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만 내는 아빠. 감싸는 엄마.사고치는 아들.
# 아빠의 근무처/ 성남시 일대
아빠는 전기 검침원이다. 하루 종일 밖에서 외근하는 날이 한 달에 20일 이상이다.
아파트 같은 경우 요즘은 자동적으로 체크하지만
이런 구형 다세대 주택이 모인 동네는 일일이 사용량을 체크해야 한다.
성남시 외곽에 있는 다가구 밀집지역이다. 아빠는 붉은색 벽돌이 있는 2층 다가구 앞에
서있다. 문을 열고 나오는 할머니에게 물어본다
“여기 1층이 왜 2가구로 되어 있어요? 세대는 1가구 인데?
“우리밖에 안 사는데 ,, 모르겠네”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은 듯 다시 문을 닫고 들어간다
아빠는 체크를 하고 다음 집으로 바삐 향한다. 하루에 최소 350곳을 돌아야 오늘 일을
마칠 수 있다. 산동네를 누비고 다닌 지 7년이 됐다. 처음에는 하루에 30가구도 돌기 힘들었다.
전기검침 하다 미끄러져서 남의 집 지붕위로 떨어지기도 했다. ‘계세요’ 하고 남의 집을 들어가다
개에게 쫓기는 일도 수 없이 반복했다.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힘든지 도 몰랐다. 그 때 지금의 아내인 혜경을 만나고 있을 때였다.
힘들게 일을 해도 돌아가면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그 때엔 아버님이 아파서 병원에 있을 때였는데 혜경이 아버님을 간병하고 있었다.
병원으로 돌아가면 언제든 보고 싶은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힘든 지도 모르고 시작한 일이 벌써 7년이 되었고, 이제는 동네를 보면 지도가
그려지고 체크해야 할 집들이 한꺼번에 보일 정도로 익숙해 졌다.
이제 다음 집은 발걸음이 먼저 안다.
모든 것이 세월이 가고 익숙해지는데, 큰 아들과의 관계는 여전히 어렵고 힘든 일이다,
가족의 갈등은 왜 세월이 해결해 주지 않는 걸까?
“벽보고 얘기하는 거죠! 말귀도 못 알아 듣고
집에 들어가면 어제 보시다시피 답답하죠“
‘아내는 큰아들만 감싸며 돌고 있다‘고 말하는 아빠. 땀 속에 젖은 아빠의 얼굴이
지쳐 보인다.
#엄마의 보험영업/안양시
안양에 위치한 보험 영업소,
보험영업소 안에는 이달의 성과그래프가 보이고 거기에는 엄마의 그래프도 보인다 “박혜경‘
제법 괜찮은 성적으로 그래프가 올라가고 있다. 그래프 위에는 별 풍선이 3개 나 달려 있다.
햇볕이 드는 창 쪽 아래에는 ‘열심 열심’이라고 예능자막을 치고 싶은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전화를 받으며 한쪽에는 필기를 하면서 양손이 바쁜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난 오후에는 시간이 돼, 그러면 커피숍에서 볼까? 한 3시 정도 안 될까?
힘들면 다음에 해도 돼. 그래 알았어, 3시 거기서“
곧이어 다음 고객에게 전화를 건다.
“아버님 주무셨어요? 제가 나중에 다시 전화 할까요? 이번 주 토요일 날 몇 시 정도 시간
괜찮으세요? 네 그럼 한시 정도에 제가 집으로 찾아뵙는 걸로 할게요. 토요일 1시,
그 날 뵙겠습니다 네 ”
보험영업을 한지 2년이 되어가는 엄마는 이제 제법 요령을 아는 촉망받는 사원이 되었다.
“약속을 잡았다가 쉽게 취소되는 게 보험영업 이잖아요”
사람 약속 잡기가 힘들다고 김피디에게 넋두리를 한다, 하지만 미팅 스케줄이 잡히면 힘든
얼굴이 금세 바뀐다.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확실히 맞는 말이다.
잠시 기분이 좋아진 틈을 타서 김피디가 다음 스케줄을 물어본다.
#오후 2시 쯤, 안양역 일대
무거운 가방을 등에 지고 내리는 혜경, 안양역 3번 출구에서 내려서 로터리를 건너서
마을버스를 탄다. 그리고 버스는 좁을 골목길을 요리조리 달린다.
혜경이 가방을 풀어놓은 곳은 안양의 다세대 주택이 늘어선 달지마을 이다.
그리고 혜경은 30분 동안 오르막길을 꼬박 올라서 약속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쪽이 아닌가 1715번지? 되게 골목이 어렵게 생겼네요 “
엄마는 3번이나 통화해서야 만나기로 한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왔어~ 힘 들었지”
첫 고객이었던 안양 아주머니, 혜경은 편하게 안양댁이라고 부른다. 단골 고객이다.
‘힘들기는 뭘요’ 손사래 치는 혜경을 반갑게 맞이한다.
요즘 근황과 남편 뒷담 까지 풀어 놓은 다음에야 본 영업에 들어간다.
가방에서 치약 칫솔 볼펜세트,.. 선물을 하나둘씩 꺼내는 혜경,
“왜 또 가지고 왔어, 저번에도 가지고 오고 오늘도..”
선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선물을 쾌히 받는다면 절반은 성공이다.
혜경이 신이 나 미리 체크해온 보험 팸플릿을 펼쳐 보인다.
“암으로 사망했을 때는 3천만원 이예요, 금액이 달라요, 사망원인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거든요”
안양댁이 호기심을 갖고 팸플릿을 보며 말한다.
“그럼 재해로 사망했을 때는 1000 교통사고는 1500, 암이 제일 크네, 암보험 3000 ”
혜경이 그 말을 받아서 덧 붙인다.
“진단 보장도 중요해요!
나처럼 심근경색이라고 진단을 받았을 때 그때가 중요해요
왜냐하면 다니던 직장도 그만 둬야 하고, 경력에 따라서도 다르니까,
암으로 진단을 받았을 때 4천만원, 특정암도 똑같아요 4천만원,
뇌출혈 급성심근경색 2천6백만원 ..“
엄마가 심근경색 진단을 받았었구나 ,, 아직 30대 중반 젊은 나인데
김피디는 가슴이 뜨끔해 진다.
“강원래 처럼 사고로 인해 장애가 왔느냐, 아니면 방실이 처럼 질병으로 장애가 왔느냐
그 차이거든요, 그게 엘티씨(LTC) 기능 이예요, 이거는 그런 간병보험이 없는 거고,
이 골절보험은 뼈에 살짝 금이 가도 50만원이 나오는 거예요“
연금, 학비, 실비보험 등을 다 설명하고, 1시간이 더 지나서 긍정적인 대답을 듣고 서야
혜경이 일어선다.
이렇게 두 군데를 더 돌고 나서 혜경은 한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오늘은 성과가 제법 괜찮다.
새로운 계약! 그런 희망이 엄마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올해 2년 째 보험영업을 하는
혜경은 힘들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사람들도 만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런 작은 성취감들이 답답한 현실에 위안이 되고 있다.
빠듯한 하루 스케줄을 다 소화해 내고 집으로 향할 때면 또 걱정이 앞선다.
오늘은 아들이 몇 시에 들어올까? 밤마다 치루는 전쟁은 아직도 벅차기만 하다.
# 엄마는 병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
사무실로 돌아온 엄마에게 김피디가 잠깐 인터뷰를 요청한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내 일에 대해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즐겁고,,,
처음에는 ‘내가 왜 이것밖에 안되지’ 자책도 하고, 말주변도 없어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돌아서서 내 자신에게 화가 나고 그랬죠,
지금은 많이 좋아지고 자신감도 조금 생겼죠, 뭐랄까? 매일매일 나 자신과 싸우고 있는 느낌“
김피디가 아들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제가 공부를 많이 못했어요, 아이들에 대한 공부욕심도 있죠,
근데 큰아들 병구도 어렸을 때 기초가 잡혀있었어야 되는데 안 잡혀 있잖아요,
기초가 없는 애한테 자꾸 공부하라고 하면 스트레스 받고, 학원에도 보낼라고 아빠한테
얘기하면 ‘저렇게 공부를 안 하는데 왜 돈을 쓰냐’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답이 없어요.
공부에 흥미가 없는 건 아는데 고등학교는 가야 하잖아요“
소박한 엄마의 바람이 느껴진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엄마의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의 전화너머로 아들 병구의 목소리가 들린다.
부탁하고 때론 하소연하는 엄마의 목소리에서 불안감이 느껴진다.
‘오늘 엄마가 집에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보면 알겠지’
김피디는 마음 편하게 먹기로 했다, 이제 시작인데, 장기전 이니까 조급할 필요 없다.
# 퇴근하면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
아빠는 퇴근하는 길에 유치원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5시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우람이와 해미를 목욕시키고, 머리 까지 정리해 주고서야
한숨을 돌리는 아빠. 그리고 식탁에 앉아 한숨을 돌린다.
식탁에 앉아 있는 아빠 앞에 소주병을 쑥 내미는 둘째 우람이를 보고
멋쩍게 받아 드는 아빠, 해미는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온다. 이때쯤 되면 두 아이는
아빠가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
“습관이구나”라고 생각하는 김피디에게 아빠가 한잔 권한다. 손사래를 치며 아빠에게
물어본다
김피 술 많이 드세요?
아빠 네, 하루에 한 병 정도,,
김피 매일 그렇게?
아빠 네, 소주 한잔 먹으면서 푸는 거죠
김피 혼자 드시면 심심하지 않아요?
아빠 저도 나가서 먹고 싶죠, 집에서 궁상맞게 먹고 싶겠어요.
아빠는 일을 마치면 곧 바로 현장에서 퇴근한다. 유치원에 들러서 두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오면 오후 5시. 아이들 챙기고, 아침식사 후 남은 설거지를 하고,
시간이 되면 빨래까지 한다, 아내보다 먼저 퇴근 할 수 있어서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하게 되었다.
소주를 반병 정도 먹다가 세탁실로 향하는 아빠를 보고 김피디는 두 아이에게 다가간다.
아이들은 병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김피디가 병구 방에서 놀고 있는 둘째 아들 우람이에게 말을 건다.
김피 이 방은 누구 거예요 형 방 이예요?
우람 형아방 이예요
김피 병구형은 좋아요? 어때 잘 놀아줘요?
우람 네~.. 아니요
김피 왜? 안 좋아요?
잠시 머뭇거리던 우람이가 대답한다.
우람 괴롭히니까요
김피 괴롭혀요? 어떻게 괴롭혀요?
우람 먹을 거 안줘요, 혼자 먹어요, 그리고 아빠랑 싸워요
김피 형이 없을 때만 이 방에 들어올 수 있어요?
형 있을 때는 못 들어오게 해요?
우람 형아가 못 들어 가게해요.
병구방에서 놀고 있는 우람이를 보고 아빠가 나오라고 재촉한다.
“우람아! 그 방에서 나와, 해미도 데리고 나와!”
서둘러 우람이와 해미를 거실에 데려다 놓고 TV를 켜준다. 아빠는 해미의 손에 무언가
쥐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빠의 얼굴이 붉어진다.
해미의 손에서 담배를 건네받고 아빠는 병구의 방으로 향한다.
#‘병구의 방은 쓰레기통
방을 보고 혀를 차는 아빠. 예상했던 일에 실망보다는 분노가 치 민다. 뒤 따라온 김피디
에게 물어본다.
남편 혹시 병구 나갈 때 같이 나가셨나요?
김피 학교 갈때요? 네
남편 또 빈 몸으로 나갔죠?
김피 어떻게 아세요?
남편 가방이 그대로 있네요, 어제 그것 때문에 뭐라고 하니까, 들고 다닌다고
했는데 ..그래서 혹시나 해서 봤는데 역시...
입만 열면 거짓말이니까 제가 확인해 보는 거죠
아빠의 발밑에는 아무렇게나 버려진 가방이 보인다.
병구 방을 이러 저리 다니며 들춰보던 아빠는 ‘생각보다 상태가 더 심각하다’는 표정이다.
병구가 자는 매트리스를 들춰내자, 먹다 남은 과자와 말라붙은 음료수 찌꺼기가 보인다.
그리고 뱀허물 같이 벗어 놓은 추리닝이 구석에 보이고, 의자를 치우자 꾸겨진
면티가 2~3장은 보인다. 남편은 집게손가락으로 면티를 들어 올리며
‘누구 건 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 젖는다. 책장에는 교과서 몇 개가 빈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보다 못한 아빠가 김피디에게 하소연 한다.
“저렇게 먹고 아무데나 버리고, 말라 비틀어져 있고, 저렇게 옷을 휙 던져놓고 이러니까
짜증나는 거예요, 이것도 처음 보는 옷이네요. 누구 건지 뺏어 입고,
이러니까 짜증이 나죠“
매번 아빠와의 약속은 무시되고 있다는 생각에 아빠는 화가 나기 시작한다.
# 그 시간에 병구는 오토바이를 타며 친구들과 놀고 있다. 안양천 아래서
7~8명이 번갈아 오토바이를 타고 있다. 오토바이는 누구 건지 특별히 주인이 없어 보인다.
안양천 아래 어둠이 드리우고 헤드라이트 불빛은 더욱 밝아진다.
10월 중순이지만 밤에는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분다. 하지만 병구는 이 순간이 즐겁다.
짜증나는 학교도 불편한 집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모든 짜증과 답답함에서 벗어난 듯, 친구들 끼리 웃고 떠들고 가끔 욕 섞인 농담까지 오간다.
영락없는 요즘 얘들이다.
10시가 되어갈 무렵 병구는 친구들과 헤어졌다. ‘오늘은 왜 일찍 가냐’는 친구의
질문에 딱히 대답할 말이 없다, 그냥 집으로 향한다.
# 화내는 아빠, 감싸는 아내
거실 소파 위에서 아이들 옷을 정리하는 아내와 식탁에서 설거지 거리를
정리하는 남편이 보인다.
김피 남편 분이 살림을 되게 잘하는 거 같던데요?
아내 네. 시간이 많죠~ 시간도 많고, 예민하고 섬세하고.
병구가 현관 출입문을 열고 들어온다. 분위기를 살피고 스윽~ 방으로 향한다.
그래도 오늘은 일찍 들어온 편이다. 아침에 일찍 들어오라는 김피디의 신신당부도
한 몫을 한 걸까? 알 수 없다. 시계를 보며 안심하는 엄마의 얼굴도 보인다.
오늘은 10까지 들어오라는 아빠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안도감이다.
하지만 그 순간
방으로 들어가는 병구의 등 뒤로 아빠가 한마디 한다
“싸가지 없는 새끼”
그리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방바닥에 내 동댕이친다.
등을 돌린 아들은 직감적으로 방에 있던 자기 담배임을 알아차리고 머뭇거린다.
병구 제거예요! 애들이 제방에서 가지고 간 거예요 아 ~
아빠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가 제거에요?
병구 제거라고 해야지 그럼 누구 거라고 해요.
갑작스런 상황에 엄마는 아빠의 앞을 가로막고 나선다. 그리고 소리 높여 말한다.
" 병구 거니까, 병구 주라고!"
엄마를 사이에 두고 병구와 아빠가 마주보고 서있다.
병구 제가 뭐 일부러 보이게 놔둔 거예요, 애들이 가지고 간 거지,
앞으로 제방 들어오지 말라고 해요
아빠 니 방이 어디 있어? 싸가지 없는 새끼 보자보자 하니까
엄마 줄 거면 빨리 주고 끝내라고!
일촉즉발의 위기다! 아내는 남편을 힘껏 밀어내며, 고개를 돌려 병구에게
방으로 들어가라고 눈짓한다. 아빠는 씩씩 거리며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남편이 안방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엄마는 병구방으로 향한다.
마음이 진정된 엄마는 ‘담배관리 잘 하라‘고 병구를 타이른다.
3년 째 담배를 피는 병구는 ‘이제 담배를 끊으라’고 엄마는 얘기하지도 않는다.
병구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놀이터나 아파트 구석에서 담배를
피워 왔다. 이런 병구를 보고 사람들이 자주 얘기를 해 줄때 마다, 엄마는 얼굴이
화끈 거렸다. 위층에 사는 형님댁이 남편에게 책망을 하면, 어김없이 그 날은
병구와 아빠의 싸움으로 집안이 시끄러워 졌다.
이제는 아들 병구에게 ‘동생들 보이지 않게 관리를 잘해라‘고 사정을 할 뿐이다.
그리고 엄마는 걱정 되서 한마디 덧붙인다.
“아빠는 어른이 되가지고 그런 소리도 못해! 니 눈치 보면서 살아야 해!
니 눈치 보면서 살아야 되냐고..니가 숙이고 들어와야지,
가서 죄송합니다 해!“
엄마의 기대를 뒤로 하고 병구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버린다.
방 밖에서는 아빠가 다시 거실로 나와 빈정대는 소리가 들린다.
“조만간 엄마 아빠 앞에서 담배 피겠어, 누워서 ‘엄마! 라이타’ 그러겠어”
아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이제 진저리가 난다는 표정이 카메라에 잡힌다.
거실에 마주 앉은 두 사람, 이젠 부부 싸움으로 이어진다
아내 일찍 들어왔잖아, 오늘은 봐줘야지
남편 억지로 맞추지 말라고
아내 뭘 맞추는 거냐고 말 똑바로 안했잖아,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지
남편 내가 뭐라고 그랬길래, 가는 말이 어쩌고저쩌고 그래!
언제 까지 오냐오냐 할 거야?
아내 지금 오냐오냐 한 거야? 애가 이해를 하도록 설득을 해야지!
남편 한 두 번이야? 이유가 있어야 이해를 하지!!
부부싸움은 늘 큰 아들의 문제에서 시작된다. 아빠가 병구의 잘못을 지적하면
엄마가 나서서 병구를 필사적으로 감싼다. 이렇게 부부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들의 역성을 드는 것도 빈약한 변명이라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다.
이 집의 유일한 자기편은 엄마 밖에 없다는 것을 병구도 알고 있다
김피디가 부부가 싸우는 거실을 지나 병구방으로 들어간다. 병구는 밖의 소리가 싫다는 듯
핸드폰 볼륨을 높이고 누워있다. 김피디가 병구에게 물어본다.
김피 지금 현재 같이 살고 있는 아빠는 어때? 마음속에 아빠로 자리 잡고 있어?
병구 그냥 없는 거 같아요
김피 마음속에?
병구 네, 좋게 해주면 모르겠는데 좋게 안 해줘요
김피 어떻게 하는데?
병구 먼저 ‘하지 말라’고 좋게 말할 수 있는데 화부터 내잖아요.
거실에서는 엄마와 아빠가 계속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방에서 벌렁 누워버린 아들은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아내 일찍 들어와서 제가 할 일이 뭐가 있어? 애들하고 놀거야?
남편 중3이야! 책이라도 한자 보라고 해
아내 공부하는 스타일은 아니잖아, 공부가 그렇게 욕심이 나면 과외선생님을
붙이든가 학원을 보내야지, 맨날 소리 지르고 욕하고 그러잖아.
남편 한두 번 이야기 했어 한두 번 얘기 했냐고?
그러면 하는 시늉이라도 보여야 될 것 아니야, 그러니까 짜증이 나는 거라고,
끝없이 평행선을 달리는 두 부부, 아들을 방어하는 엄마도 힘이 부친다. 원인제공은
큰 아들인데 싸움은 아내와 남편이 싸우고 있다. 항상 이렇게 싸움이 시작된다.
청소년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두 가지 말이 가장 많이 나온다, ‘그냥’과 ‘짜증나요’
이 두 마디가 그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병구는 ‘그냥 짜증나는’ 것이다
엄마와 아빠를 겨우 진정시킨 김피디는 차분하게 각자의 입장을 들어보기로 했다.
# 남편 인터뷰
“한두 번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얘기를 하면 저렇게 아내가 나서서 나랑 맞서잖아요
이래서 내말이 먹히겠어요. 1년 전에도 동네에서 담배 피는 것을 봤죠, 그래서
‘여기 아는 사람들 다 있는데 담배 끄라고 새끼야’ 화가 나서 말했는데 얼굴을 빤히
쳐다봐요, 그리고 그냥 가버리는 거예요. 아버지가 집에 와 있을 때도, 화장실에서 담배피고
나오는 거예요, ‘어른들 앞에서 조심해야지’하고 주의를 몇 번 줬는데 소용없어요.
이제는 ‘담배 끊는 것’은 바라지도 않아요, 어린 동생들도 있는데 조심해야 할 것 아니예요“
듣고 있던 아내가 할 말이 많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김피디가 기다리라고 손짓을 한다.
남편 인터뷰가 끝날 때 까지 기다렸던 아내가 말을 꺼낸다.
#아내 인터뷰
아까 처럼 아빠가 그렇게 화를 내잖아요, 그러면 나도 화를 내죠
아들이 그렇게 잘못을 했으며 불러서 ‘병구야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요목조목 설명을
해야 하는데, ‘쌍놈의 새끼’라고 욕설이 먼저 나오고 액션이 들어가니까
얘도 과격하게 대처를 하는 거죠, 그러면 저는 움찔해요. 아까 같은 경우처럼.
‘내가 아빠 편을 들면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병구편은 아무도 없는데,,,
저도 그걸로 인해서 많이 힘들죠.
누구 잘못도 아니고 제 잘못이예요, 내 잘못으로 인해서 아빠도 힘들고 병구도 힘들고..
그런 것 같아서 또 힘들죠. ‘내가 나서지 않으면 둘 다 더 힘들어진다’고 생각해서
내가 막아서는 거죠, 더 이상 큰 일이 안 일어나게 말이죠.
내 잘못이라고 자책하는 엄마가 고개를 숙인다. 침울해진 분위기다.
‘아니야 내 잘못이야’라고 말해주기를 기대하는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남편은 그저
듣고만 있다. “그래 니 탓이야 “ 라는 표정으로.
시계는 어느덧 11시30분을 향해 가고 있다.
김피디는 ‘이제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기가 빨린다‘고해야 하나?
타인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도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다.
김피디가 피로감을 느끼며 일어선다.
카메라 장비를 챙기고 나서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목례를 하고 문을 나섰다.
현관문을 닫는 순간, 묘한 해방감이 느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오늘 일들이 떠오른다, 화난 부부 그리고 짜증나는 큰 아들의
표정이 겹쳐진다,
‘다 내 잘못이야“라고 말하는 엄마의 표정이 자꾸 떠오른다. 그리고 머리 속에 맴돈다.
이 부부에게는 말 못할 일이 있는 걸까?
엄마는 왜 큰 아들을 과도하게 감싸고 있는 걸까?
정말 엄마 밖에는 큰아들편이 없다고 생각해서 일까?
지금까지 많은 가족들을 만났지만 김피디에게는 여전히 새로운 도전이다.
앞으로 3개월 안에 이들이 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