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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 Dec 05. 2019

88년생은 찌질하다

신간에세이 [솔직한 서른 살] 연재 04.

책 『솔직한 서른 살』 中



나는 찌질함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왜 나는 찌질할까? 왜 내 친구들도 하나같이 찌질할까? 왜 내가 만나는 남자도 찌질할까?’ 하고. 찌질한 사람 중에 유독 88년생이 많다고 느껴진다. 물론 나의 매우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다. 아마도 내가 88년생이라서, 주변에 88년생이 많기 때문인 듯하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일명 ‘88클럽’ 리더이거나 100명이 넘는 88년생과 친하게 지내는 건 또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일 뿐.


찌질함에 대해 한번 고찰해봤다. 찌질한 사람을 ‘찌질이’가 아닌 다른 말로 지칭하고 싶은데 대체할 표준어가 마땅치 않다. 입에 착 감기는 말은 어째 다 비속어란 말인가. 가끔 ‘찌질이’는 괜찮지 않게 들릴 때가 있다. 어쩐지 정말로 찌질이라고 손가락질 받아 마땅한 존재가 떠오르는 것이다. ‘찌질이 새끼……’ 같은.


찌질함은 포괄적인 개념으로 어떤 자잘한 속성들을 함유한다. 소위 찌질한 사람들은 대체로 솔직하다. 표현에 능하고 기본적으로 감정을 잘 드러낸다. 그 감정들이 외부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누가 봐도 찌질한 게 티가 난다. 소심하고 목소리가 작은 사람임에도 그 사람의 감정을 타인이 알아차릴 만큼 너무나 쉽게 드러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어딘지 모르게 의기소침해 있다. 기가 죽어 있고 그럴 필요가 없을 때도 약해빠진 모습이다. 사회적으로 인정해주는 기준에 도달한 사람들이 되레 더 찌질한 경우가 있다. 남들이 알아주는 대학을 졸업했고 스펙이 좋다고 해도 자신감이 없다. 그야말로 자존감이 바닥이다.


“나는 잘하는 게 없어. 나 따위가 무슨 취업을 하겠어…… 그냥 이렇게 살아야 하나 봐. 대학 간 거로 내 모든 운을 다 소진한 거지, 뭐.”


찌질함은 보통 자기반성형 인간들에게서 보이는 경우가 많다. 누가 보면 무기징역이라도 받은 줄 알 정도로 자신을 나무란다. 별것 아닌 잘못에도 이불을 수백 번 찰 정도로 부끄러워한다. 아니, 대체 그런 사람들이 무슨 대단한 짓을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들의 뇌 구조로는 뻔뻔한 짓을 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저딴 짓을 하고도 어떻게 웃지? 미친 거 아냐?” 하고 혀를 끌끌 찬다.


마지막으로 찌질이는 선악의 집결체다. 선과 악을 동시에 가져서 괴로워한다. 착하면서 못된 그런 존재랄까.


나는 노숙자들이 판매하는 잡지 《빅이슈》에 대해 구걸이 아닌, 콘텐츠를 통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겠다는 취지가 좋다고 공감한다. 하지만 실상 한번도 그 잡지를 사본 적은 없다. 막상 지하철역 앞에서 잡지를 파는 아저씨를 보면 주머니 속 오천 원짜리 지폐를 만지작만지작하기만 한다. ‘오늘 돈 아끼려고 천 원짜리 맥도날드 커피를 마셨는데, 그 돈이면 스타벅스에서 그린티 프라푸치노를 마시지…….’ 바쁜 척 지나쳐버린다.

회사에서 만난 88년생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 주변 사람 중 유독 88년생이 퇴사를 많이 한다. 잘 견디지를 못한다. 그들은 잘 슬퍼하면서 잘 웃기도 하고 잘 떠나기도 한다.


“88올림픽 봤겠네?”


가장 많이 들어온 말이다. 지겹게도 들었지만 정작 태어나느라 바빠서 88올림픽을 본 적도,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 부모님도 우리를 낳고 키우느라 정신이 없어 올림픽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88년생끼리 모여서 고민하고 괴로워하다가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사회를 비판하기도 한다. 우리만 유독 더 찌질한 것 같다고, 다른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어찌 그리도 잘 사는지 모르겠다며 편협하고 증거 없는 이야기들을 큰 소리로 떠들기도 한다.


그런다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스타일은 아니다. 찌질하기 때문에 또 계속 생각하고 이내 성찰하고 반성한다. 누군가를 욕하다가도 “아 맞다. 나도 그렇겠네? 크하하”라고 말하고 있거나, “내 주제에 누굴 욕하냐” 하고 술을 퍼마신다. 결국 무한 반복이다. 마치 건반 위의 도돌이표 같은 존재들 같다랄까.


누군가에게 “잘하고 있어”라는 건전한 말을 들어도 의심부터 하고 본다. 못하고 있어서 하는 말일 거라고 배배 꼬아 들으며 잘해보고 싶다고 욕심을 낸다. 때론 찌질함에 비해 거대한 꿈을 꾸기도 한다. 말도 잘 못하면서 100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가 되고 싶다거나, 개발자도 아니면서 글로벌 앱을 만들어서 백만장자가 되겠다고 떠들기도 한다. 현실에 대한 만족 따위는 해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난다. 언제나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하다.


일요일 아침인데 이런 날엔 꼭 일찍 눈이 떠진다. 부지런히 일어나서 고작 찌질함에 대해 주절거린다. 뜬금없이 88년생을 위한 술집을 차려야겠다는 꿈을 꾸다 다시 잠이 든다.




신간에세이 <솔직한 서른 살> 연재 회차


01. 솔직한 서른 살의 비정규직

02. 나는 느리게 살지 못한다 

03. 갑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04. 88년생은 찌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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