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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Aug 22. 2019

지각을 하지 않는 이유

나는 욕먹는 게 싫다

10년 넘게 회사를 다니며 지각을 한 건 딱 2번이다. 한 번은 버스에서 깜빡 잠들어서, 한 번은 일주일 간 맡기로 한 친구 고양이가 울어서 같이 밤을 새우다 아침에 깜빡 잠들어서다. 그 두 번을 제외하고는 매일 정시보다 10분 빠르게 회사 문을 열었다. 이렇다 보니 회사 사람들에게 나는 ‘지각을 하지 않는 인간’으로 새겨졌다. 아침에 깜빡 잠이 들어 알람을 놓쳐 부랴부랴 손에 집히는 걸 집어 입고 모자를 쓰고 회사에 늦게 나타난 나에게 돌아온 말은 “괜찮아? 어디 아파?”였으니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알람 소리가 나면 반사적으로 눈을 뜬다. 밤새 흐트러진 베개와 이불을 팡팡 소리를 내며 정리하고 내려가 머리를 감으면서 본격적으로 정신을 차린다. 상하의가 어울리는지 최종 점검을 한 후 옷을 입고 머리를 말리고 가볍게 화장을 하고 책상 옆에 던져둔 어제의 가방을 그대로 들면 출근 준비는 끝이다.


나만큼 회사 가까이 살면서 지각을 밥 먹듯 하는 친구가 “어떻게 해야 지각을 안 해요?”라고 물었다. “맨날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나오면 되잖아.” 그 친구는 매일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는데, 횡단보도 신호가 안 걸리면 정시에 도착하고, 신호에 걸리면 5분쯤 늦는 거라고 했다. “그럼 5분 일찍 나오면 되잖아!”라고 대답하며, ‘지각을 안 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했다.


성실한 사람이란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건 아니다. 근거 없는 비난을 받기 싫은 것뿐이다. 일을 잘할 때는 상관이 없지만, 뭔가 실수라도 하는 날엔 ‘맨날 지각이나 하니까 그렇지’ 같은 인과관계가 크게 없어 보이는 말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지각을 하지 않는 것도, 맡은 일을 책임지고 끝내는 것도, 이왕이면 그 일을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욕먹기 싫다’는 단순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나는 오늘도 ‘퇴근 시간이나 칼같이 지킬 수 있게 해 주지’라는 이루어질 리 없는 바람을 갖고 알람이 제대로 맞춰져 있는지를 확인한 후 잠든다.



10년 넘게 이런 생활을 했으니 퇴사 후에도 출근 시간에 맞춰 눈이 떠지지 않을까 조금 기대(?)했지만, 욕먹을 일이 없는 일상에 아주 빠르게 적응했다. 요즘엔 잠에서 깬 후에도 거실에 잠시 멍하게 앉아있다가 느슨한 하루를 시작한다.  


*소글 워크숍(brunch.co.kr/@eunseongwrite) 과제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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