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한 모금, 쉼 한 조각_2일 차
비 오는 전나무 숲에는 빗방울 하나하나가 향수가 되어 내린다. 파인 향 외에는 어떤 향기도 나지 않는다. 전나무가 빽빽이 심긴 이곳은 계절이 정지되어 있다. 푸르고 시원한 색과 향이 좋아 여름에 자주 오던 길이다. 겨울이 좀 일찍 오는듯한 오늘 날씨에도 파인 향이 시원하다. 한참을 시원한 향을 즐겼으면서도 나는 연신, 앉아서 커피 마시기 좋은 벤치를 찾고 있다. 비가 오는 날이니 나무로 된 벤치는 물기를 머금었지만 그중에서도 덜 젖은 벤치를 찾고 있다. 너무 젖지 않았고 사람도 드문 적당한 자리. 이미 두 명의 아주머니가 벤치 하나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들은 나물을 뜯느라 정신이 없다.
"이걸로 뭐해 먹는데?"
물어본 그녀는 목적 없이 산나물을 뜯었나 보다.
"전!"
다른 아주머니가 확고하게 외친다. 친구로부터 지금 하고 있는 행위의 소용처를 들은, 물어본 그녀는 기쁨에 들뜬 목소리로 친구의 말을 따라 한다.
"아~ 전! 그러면 되겠네"
'저도 빵과 커피를 먹으려고 여기 왔어요. 이건 오늘 아침 제가 직접 구운 통밀빵이고요, 이건 제가 직접 뽑은 커피예요.'
그들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는 걸 꾹 참았다. 비 오는 숲이 선사하는 향의 잔치에 배불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커피 향을 즐기기 위한 자리가 필요하다. 파인 향은 시원하고 커피는 따뜻하다. 쩌렁하게 울리는 그녀들의 대화 소리와 내 귀에만 들리는 커피 한 모금 넘어가는 소리가 묘하게 조화롭다. 다행히도 비가 가늘어져 먹는 동안에는 우산을 접을 수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원하는 만큼을 얻었는지 머물던 자리를 떠났다. 모자랄 것 하나 없는 비 오는 숲에서 그녀들은 그들의 욕망만큼 나물을 캐갔고, 나는 내 욕망만큼 커피 향기를 얹었다.
그동안 왜 글을 안 썼는데?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한데 그 힘을 낼 수 없는 상태였어. 삼 년 동안 일궈놓은 상담실을 닫기로 하니 슬프고 공허하더라고.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나의 미래를 위해서도 떠나는 게 맞다.' 알지. 그런데 이걸 알고 있는 건 내 머리지 마음이 아니야. 가끔은 머리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거든. 마음은 슬픔에 머무르고 싶은데 불안한 머리는 나아가고 싶은 거야. 그 불일치의 상태를 유지만 하는데도 힘이 들지. 불일치한 내면으로 힘을 쓰니 바깥으로 내 보낼 힘은 없는 거고. 소진. 우울. 무기력. 내가 딱 그 상태였어.
많이 힘들었겠구나. 근데 오늘은 어떻게 힘을 낸 거야?
글쎄, 힘을 내가 낸 걸까? 추우니 따뜻한 게 그립네. 걸으니 배가 고프고. 반은 붉고 반은 푸른 이 길이 신기하고. 비 오는데도 소리를 내는 새들은 어디 숨었나 궁금해. 여기까지 내 몸을 데리고 온 건 내 몫의 미니멈 힘이고, 미니멈 힘을 증폭시켜 글을 쓸 수 있게 해 준 건 지금 만끽하고 있는 숲이지.
우울은 작은 욕망이 무너진 상태이다. 맛있는 커피 한잔을 위해 적당한 벤치를 찾을 때 내 마음은 작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숲은 신기하게도 욕구와 욕망을 복원해준다. 배가 고프게 하고, 걷고 싶게 하고, 다가가 만지게 하고, 적극적으로 향을 맡게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숲은 인간에게 작은 욕망을 심어준다. 이만한 우울 치료제가 없다.
내 앞에 앉은 그가 조금만 힘을 냈으면, 조금만 더 원해줬으면....조금만 더.
한 걸음 남짓 거리에 앉아서 나는 내담자에게 많은 것을 원한다. 원하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욕망을 조절하기. 하지만 포기하지는 않기. 전문가로서 해야 할 일을 알기 때문이다.
미니멈 수준의 욕망을 간직한 채로 오랜 시간 내담자와 견뎌야 하는 작업이 우울상담이다. 예민한 지각의 소유자인 그들은 조금만 넘치면 튕겨나간다. 그렇다고 함께 쪼그라들면 생명력을 잃는다.
비 오는 전나무 숲의 기운을 담아갈 수 있다면,
아주머니들의 나물 뜯는 힘찬 손길을 빌려갈 수 있다면,
커피 한 모금 삼키는 작은 욕망을 유지할 수 있다면,
상담실로 가져가서 유리병에 담아 놓을 것이다. 그리고 필요한 그들에게 나눠줄 것이다.
근데 말이야, 하나는 꼭 네가 가지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