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한 모금, 쉼 한 조각_5일 차
우리가 했던 수 많은 선택 중에 진정으로 만족스러웠던 선택이 얼마나 될까?
선택하고 후회하고,
선택하고 후회하고,
선택하고 후회하고,
그렇게 수 많은 후회를 하면서 어느 새인가 내 마음에는 선택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예를 들면,
10만원 이하의 물건을 살 때는 남의 의견을 참고한다.
그게 판매자의 추천이던, 구매 후기던, 나의 이전 구매이력을 관리해주는 온라인의 알고리즘 시스템이던 누군가의 의견을 따라서 '적당히 후회없을만한 선택'을 한다.
고가의 물건을 살 때는 직관을 따른다.
내가 단독으로 가진 물건 중에 가장 비싼건....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역시 자동차이다. 숲이 가까운 외곽에 살다보니 자동차는 필수품이다. 그렇지만 필수품치고는 상당한 가격의 베리에이션 압박이 있는 것이 자동차이다. 한계가 있는 베리에이션. 함부로 벤틀리 같은 걸 집어들 수는 없는 현실 속에서 '최대한 가장 만족스러운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러기에 가장 따르기 좋은 건 직관, 그냥 내 마음에 좋은 것을 따르는 선택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대부분 내 물건이 될만한 것들은 한 눈에 들어오니까, 어차피 가격 베리에이션에 대한 고려는 무의식에서 한번 걸러주니까, 그 안에서 그냥 끌리는 것을 고른다.
사람을 선택해야 할 때가 문제지. 물건이야 뭐...
어릴 때는 그냥 같은 반에 묶여 있으면 친구였는데, 대학에 가도 같은 과에 묶여 있으면 친구였는데, 소속이 되어 있어도 그냥 같은 범주에서 활동하면 동료였는데. 무언가를 책임지는 성인이 된다는 것은 내가 선택하는 사람에 대한 기준까지도 책임진다는 의미인가봐.
숲에 머무는 생명들도 무언가를 선택하고 후회할까? 무언가를 선택하고 만족할까?
바람과 나무.
나무를 오가며 나무 수액을 빨아먹는 풍뎅이와 딱정벌레들.
최고로 맛있는 수액을 고르기 위해 그들도 바쁘게 움직이겠지. 할머니로부터 엄마로부터 전해받은 각인된 본능으로 가장 향기로운 수액향을 찾아 더듬이를 움직이겠지.
오늘도 사색에 가득찬 채로 걷고 있는데
아직까지 지난 겨울의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에서 발걸음이 멈추었다.
시간을 통해 자라나고, 계절의 변화를 겪어 변화하고, 보이는 매커니즘과 보이지 않는 매커니즘이 존재하는 나무는 사람과 닮았다.
맞아, 나무는 열매를 보고 알지.
사람도 열매를 보고 알 수 있겠구나.
"얘네는 바닥에 떨어져서도 서로 붙어있네."
수국은 바랬어도 수국이다. 수국은 뭉쳐있기를 좋아하는 꽃이라 저렇게 다닥다닥 붙어서 멀리서보면 큰 다발이 마치 하나의 꽃처럼 보인다. 한 겨울을 나고 바닥에 떨어져있는 빛바랜 수국 색깔이 황금빛이다. 나뭇가지에 붙어있을 때와는 또 다른 화려한 색에 눈이 간다. 이렇게 바닥에 황금빛 수국을 떨어뜨린 걸 보니 너는 가지만 앙상해도 수국나무구나.
"얘네는 말라붙어서도 피고 지네"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는 무궁하게 살고 싶어하는 무궁화가 추위 속에서도 꼿꼿한 자태로 심겨져있다. 누군가가 조성해 놓은 꽃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야생환경인데 마치 보존제로 말려진 것처럼 반듯하고 예쁘다. 반듯하지 않아도 예쁜 게 꽃인데 너네는 참 반듯하기도 하구나. 얼마나 무궁하게 피면 이렇게 추운데도 나는 드라이플라워를 보고 있을까. 너도 여기 서서 너의 생명력을 열심히도 알리는구나.
열매를 맺는 나무와 꽃들에게 실컷 동질감을 느낀 다음 멈추어 또 다시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무슨 열매를 맺어왔나.
그래서 나는 무슨 열매를 맺고 싶은가.
그래서 나는 무슨 열매를 맺은 사람과 있고 싶은가.
그래서 나는 그렇게 맺은 열매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런 고민을 하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 이 공간, 이 감정,
그리고 여기 존재하는 나 자체가 지금껏 살아온 나의 열매일텐데,
이 열매를 읽어주는 그 존재들은 어떤 열매를 맺어온 사람들일까.
새삼 문안인사를 드립니다.
열매 맺으며 사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못 다한 열매는 앞으로 맺으면 되죠.
그런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계속해서 글을 써 주세요.
저도 제 글을 계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