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상담하러 갑니다 no. 3
위키백과에 월요병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월요병은 월요일 아침에 특히나 피곤한 상태를 말한다. 주말에 쉬고 월요일에 다시 출근, 등교를 하는 직장인들과 학생들에게 주로 나타난다. 심리적인 증상으로서 주말 토요일과 일요일에 휴식을 취한 뒤에 새로 출근하여 일을 시작하는 월요일에 느끼게 되는 권태감 내지는 무력감을 말한다.
그리고 이런 내용도 나오죠.
‘병’이라는 단어를 담고 있지만 실제 치료가 필요한 의학적 질병이나 정신 질환 따위는 아니다.
(출처: 위키백과, 월요병 / 사진출처: pixabay)
음, 테크니컬 하게는 그렇죠. 정신 건강계에는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책 한 권이 있습니다.
바로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입니다. 초판이 1952년에 발간된 이후 개정이 반복되어 지금은 5판까지 나와있죠. 간단하게 진단명을 붙일 수 있는 모든 심리적 증상을 모아놓은 매뉴얼이죠. (상담 샘 나이가 궁금하다면 처음 배운 DSM 버전이 뭔지를 물어보세요... 참고로 저는 DSM-IV-TM 세대입니다). 그러니까 DSM에 없는 '월요병'은 테크니컬 하게는 의학적 질병이나 정신질환이 아닌 게 맞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저는, 회사생활 2년 반 만에, DSM에도 없는, 월요병에 걸렸습니다.
금요일 오후부터 집중력이 흐려지고 마음이 붕 뜬다: 교감신경 항진 + 과각성 상태
금요일 밤, 에너지가 최고조에 달하며 잠을 이룰 수 없다: 경미한 조증 에피소드 + 불면
토요일 24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강박적 사고
토요일 밤, 약간 울적하다: 경미한 우울 에피소드
일요일 오전, 주말의 즐거움에 집착하는 나를 회개한다: 죄책감 추가
일요일 오후, 왠지 모르게 나른하고 의욕을 상실한다: 무기력 추가
일요일 밤, 피곤한데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하며 선잠을 잔다: 불안 추가
월요일 아침, 역시 인간은 시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어: 포기, 실존적 운명론자로 빙의함
정리해놓고 보니 월요병은 weekly base로 일관적일 뿐 아니라 나름 과정의 통일감도 갖추고 있는 증상입니다. 이 정도면 다음 판 DSM에 우울이나 불안 하위 증상으로 넣어 줄만도 할 텐데요. 그렇다면 어느 저자님의 책 제목처럼 산업 재해로 처리될 수도 있겠습니다.
우스갯소리 아니고요.
진단명은 없지만 월요병은 정신건강 선진국에서도 monday syndrom, monday morning blues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직장인들의 주요 스트레스로 여겨졌죠. 주로 일요일 밤부터 시작되는 불안, 피로, 무기력, 의미 상실의 문제입니다.
"일주일을 또 어떻게 견디나"
"충분히 쉬지 못했어"
"잠이나 실컷 잘걸"
"빨래를 또 안 했네"
"월요일부터 지각하면 어쩌지?"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사는구나..."
제 안에 흘러가는 생각입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 안에도 흘러가는 생각이겠죠.
회사원이 되고 보니 월요병은 진짜였습니다.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정해진 형식 안에 살아야 하는 불쌍한 인간이기 때문에 겪는 증상이기도 하고요.
선택의 주체가 나이고 싶은 욕구와 소속의 안정을 누리고 싶은 욕구가 충돌하는 욕심쟁이 인간이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8시간이라는 근무시간 안에 많은 일들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유능한 인간이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는 언제나 갭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어찌 되었건 월요병은 진짜였습니다. 다행인 건 5일 지나면 금요일이 또 온다는 거고요, 불행인 건 3일 지나면 월요일이 또 온다는 거예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반복되는 게 인생이지 싶습니다.
일요일 밤 루틴을 만드시는 게 좋습니다.
루틴 하게 생기는, 본질이 루틴인 문제이기 때문에 루틴으로 달래는 거예요.
저에게는 한 동안 브런치에 글쓰기가 일요일 밤 루틴이 될 것 같습니다.
카페인 프리 차 한잔, 조명은 간접 조명, 손가락 근육만 간단히 쓰다가 잠을 자고,
내일 아침에 저는 또 <회사에 상담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