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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단근 Sep 12. 2024

그리움은 꺼내고 싶고, 외로움은 묻고 싶고

그리움은 꺼내고 싶다면, 외로움은 묻어두고 싶다.

대학교 졸업 전에 운이 좋게도 입사 시험에 미리 합격했다.

졸업식까지 시간 여유가 있어 친구를 따라 장애인 시설을 방문했다.

마침 담당 선생님이 퇴사해서 봉사자가 아닌 직원으로 근무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근무조건은 10명의 아이와 먹고 자면서 24시간을 같이 생활하는 것이었다.

선풍기 하나로 버텨야만 했던 여름날은 무더웠다.

그런데도 정에 굶주린 아이들은 꿀단지를 끌어안듯 내 곁에서 잠이 들었다.

“몇 밤 자면 엄마가 온대요”라는 그들의 투정을 받아주면서 새록새록 정이 들었다.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아서 이별은 내겐 힘든 일이었다.

다시 오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지만, 밤늦게 정문을 서성이면서 ‘잘 지내겠지’라면서 발길을 돌린 적이 많았다.

그러나 봉사심만으로 생활할 수 없어 마음의 빚을 남긴 채 현실로 돌아왔다.

감정이 메말라지는 나이에도 가끔 그 아이들을 꿈에서 만났다.

빛바랜 사진처럼 얼굴도 가물가물하고 이름도 하나둘 기억에서 사라지지만, 보고 싶은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외롭다는 건 소파 밑으로 무심히 굴러간 동전이다.

닿을 듯한 깊이까지 들어가서 꺼내려고 손을 뻗지만, 손가락을 내밀수록 돈은 더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몇 번 시도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어느 날 청소하다가 녹슨 주화를 발견했다.

사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외로움을 놔두며 어느새 마음에 녹이 슬 것이다.

이젠 “인생은 다 그런 거야.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거니까”라면서 그 감정을 놔두지 말자.

고독은 미리미리 솎아내지 않으면 나중에 수습하기 힘들다.  

   

명치로 파고드는 적막에서 당신을 구출하기 위해 망치로 때려라.

당신은 방법을 몰랐고, 마주치기가 두려웠을 수 있다.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재미있는 콘텐츠로 잠시 잊으려고 하나, 이런 활동이 끝나면 허전함을 대신해 줄 것이 없다.

오직 당신이 책임져야 할 뿐이다.

그래서 좋은 고독을 배울 필요가 있다.

출출한 날엔 음식을 먹고.

우울한 날엔 음악을 듣고.

그리운 날엔 혼자서 그림을 그려라.

그런 경험이 쌓이면 그 감정의 깊은 매력에 빠질 수 있다.

      

그리움은 무리를 짓는 인간의 본능이라면, 외로움은 홀로 서야 하는 숙명이다.

안개꽃은 한 줄기에 여러 송이가 피고, 장미꽃은 하나씩 핀다. 

그리움을 상기하는 안개꽃처럼 꽃 무리가 아름다울 때가 있고, 외로움을 파묻는 장미꽃이 예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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