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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미 Nov 29. 2021

영웅

숲 한 모금, 쉼 한 조각_3일 차  

누구라도 영웅은 알아볼 수 있다. 

사람들은 영웅을 만나면 그가 영웅이라는 사실을 먼저 눈치채고 그로부터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점을 찾아내려고 한다. 하지만 이미 그는 영웅으로 판별이 났으므로 이후에 덧붙이는 이유는 약간씩은 구차하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난대" 

"어릴 때부터 다른 교육을 받았다네"

"인생을 뒤집어 놓을 아픔이 있었을 거야"


늦가을에 들어서자 숲은 찾는 사람이 드물어 고요하다. 이제야 내가 밟는 낙엽소리가 내 귀에 들린다. 두꺼운 운동화 속 발의 감각은 둔한데, 둔한 발로 밟는 낙엽 바스락 소리를 예민하게 들어내는 감각의 불일치가 즐겁다. 자주 걷는 코스를 지나가는데 이 녀석이 보였다. 


산책 길에서 만난 영웅 


영웅이다.


나무를 보기 위해 지나간 길을 다시 돌아왔다. 

저 존재는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나에게 다가온다. 사연도 모르고, 심기워진 시기도 모르고, 심지어 모든 잎이 떨어져서 종자를 예측하기도 힘든데 낯선 존재가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니. 인간계에서도 자연계에서도 영웅의 존재는 특별하구나. 

무엇이 다르길래 나는 이 나무를 영웅이라 느낀 걸까? 

다른 모두처럼 나 역시 이유가 필요하다. 되도록이면 합당한 이유. 만약 논리를 꿰기가 힘들다면 그냥 아무 이유라도, 일단은 붙일 수 있는 이유가 필요하다. 




"네 영혼이 이미 감지한 거 같은데, 이 친구는 영웅으로 태어난 친구야. 세상에는 그런 존재들이 있지. 너는 그걸 직감적으로 알아 차린 거고. 또 다른 이유가 필요할까?"


직감으로 알아차리는 영혼의 자아. 안타깝게도 내 속에 있는 수많은 자아 중 내가 가장 못 미더운 게 그 친구거든. 당최 하는 짓에 이유가 없단 말이야. 이유가 없는 건지, 설명해 주기를 싫어하는 건지, 이해받고 싶어 하는 욕구도 별로 없는 것 같아. 


하긴.... 영혼의 자아는 세상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존재는 아니다. 알면서도 불안해서 부리는 생떼이다. 이유가 없다면 스스로를 설득할 수 없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없다면 세상을 설득할 수 없다. 세상을 설득할 수 없으면 세상으로부터 오는 인정과 확신을 얻을 수 없는데, 세상으로부터 오는 인정과 확신이 없이 인간이, 아니 내가, 불안을 견딜 수 있는 존재인가? 


약간 더 가까이에서 본 영웅

 

답은 '아니오'. 그러니 더 가까이서 보고 이 나무의 비범함을 찾아보기로 한다. 


"너와는 다른 종자들 사이에서 오랜 세월을 지냈겠구나."

"한 번씩 뒤틀릴 때마다 상처가 생겼겠지."

"상처가 흔적이 되고, 흔적이 이야기가 되었네."

"그걸 견뎌낸 너만의 노하우가 있겠지."

"그리고 지금은 네 안에 많은 생명들이 붙어있네." 



작년 언젠가 가을 숲에선 스타를 만났었다. 홀로 빛 받아 반짝이는 낙엽, 걸어 내려가는 까치. 

잠시 스치지만 반짝이는 인연들. 

스타1_홀로 빛 받은 낙엽
스타2_ 걸어 내려가는 까치 



오늘 늦가을의 숲에서는 영웅을 만났다. 아마 나는 이 인연은 잠시 스치게 둘 것 같지 않다.


 






사전을 찾아보니 영웅을 아래처럼 정의하고 있다. 

영웅: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 (국립국어원)  


영 마음에 들지 않아 한자가 뭔지를 보았다. 꽃부리 영(英)에 수컷 웅(雄). 

영웅: 재능(才能)과 지혜(智慧ㆍ知慧)가 비범(非凡)하여 대중(大衆)을 영도하고 세상(世上)을 경륜(經綸)할 만한 사람 (네이버 한자사전)


영 와닿지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다시 정의해보기로 했다. 

영웅: 자기 존재의 비범함으로 타자의 영혼에 영향을 주는 존재. 

암만, 이런 게 영웅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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