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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Sep 09. 2019

어느 회사든 이상한 사람은 있다

“회사에서 자아실현하는 거 아니야!”

“이번엔 꼭 대형 깃발 그거 하죠.” D가 입을 열자마자 가뜩이나 좁은 회의실이 한숨으로 가득 찬다.

“아니 그거 무대팀에서도 자신 없어했고. (긴 한숨이 또 나온다.) 아무튼 안 하기로 했잖아.”

“해외 사이트에서 보고 확인해봤는데, 깃발만 하면 그렇게 안 비싸고 보내줄 수 있대요. 깃대는 국내 업체에 물어봤더니 비슷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 만나기로 했어요.”

“그거 설치는 누가 할 건데? 끝나고 보관할 데는 있고? 지금 창고 어떤지 알고 말하는 거야?”

D는 반대 의견이 있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는 사람이다. 여러 사람이 말을 끊고 반박을 쏟아내도 흔들리지 않고 “나는 이것이 하고 싶다.”라고 말하고야 만다. 그리고 그 말을 지키기 위해 하지 않아도 될 야근이나 주말 근무를 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는 이 회사에서 꼭 일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회사 페스티벌 시작 때부터 있었던 사람들이 옛날 이야기를 하면 꼭 한마디를 거든다. “저 그때 군대 있을 땐데 휴가 나와서 봤잖아요. 군복 입고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을 거야.”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또 하는 그를 보며 생각한다. ‘하기야, 다른 회사 면접 가서 왜 우리 회사처럼 안 하냐고 대답해서 떨어진 애니까.’


퇴근 시간은 지났지만 다음 주부터 휴가라 미팅이 끝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다들 퇴근하고 없길래 ‘스피커로 음악 들으면서 해야지’ 생각한 순간 사무실 문이 열린다. “너 미팅 강남 아니었어? 집으로 바로 가지 왜 왔어?” 문을 연 사람은 역시나 D다. “A 브랜드 제안서 때문에요.”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안 그래도 그때 제일 바쁠 땐데 외부 일을 또 한다고? 아니 그리고 한다고 쳐. 진행은 누가 할 건데?” 내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D의 말엔 막힘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바쁘니까 준비는 우리 팀 애들만으로 하고, 현장 진행은 알바 쓰기로 했어요.”


나도 주위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그렇게 해? 일은 월급 받는 만큼만 하면 되는 거야.” 같은 말을 꽤 들어왔지만, 시키지도 않은 일을 벌이고 또 벌이는 D가 이해되진 않는다. 모두가 ‘회사 가기 싫다!’고 외칠 때 ‘나는 회사에서 이런 일도 하고 싶고 저런 일도 자꾸만 하고 싶다!’고 외치는 사람이란 없을 것 같지만 여기 있다.


“회사에서 자아실현하는 거 아니야!” 하면서도 가끔은 그가 부러웠다.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더 좋겠네’ 생각이 드는 동시에 ‘그냥 하던 대로 해도 상관없잖아’ 하는 일은 늘어났다. 누가 해도 나만큼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매달 약속된 금액이 통장에 찍히는 월급은 물론 중독적이고 매력적이지만, 그것만이 나를 일하게 한 건 아니었다. ‘일을 하는 나’는 꽤 괜찮은 사람 같았고, 그 ‘일’ 역시 재미있었다. 오랫동안 더 잘하고 싶은 일이 많았지만, 이제는 그게 아닐 뿐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내가 퇴사를 결정할 수 있었던 건, 여전히 재미있게 일하는 D를 통해 그렇지 않은 나를 확실히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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