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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단근 Mar 26. 2022

가난한 지갑을 채워주는 넉넉한 마음 계좌

#8  첨가의 후치사 상당구:  에 더하다, 에 한하지 아니하다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간 5일장은 첫사랑처럼 설레었습니다. 맛있는 풀빵을 먹을 수 있기에 마늘종(다른 말: 마늘 꽃줄기)을 다라이(다른 이름: 대야)에 싣고 첫 버스를 타고 갑니다. 얼른 팔아 풀빵을 사 먹으려면 좋으련만, 한낮이 되어도 손님은 보이지 않고, 야속한 마늘종은 “나를 팔아 풀빵을 잡수시길 쉽지 않소.”라고 조롱합니다. 이윽고 총각무처럼 새파란 학생이 마늘종 한 단을 사 갑니다. 엄마는 작은 돈을 받고 떠나가는 학생에게 덤에 더하여 덤을 줍니다. 엄마에게 “그렇게 퍼주다간 풀빵 하나도 못 사 먹겠다.”라고 돼지 입술처럼 입이 툭 튀어나온 채 한 마디를 쏘아붙입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엄마는 가난한 지갑을 채워주는 넉넉한 마음 계좌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은 너도 나도 가난해도 마음속 정(情)의 잔고에는 인심이 넘쳐났습니다. 이제부터 덤과 같이 첨가를 나타내는 말을 살펴보시지요. 

    

 첫째 ‘에 더하다, 에 덧붙이다, 에 추가하다’가 있습니다. 일반 명사가 앞쪽에 붙으면 ‘데다가, 뿐만 아니라, 에다가’로 받아줍니다. “담배에 건강 경고 문구에 더하여 경고그림을 붙여야 한다.”는 “담배에 건강 경고 문구에다가 경고그림을 붙여야 한다.”가 됩니다. 또한 동사성 한자어 명사가 앞에 오면 ‘ㄹ거니와, ㄹ뿐더러, 으려니와’ 따위로 맞교환해줍니다. “주변국 협력 증진에 덧붙여 다자외교를 확대해 나갈 것이다.”는 “주변국 협력 증진을 할뿐더러 다자외교를 확대해 나갈 것이다.”라고 바꿔줍니다.

     

 둘째 부정문을 만들어서 첨가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에 한하다, 에 그치다’와 반대말인 ‘에 한하지 않다, 에 한정하지 아니하다, 에 그치지 아니하다’가 있습니다. 이때는 에 더하다 따위와 같은 방법으로 고치거나 ‘을/를 넘다’로 변경하면 됩니다. “법익은 형법에 한하지 않고 모든 법에 적용된다.”는 “법익은 형법을 넘어 모든 법에 적용된다.”라고 도로 받습니다. “빈부격차는 미국에 한정하지 않고 전 세계가 겪고 있다.”는 “빈부격차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겪고 있다.”가 되고, “범칙금 부과에 그치지 않고 구류 처벌까지 받다.”는 “범칙금 부과에다가 구류 처벌까지 받다.”라고 맞받아칩니다.


 덤으로 첨가는 계속·동시를 나타내는 단어와 비슷합니다. “빈부격차는 미국에 한정되지 않고는 전 세계가 겪고 있다.”는 “빈부격차는 미국에 이어 전 세계가 겪고 있다.”와 비슷비슷합니다. 그리고 ‘와/과’가 사라진 자투리인 더하여, 덧붙여 따위는 접속부사로도 사용됩니다.


 물건을 떨이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첨가의 에 더하다, 에 한하지 않다 따위는 에다가, 에다가, ㄹ거니와, ㄹ뿐더러 따위로 새롭게 교환해줍니다.

     



부정을 타다, 부정을 만들다

다양한 부정을 나타내는 후치사 상당구

     

 먹거리가 흔하지 않은 시절 저는 단백질 사냥꾼이었습니다. 들로 개울로 쏘다니면 꿩이랑 개구리랑 심지어 메뚜기도 단백질 공급원이라서 부지런히 잡아먹었습니다. 그래도 안 먹는 고기가 있었습니다. 노루고기입니다. “노루고기를 먹으면 삼 년이 재수가 없다.”라는 미신이 있었습니다. 부정을 탄다고 해서 다른 고기를 몰라도 마음이 꺼려하는 고기가 되었습니다. 소설 『토지』에서도 최치수 아버지가 개가 사냥한 노루고기를 먹고 부정을 타 죽었습니다. 부정 타는 노루고기처럼 일본어는 나이(ない)나 즈(ず)를 활용하여 부정의 후치사 상당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말을 깔때기처럼 걸러 쉬운 말을 써야 하는데도 불순물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사용합니다. 그럼 하나하나 익혀보시지요.


① 에 개의치 말고/않고, 에 관계없이, 에도 불구하고, 에 상관없이, 에 아랑곳없이, 은/는·을/를+개의치 않고, 둘째 치고, 막론하고, 별도로 하고, 불문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제쳐두고, 차지하고도, 의 구별 없이 따위

   

 ‘에도 불구하고’ 따위는 양보나 무관(無關)을 나타냅니다. 건만, 더라도, ㄹ 지라도, ㄹ지언정, 에도, 지만이나 아무튼(지), 어쨌든(지), 여하튼(지), 하여튼(지) 따위로 고칩니다. “지위가 높음을 개의치 말고 처벌해라.”는 “지위를 묻지 말고 처벌하라.”라고 다듬습니다. “상황이 개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탈하는 사람은 많다.”는 “상황이 개선되고 있지만 이탈하는 사람은 많다.”라고 표면을 사포질을 합니다.


② 에 의하지 아니하다


 ‘에 의하다’를 부정하면 ‘에 의하지 아니하다’가 됩니다. 이때는 이/가 아니다, 말고 따위로 표면을 다듬습니다. 헌법 12조 1항의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는 “누구든지 법률이 아니면 ….”라고 간단하게 분칠을 합니다.


③ 에 다름 아니다, 에 다름없다, (임)에 틀림없다, 와/과, 다름 아니다, 와/과 다름없다, 이나 다름 아니다, 이나 다름없다

     

 관공서에 서류를 제출할 때 ‘사실과 상위(相違) 없음’이라고 하고 심지어 명판 도장까지 새깁니다. 상위 없다, 다름없다, 틀림없다 따위는 동격을 나타내는 일본어 니소이나이(に相違ない) 따위를 직역한 말입니다. “사실이다,”나 “사실이 맞다.”라고 하면 되는 데도 아직도 일본산 불량품을 그대로 씁니다. 이런 말은 ‘(꼭, 바로, 분명히, 확실히)+이다’로 표면을 벗깁니다. 또한 ‘에 해당하다’와 비슷한 뜻이 있습니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위에 다름없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위에 해당하다.” 모두 “민주주의를 위반하는 행위이다.”라고 연마제로 문지릅니다.


④ 에 못지 아니하다


 에 못지 아니하다는 만큼, 만치 따위로 그라인더질을 합니다. “결과에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하다.”는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다.”라고 광택제를 발라줍니다.


⑤ 에 불과하다, 에 지나지 않는다


 ‘에 불과하다, 에 지나지 않는다’ 따위는 뿐이나 만으로 고치거나, ‘겨우, 고작, 기껏해야+이다’로 손봅니다. “올림픽 출전 당시에 18세에 불과하다.”는 “올림픽 출전을 할 때 고작 18세이다.”라고 재료로 바꿉니다 “태양은 아침에 떠오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곧 “태양은 아침에 떠오는 별일뿐이다.”가 됩니다.


⑥ 을/를 금치 못하다, 을/를 금할 길이 없다, 을/를 금할 수가 없다, 을/를 마지아니하다

     

 ‘을/를 참다’를 부정한 ‘을/를 금치 못하다’는 매우 ○○하다, 몹시 ○○하다로 손질합니다. “애석한 마음 금할 길 없네.”는 “매우 애석하네, 매우 슬프네.” 따위로 나사못을 교환합니다. “민족 분단에 통탄해 마지아니하다.”는 “민족 분단을 매우 통탄합니다.”라고 도료를 바릅니다.


⑦ 할 가치가 없다, 할 것이 없다, 할 필요가 없다

·

 ‘에 족하다’를 부정한 ‘할 가치가 없다, 할 것이 없다, 할 필요가 없다’는 ‘하지 않아도 된다.’로 코팅을 입힙니다. “그 사람은 신뢰할 가치가/필요가 없다.”는 “그 사람은 신뢰하지 않아도 된다.”가 됩니다. “이상히 여길 것이 없다.”는 “이상히 여기지 않아도 된다.”라고 포장지를 입힙니다. 참고로 ‘에 족하다’는 만큼, 만한, 충분한 따위로 받아줍니다. “피해를 보상하기에 족한 금액”은 “피해를 보상하기에 충분한 금액”으로 박스를 씌웁니다.


 쇠붙이 가공을 마무리를 해 봅니다. 쇠붙이가 일본산 불량 재료이므로 부정으로 가공해봐야 달라지지 않습니다. 개꼬리 삼 년 묻어도 황모(족제비 털) 안 되듯 모두 쓰레기통에 버려야만 하는 불량품입니다. 

    



 죽여도 죽지 않는 불가살

조사를 잡아먹은 후치사 상당구

   

어릴 적 아빠와 추억이 아이에게 평생을 간다고 합니다 지나간 버스가 미련이 남 듯 “그땐 왜 그랬을까?”라고 후회를 해봅니다. 그나마 아이와 함께 낚시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낚싯대에 미끼를 달아주면 아이는 연신 바다의 별인 불가사리를 잡아 올립니다. 불가사리는 무엇이든 삼키고 죽지도 않습니다. 놓아주어도 또다시 살아납니다. 불가사리처럼 죽여도 죽지 않는 불가살과 같은 말을 알아보시죠.     

  

후치사 상당구는 불가살처럼 조사를 꿀꺽하였습니다. ‘에 있어서’는 ‘에, 에서’ 따위를 잡아먹었습니다. ‘에 대하다·에 관하다’는 을/를, 대로 따위를 꿀꺽 삼켰습니다. ‘에 있어서, 에 관한 한은, 에 관해서는, 에 대해서는’ 따위는 만큼은, 만은, 에서는, 은/는 따위를 싹 갈아먹었습니다. ‘에 의하다, 에 따르다’ 따위는 ‘대로, 마다’ 따위를 냠냠했습니다. ‘에 이어’는 ‘와/과’를 홀랑 먹었습니다. ‘에 반하다, 에 비하다’ 따위는 ‘보다’를 한입에 먹었습니다. ‘에 못지아니하다’는 ‘만큼’을 훅 마셨습니다. ‘에 한하다’는 ‘만, 에서만, 으로만, 까지 은/는’ 따위를 홀라당 먹었습니다. ‘에 걸치다’는 ‘까지’를 통째로 잡수셨습니다. 이제 남아 있는 말을 살펴보시지요.  


 첫째 ‘로 하여금’이 있습니다. ‘로 하여금’은 과거에 죽은 말인데도 불가살처럼 다시 사용합니다. ‘로 하여금’은 ‘에게, 한테’로 받습니다. “학교는 학생들로 하여금 실제 선거를 진행하도록 했다.”는 “학교는 학생들에게 실제 선거를 진행하도록 했다.”라고 바꿉니다.


 둘째 ‘에 해당하다’가 있습니다. 서술격 조사 ‘이다’로 고칩니다. ‘이건 난이도 상에 해당한다.’는 ‘이건 난이도 상이다.’라고 갈아줍니다.


 셋째 ‘을/를 계기로, 을/를 기회로’가 있습니다. 이것은 ‘부터, 에서’ 따위로 손질합니다. “코로나를 계기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었다.”는 “코로나로부터 비대면이 확산되었다, 코로나를 시작으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었다”라고 교체합니다.

     

 낚시를 다 했기에 뒷정리를 해봅니다. 불가살의 한 종류인 ‘로 하여금, 에 해당하다, 을/를 계기로’에 먹힌 ‘에게/한테, 이다, 부터’ 따위를 살려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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