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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미 Jun 20. 2021

회사원인가 상담자인가

회사에 상담하러 갑니다. no. 4


신용카드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인적사항을 써 내려가다 직업란에서 잠시 멈칫했습니다.   


직업:



  고민하다 회사원이라고 적었습니다. 상담자라고  적으면 이것저것 물어볼  뻔하거든요.

프리랜서 상담자일 때, 겸임교수 타이틀을 달고 벌이도 괜찮았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서류상 직업은 '주부'였습니다. 그렇게 해야 불필요한 질문과 절차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나도 어엿한 사회인이다, 왜 당신한테 편승해야 하는 건데?' 애꿎은 남편한테 분풀이를 하는 저를 보며 남편은 자주,


"앞에 '심리'자를 꼭 붙여. 그래야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라고 했었죠.


"이 답답한 양반아. 상담학은 절대적으로 응용학문이야. 상담의 역사를 보면 학문으로 만들어지기 전부터 인간 공동체에서 이루어졌던 실천행위라고. 심리학이라는 한 가지 학문의 산물이라는 생각은 말도 안 되는 오류야. 신학, 철학, 문학, 사회학, 생물학.... 인간을 다루는 학문과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그럼 카운슬러라고 쓰던가"


".... 그래. 심리 짜가 그나마 소용 있으면 좋겠네"






아~나 회사원인 거야? 상담자인 거야?


약 3초의 망설임.

이번에는 회사원이 이겼습니다. 십 대가 지난 지 한참인데 아직까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네요.


전통적으로 상담에서는 윤리규정을 통해 이중관계를 금하고 있습니다. 이중관계란 치료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함께 맺는 경우를 말합니다. 가령 친분이 있는 사람과는 상담을 하지 않는 거죠. 내담자의 사적 영역을 보호하고 혹여나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부당한 이익을 취하지 못하도록 윤리규정을 통해 금지하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 이중관계를 맺지 않는 건 상담자의 사적 생활을 보호해주는 안전막이기도 합니다.


그, 렇, 지, 만, 서, 도,  

저는 매일 이중관계 속으로 들어갑니다.     

같은 공간을 쓰고, 같은 툴로 업무를 합니다.

같은 체계로 보상과 평가를 받습니다.

일이 얽혀있는 경우에는 상담을 하다 잠시 회의를 합니다.

또는 상담 관계에 있던 그 분과 회의를 해야 하죠.


삶의 현장으로 파고든 상담은 이미 이중관계의 리스크보다 현장의 역동성에 무게를 둔 것이죠. 회사 내부 사람인 전문가를 동일한 체제 아래 두는 내부 모델의 이익이 크니까요. 조직의 고유함을 파악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신속하게 위기를 대처할 수 있으니까요.

대신 이중관계의 리스크를 어떻게 피해 가는 지는 오롯이 상담자 개인의 책임과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는 지금 회사원인가, 상담자인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회사원이면 어떻고요, 상담자면 어떻냐고요? 아니요. 저한테는 제 태도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고민 끝에 저는 상담자의 정체성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이중관계 안에 들어가서 상담을 한다는 건요,

빠른 페이스와 혁신의 아이콘인 스타트업에서 상담을 한다는 건요,

경계를 지키는 전쟁을 혼자서 치른다는 의미입니다.

형식은 이중관계지만 언제 어디서나 나 홀로 치료적 관계를 유지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왜 맨날 피곤한 지 알겠네요.


3년 정도 후에는

직업란에 당당하게

'상담자'라고 쓸 수 있게 직업군에 따로 등록 좀 되면 좋겠네요.

제가 불편한 건 모두가 불편한 거겠죠. 열심히 일해서 바꿔야 하는 거겠죠.

심리 빼고요,  괄호 열고 회사도 빼고요.

제가 하는 일? 상담이요. 그게 본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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