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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미 Mar 31. 2022

예술하다

숲 한 모금, 쉼 한 조각_ 6일 차 



산 기슭에 위치한 학교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오늘은 작심하고 산길을 올라가본다. 

데크로 반듯이 깔린 길을 걸으면 산책이지만 

마른 나뭇잎에 미끄러질까 발끝에 힘을 주고 오르니 등산이 되었다. 

십 분도 가지 않아 숨이 차오른다.  운/동/부/족/


자연의 작품으로 가득한 산에서 사람의 솜씨가 보인다. 

누군가가 생각하고 재단해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 놓은 작품들. 

이 산이 학교 뒤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방문객에 알려줄 요량으로 만들어진, 짧고 작고 알록달록한 오브젝트들이 마치 내가 설치미술 전시회장 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시끄러운 연주 환영 

<시끄러운 연주 환영> 작품 해설 

1. 전체틀은 삼각형이 좋겠다. 그래야 만들기 쉽고 오래 유지되지. 애들이 손 몇번만 가져다대면 망가지기 십상이니 삼각형으로 만들자. 


2. 가로 부목은 안정감을 더해주겠지? 아래 하나 위에 하나. 무게를 지탱해야 하니 세로 지지목보다 얇은 나뭇가지로 결정하자.


3. 가만, 나뭇가지는 프랙탈이잖아. 자연이 만들어준 리얼 걸이들이 도대체 몇 개인거야. 


4. 프라이팬, 멀쩡해보여도 코팅 벗겨지면 말짱 꽝인 소모품. 트렌드에서 밀려난 양은냄비가 색깔은 예쁘네. 도로 타악기나 되어라. 

그릇 안에 또 그릇 






<그릇 안에 또 그릇> 작가노트  


개별적이고 동떨어진 인간이 

서로 비슷한 양상으로 세계 안에 존재하죠. 

'세계-내-존재'를 그릇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릇들이 엎어지고 끼워져서 

큰 그릇 안에 있네요.

제각각이지만 모여있습니다.  


  







"지금 넌 생각으로 만드는 놀이를 즐기고 있구나. '생각유희'라고 불러야 하나? 즐거운 너를 보니 안심되고 기분이 좋아. 너에게 놀이란 수 많은 대상들과의 상호작용이네.

놀기 위해 굳이 몸을 쓰지 않아도 되니 운동부족은 이해해줄게ㅎ"    



예술이다. 

인간은 자연의 작품인 숲 안에 자기 존재의 발자취를 예술로 남겼다. 

그리고 그렇게 예술을 하는 행위, <예술하다> 는 자연계에서 인간이 독점한 놀이이다. 


예술
1. 기예와 학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3.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른 숙련된 기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출처: 국립국어원)


아름다움을 추구하다 못해서 그걸 다시 한 번 표현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 의지가 예술을 만들어낸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어느 시점에 아이들은 자기의 장난감들을 일렬로 늘어놓는다. 아주 자랑스러운 표정을 하고 자기만의 법칙에 따라 자동차 줄을 세우는 아이의 눈빛은 어느 유명한 예술가의 곤조 못지 않게 진지하다. 


  

만든이가 의도한 패턴 





칸딘스키의 작품이 왜 아름다운지 알아?

그 안에는 규칙과 형식이 있거든. 

막 그어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선이 거기에 그어지기까지는 

예술가가 수 없이 고민한 비율과 면적이 있는거야.  









패턴 위에 더해진 장식




풍경은 달아만 놓아도 바람이 불면 소리를 내

그렇게 따지면 풍경 위의 꽃과 하트는 

소리를 내는 목적에는 하등 필요가 없어. 

그런데도 만든 이는 장식을 달아놓았어. 

그것도 굳이 손 많이 가는 곡선으로. 

소리가 나는 것 만큼이나 

그에게는 색과 모양을 입히는 게 중요한거지. 

그게 예술가야. 

그런 예술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감상하며 즐거워하는 너도 예술가야. 









숨이 차서 올랐던 길을 그대로 내려오면서 [달과 6펜스]의 한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달과 6펜스는 서머셋 몸이라고 하는 예술가가 예술가에게 보내는 오마쥬다. 

소설 속에는 완전한 예술을 꿈꾸는 불안정한 예술가인 스트리클랜드가 있고, 

예술과 예술가를 사랑하며 안목으로 예술을 하지만 스스로를 예술가라 부르지 못하는 더크 스트루브가 있다. 그리고 그들을 멀찌감치 바라보며 예술가의 삶에 대한 사랑과 비판을 재료삼아 예술을 하는 화자가 있다. 

셋은 모두 서머셋 몸이다.  


그 중에서도 [달과 6펜스]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는 브뤼노 선장이다. 

작가는 왜 스쳐지나가는 인물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농하게 담았을까? 


   

브뤼노 선장은 온화한 미소를 띠고 나를 보았다.
그 때 그 검고 상냥한 두 눈에는 이상한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건 그가 나를 잘못 본 거죠. 나도 역시 꿈을 가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쯤은 알 수 있으니까요. 나도 나대로의 꿈을 간직하고 있거든요.
내 식으로 따지면 나도 엄연한 예술가죠."

- 서머셋 몸, 달과 6펜스 중에서 



브뤼노 선장은 자기 인생을 예술로 살아내는 예술가이다. 

오늘 숲에서 나는, 

자연 속에 패턴과 색을 더한 예술가들을 만났고

그런 예술가를 즐거워하며 삶을 예술로 사는 내 안의 예술가를 만났다. 


여러분의 예술가는 어디에 계신가요? 



굳이 만든 대비와 패턴으로 우리 삶이 즐거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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