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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단근 Jun 27. 2024

눈사람 폭행 사건

눈사람은 겨울과 제법 잘 어울렸다.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사람처럼 인간도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

어린 시절에는 순수하다가 어른이 될수록 세월의 때가 묻기 시작하고, 나쁜 생각에 대한 반성조차 무뎌지기 마련이다.


눈사람을 만들려면 좋은 눈이 필요하다.

추울 때 내리는 싸락눈보다 따뜻할 때 내리는 함박눈이 쉽게 뭉칠 수 있다.

따뜻한 눈처럼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이에게 온기를 전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면, 당신의 삶이 단단해질 수 있다. 

    

눈이 그친 거리에 몸을 녹이는 눈 아저씨가 있다.

삐뚤빼뚤한 숯덩이 눈썹으로 화장한 그는 힘들게 사는 우리에게 잠시나마 웃음을 선물했다.

누군가 눈 하나 끔쩍하지 않고 그 아저씨를 발로 찼다.

이 사람에게 치이고, 저 사람에게 치이는 자신과 달리 묵묵히 버티고 있는 그 사람이 미웠나 보다.

보기만 해도 좋은 눈 아저씨가 폭행당해 가로수 한 귀퉁이에 쓰러져 있으니, 내 눈이 아리다. 

    

해가 뜨면 떠날 사람을 그대로 두는 순박한 동심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사고하는 데는 어른이 되고, 사랑하는 데는 아이가 좋다.

그러나 세상은 순진함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는 자에게 환호했다.

동심을 담은 동요와 동시는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들리고, 어린아이의 마음은 잔꾀를 부리는 자에게 농락당해 어느새 한 구석으로 묻혔다. 

    

살아보니 세상은 겨울왕국이다.

그 왕국은 속이 보이는 대구탕처럼 맑고 따뜻한 동심의 세상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속을 알 수 없는 매운탕처럼 맵기만 맵다.

이 땅에 살아있는 정의는 눈 속에 파묻히고, 폭행당한 눈사람처럼 가슴 아픈 사정이 왜 그리도 많은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봄보다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이 더 훈훈할 때가 있다.

온기를 품은 함박눈처럼 정 많고 눈물 많은 당신이 누군가의 언 마음을 잠시라도 녹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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