하지만 아빠가 병구의 마음을 읽었는지 타협안을 내놓는다.

             아빠    병구야 옷 사기 전에, 내가 그 옷 사주면 핸드폰은 저렴한 걸로 

                       사기로 합의했지? 기억나?

             병구    네, 그러니까 저렴한 걸로 할게요

             아빠    우리 합의하지 않았어? 

             병구    네 저렴한 걸로.. 그럼 사는 날 좀 땡겨 주시면 안돼요? 

             아빠    .......

어쨌든 부부공동대응의 효과는 확실히 나타났다. 병구도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핸드폰 사는 그 날을 기다려야 했다.

방안에 있는 병구와 엄마, 낮은 소리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친구를 만나기로 한 병구가 마음이 바빠진다


              병구     지금 3천원 밖에 없어요

 엄마 엄마 임의대로는 못해 앞으로는 

               병구    네 ?

               엄마   앞으로는 내가 너한테 돈 주는 것도 아빠 허락이 떨어져야 줄 수 있어. 

               병구    네? 친구 만나러 못나가요

               엄마    이제 엄마한테 졸라도 소용없어

시계를 보는 병구. 할 수 없다는 듯 방을 나선다, 밖에서 듣고 있던 아빠가 한마디 한다.

               아빠    생각 잘 했어, 앞으로 아빠한테 와서 돈 달라고 해

               병구    네~

 힘없이 돌아서는 병구의 등 뒤에서 엄마의 말이 들린다

               엄마    양심이 없냐? 

               병구   엄마 닮아서 그렇잖아요

               엄마   뭘 그런걸 엄마 닮아~ 

병구가 목을 가리키며 너스레를 떤다

               병구   여기 털 있는 것도 엄마 닮았잖아요 

 엄마 야 엄마는 너처럼 그렇게 양심 없지는 않아? 저게 다 나쁜 거는 나 닮았대. 

낄낄거리며 웃는 아빠, 기분 나쁘지 않은 엄마. 그래도 따라주는 병구를 대견스럽게 쳐다보고 있다.


김피디도 목례를 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하지만 오늘 듣고자 했던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병구의 호적문제“에 대해 엄마 아빠의 생각을 들으려고 했는데 ,오늘은 때가 아닌 것 같다.


물어보기 좋은 날은 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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