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소개서.
도비를 닮은 스핑크스 고양이는 6시면 알람 시계가 되어 “사각사각” 문을 긁는다.
방문을 열어주니 사감 녀석은 ‘남자 3호! 간식 준비해’라고 펀치를 날렸다.
책장에 숨긴 군음식을 받아먹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여자 1호에게 갔다.
녀석은 여자 1호가 출근하면 여자 2호에게 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
여자 2호마저 외출하면 거실의 온열 방석에 앉아 기지개를 켰다.
지나가는 새를 바라보며 세상 다 산 노인처럼 여유롭다.
보은은 쥐똥만큼도 없고, 배신은 거르지도 않았다.
‘그건 배반이야’라고 외쳐도, 사감은 나를 대놓고 무시하기 일쑤다.
엄마 김밥, 꼬마 김밥은 있어도 아빠 김밥은 없는 것처럼.
간식 줄 때만 집사이고, 안 주면 아저씨이다.
다음은 한 지붕 아래 세 식구이다.
아내는 1호 안방에서, 딸은 2호 가운데 방에서, 나는 3호 작은방에서 따로 살림을 차렸다.
방마다 컴퓨터도, 책상도, 침구도 각각 있다.
취미도 취향도 성격도 다르다.
자식은 부부를 반반 닮는다고 하나 우리 집에 한정하면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집사람은 그림이, 아이는 음악이, 나는 책이 좋다.
잘하는 것도 너무 다르다.
안주인은 화초를 잘 가꾸고, 딸아이는 기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
문제의 남편은 음치에다가 손재주도 없고, 운동도 잘하지 못하는 등 별로 쓸 데가 없다.
남자들은 기계를 잘 만진다고 착각하나, 전등불 하나도 못 가는 기계치이다.
‘어쩌겠는가! 정전기가 잘 통해 전기 제품은 쥐약인걸!’
이럴 땐 딸에게 손을 빌리는 게 빠르다.
어쩌다 우리 가족은 이런 생활을 하게 되었을까?
딸이 어릴 적에는 우리도 같은 방에서 지냈다.
그러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아내가 전등불을 끄면 올빼미인 딸은 “아빠! 잠이 안 오는데 놀아줘”라고 칭얼거렸다.
어쩌다 잠이 들어도 그녀들은 몸부림이 심했다.
모녀에게 이불을 덮어주다가 나는 잠을 설쳐 다음날 회사에 가면 하품을 감출 수 없었다.
서로 불편해 딸이 독립할 때까지 각방을 쓰도록 의견을 모았다.
흔히 ‘세월이 가면 내외는 서로 닮는다’라고 말한다.
스탠퍼드 대학 코신스키 연구팀이 이 가설을 검증해 보니 결과가 달랐다.
“부부는 닮는다”가 아닌 “닮은 사람이 커플이 된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서로 맞지 않는 합집합을 강요하기보다 적당한 교집합을 만들자.
주택에도 공간을 나누듯 마음에도 방을 나눌 필요가 있다.
혼자서 땅굴 파는 독방도 필요하고, 타인과 공존할 수 있는 다방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