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단근 Jul 04. 2024

기대와 싸워봐야 맨날 진다

아이들은 도깨비방망이다.

세종시에 이사한 다음, 콧바람을 쐬러 가까운 비암사에 들렀다. 

그 절 입구에는 도깨비 도로가 있었다.

도로의 시작점에서 자동차의 기어를 중립으로 놓고 발을 떼면 분명 오르막길처럼 보였는데 서서히 내려갔다.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도로처럼 부모라면 누구나 ‘우리 아이는 천재가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도깨비방망이와 같이 무엇이 나올 줄 모르는 자식의 천재성에 키워 주려고 학원에 많은 교육비를 투자했다.

사고력이 덜 여문 단계에서 엄마는 아이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

그러나 사고력이 자랄수록 자기가 원하는 길로 가고 싶다.

안 가려고 발버둥을 치는 데도 부모로서 부풀어 오른 욕망을 꺼뜨릴 수 없다.

자녀는 그만 멈추고 싶은 기어 중립 상태인데도, 자꾸 가라고 페달을 밟으니 엔진 소리만 요란하다.

내리막길에 밀려 내려가는 자동차처럼 부모의 재촉은 아이의 엔진을 갉아 먹는 행위이다.

내구성에 따라 몇 미터 가지 못해 탈이 날 수 있고, 좀 더 멀리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부모의 바람대로 한 것은 학교, 직장, 결혼 등 인생의 한 부분에서 언젠가 탈이 나기 마련이다.

     

어릴 적 부모님이 장래 희망을 물으면 나는 장관이라고 당차게 대답했다.

농사꾼으로 면서기에게 고개를 숙이던 그들은 내가 고위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약간은 기대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들의 소망과 다르게 건설 현장에서 일했지만, IMF로 실직한 후 동사무소에서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흐른 뒤 공무원이 되었다고 말하니, “야~야! 그것만이라도 고맙다”라고 말할 때, 마음의 짐을 다소 덜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지은 니코스 카잔자카스의 묘비명은 이렇게 기록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이다.

살아보니 누구의 희망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기대와 싸워봐야 맨날 지기 마련이다.

기대할수록 예상과 벗어나므로 오히려 기대하지 않는 삶이 더 좋다. 

    

기대는 잡을 수 없는 바람이다.

도요새는 억지로 날갯짓하면 얼마 못 가서 꼬라박는다. 

그래서 그 새는 바람이 불지 않으면 부는 날을 기다리고, 공기의 흐름이 바뀌면 올라타서 지구의 반대편까지 날아갈 수 있다.

날이 흐리면 낮게 날면 되고, 날이 좋으면 높게 날면 된다. 

누구의 기대를 위해 살지 말고, 바람결에 모든 걸 맡기자.


이전 05화 슬픔을 제때 흘려보내야 앙금이 남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