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는 한국인의 안부 인사였다.
서로가 가진 것 없이 살던 시절, “밥 한술 뜨고 가”라며 이웃 간의 정을 나눴다.
산업화 시대를 지나면서 밥은 간부의 권력으로 변질되었다.
상사와 식당에 들어가는 순간, 즐거운 자리가 아닌 피곤한 일이 되어갈까.
으레 윗사람을 편한 자리로 안내하고, 그분의 옷을 받아 옷걸이에 걸었다.
내 자리에 앉아서 윗분들에게 물을 따르고, 휴지를 깔아 수저를 얹었다.
상사와 비슷한 음식을 주문하고 나서 밥값의 청구서로 나는 재미없는 회사 이야기를 귓등으로 듣는다.
가게를 나오면서 상급자의 호의에 대해 감사를 빼먹지 않았다.
인사치레를 받은 너그러운 상사는 법인카드로 긁었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요리가 무슨 맛인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유교에서는 인을 실천하기 위해 예를 중요하게 여겼다.
예의의 본질은 허례허식을 경계하는 것이다.
조선 시대에 윤증은 후손들에게 제사는 떡국, 차, 과일만 올리라고 했다.
후대로 갈수록 체면 중시, 의전 중시, 명분 중시 등 형식이 내용을 잠식했다.
형식을 중요하게 여길수록 무엇을 의식하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인간은 다양하다.
혼자가 먹는 게 편한 이가 있고, 같이 먹는 것을 좋아하는 이도 있다.
서로 다른 취향을 지니고 있을 뿐인데도 홀로 점심을 먹으면 그 사람은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잘못된 견해가 있다.
누군가는 색안경을 쓰고 봐도 왜 혼자가 편할까?
그 시간은 자신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가 사냥한 후 동굴 속에서 쉬듯이, 온전한 자기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잠시 쉬면서 오전의 일을 되돌아보고, 오후의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좋은 구절이 떠오르면 수첩에 적고, 음악을 듣거나, 산책할 수 있다.
매번 끼니를 챙기는 대신 단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굶어서 내장 지방을 태워 몸을 가볍게 만들 수 있다.
달력도 매월 열 번 이상은 쉬는데, 당신을 위해 일한 위장에 잠시 안식을 부여하자.
사람은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이 편해야 좋다.
불편한 상사랑 먹는 소고기보다 내 돈 내고 즐기는 돼지 껍데기가 마음이 편하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누군가를 의식하면서 어색하기보다 때로는 당신과의 약속을 잡아, 자신의 충만해지는 시간을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