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단근 Sep 05. 2024

증오하는 사람을 응징하는 방법

중앙부처에 첫 발령을 받고 근무할 때였다.

내가 잠시 맡았던 지출 업무를 후임 여직원에게 넘겼다.

그녀는 국장들의 비서 업무를 수행했다며 은근히 그들과 친분을 과시했다.

연말이 되자, 나는 잔여 휴가를 사용했다.

휴가를 다녀오니, 과장은 나를 질책했다.

“인계인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여직원이 마감하는 데 애를 먹었어”

‘어이가 없네!’

매뉴얼을 만들어 미리 전달했고, 금전 지급에 대해 더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전화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언제 물어봤냐고?

내 자리에 돌아오자, 그 직원은 레이저 눈빛을 쏟으며 나를 죽일 듯이 쳐다봤다. 

그런 다음 내게 식사 장부도 주지 않았고, 직장에서 나에 대한 평판은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갔다.

느낌이 싸해서, 사무실에서 발생했던 사건을 수첩에 기록했다.

2~개월을 지켜보니 그녀는 6시에 퇴근하면서 부서원의 초과근무수당을 다 가져갔다.

그래서 나머지 직원은 품삯이 모자라, 일해도 다 받지 못했다.

이건 아니지 싶어 사무관과 함께 과장에게 얘기했다.

“너희들이 그녀를 헐뜯으려고 하는 게 아니냐!”라는 대답에 어이가 없었다.

그런 얘기를 더 해본들 새내기의 의견이 수용될 가능성도 없고, 내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서 타 부서에 가려고 했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흡혈귀이다.

그러므로 마음에 안 들면 관심을 접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적개심을 품을까?

하나는 상대방을 악의 축으로 몰아 심판대에 세우고 싶어서.

냉철히 생각하면 그런 기분을 자세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증오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상대방을 마녀로 만들어 자기를 미화하려는 것은 아닌지, 그에 따른 분노가 정당한가를 돌아볼 일이다.

그녀는 남의 수당을 챙겨갔지만, 나 자신도 커피믹스를 집으로 가져가는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횡령했다. 

    

다른 하나는 싫어하는 이와 한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한국인은 소말리아 해적이 극악무도한 짓을 해도 일본의 소소한 잘못보다 덜 미워하는 이치와 비슷하다.

분한 마음이 들불처럼 피어오르면 그 공간을 분리하자.

그렇게 질색했던 그녀도 다른 부서로 가자, 그렇게 싫어할 연유가 있었는지 나를 되돌아봤다.

눈에 보지 않으면 미움도 멀어지기 마련이다.     

적대심을 함부로 분출하면 주변에 불똥이 튈 수 있다.

반대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압하면 자신을 망칠 수 있다. 

화산이 분출할 때 먼저 지진이 발생하는 것같이 미움은 징조가 뚜렷하다.

그런 감정이 표출될 조짐이 보이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라.

메모장에 그림을 그리든지, 욕이라도 적어서 기분을 전환하자.

어린 시절 “바보! 멍충이!”라고 쓴 담벼락에 낙서처럼 자기의 메모를 읽다가 피식하고 웃을 수 있다. 

    

증오하는 이를 응징하려면 미운 이를 밟으려고 하지 말고 놓아주자.

그가 잘못되면 자책할 수 있으므로 오히려 잘돼서 갑남을녀처럼 그저 그런 사람이 되길 응원하자.

그래서 당신은 미움을 떠나보내고 빛 가운데로 걸어가라.

남을 많이 용서하는 이가 많이 사랑받는다.     

이전 22화 말은 못 했지만 속은 골았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