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박도 Dec 06. 2019

베스트셀러를 향하여 '솔직한 서른 살'

신간 에세이 [솔직한 서른 살] 출간 기념 연재 05. 마지막화 

나는 엄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말이다. 새엄마도 아니고 날 버리고 떠난 엄마도 아닌 평생 날 키운 엄마에겐 그래선 안 되는 거다. 그러니까 기분이 더 불쾌하다. 해결되지 않고 평생 질질 끌고 가야 하는 문제에 직면한 것 같다. 내가, 엄마를 싫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니. ‘엄마, 싫어’ 하고 인정해버리면 죄책감에 시달릴 테니 엄마를 어장 관리하듯 애매모호하게 말한다.


기본적으로 ‘엄마’의 노고나 역할, 존재에는 모두가 그러하듯 동의하지만 엄마와 이야기를 하거나 만나는 건 좀처럼 내키지가 않는다. 보고 싶다기보다는 안쓰럽고 미안하고, 전화하고 싶다기보다는 안쓰럽고 고맙고…….


엄밀히 따지면 엄마가 싫은 게 아니라 엄마 잔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 엄마 잔소리를 두고 막 그립다느니, 그때가 좋은 거라느니 하는 ‘잔소리 옹호자’가 많아지고 있다. 그 사람들을 방에 가둬두고 그들의 엄마가 했던 잔소리를 리믹스로 녹음해 매일 5시간씩 강제로 듣게 하고 100일 후 만난다면 어떨까. 그때도 잔소리를 찬양하는 사람은 아마 없겠지.


엄마랑 이야기하다보면 엄마는 나의 분노를 폭발시키기 위해 적들이 심어놓은 스파이 같다. 내가 듣기 싫다는 말만 골라서 한다. 하지 말라는 일만 내가 골라서 하기 때문이라는데, 서른 살 넘은 내가 왜 하라는 걸 해야 하는지부터 짜증이 난다.


독립한 지도 한참이 지났거늘 여전히 자식이 자기 손 안에 있는 줄 아는 아줌마야. 용돈이라도 주면 “잔소리 값이네” 하고 덥석 받아둘 테지만 오히려 나한테 돈을 뜯어가면서 잔소리까지 하는 건 너무 하지 않나.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지! 내 배 아파서 낳았으니!

듣기 싫다는데 강요하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이 제일 싫다. 그게 우리 엄마다. 아니, 왜 자꾸 강요를 하냐고오오오오 강요를!! 안 먹는다고 말했는데, 한 시간 동안 최소 다섯 번은 먹으라고 말한다. 네 번까지는 어떻게든 참을 수 있고, 웃으면서 거절할 수 있는데 다섯 번이 되면 속에서 열불이 나고 ‘아이씨, 안 먹는다니까 왜 자꾸 먹으래? 사람 말이 말 같지 않나’ 싶어서 엄마에게 그놈의 “안 먹는다고오!” 하고 대단한 선언을 한다.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잘 알고, 나를 존중한다면 할 수 없는 행동만 엄마는 일부러 골라서 한다. 그 모습이 나를 화나게 해서 화냈던 일들이 습관이 되어서 이제는 엄마가 무슨 말만 해도 자동 반사로 짜증이 튀어나온다.


엄마랑 대화할 때 짜증을 내는 내가 나도 너무 싫다. 가만히 들어주고 대충 비위 맞춰줄 수도 있는 건데 내 성격이 엄마를 닮아서 그러지도 못한다.


엄마는 딱 자기 같은 딸을 낳은 거고, 나는 엄마처럼 되기 싫다면서 엄마처럼 된 거다. 엄마가 회사였다면, 성인이 되자마자 퇴사했겠지만 엄마와 나는 유전자가 증명하듯 빼도 박도 못 하는 친모녀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탯줄 자르듯 인연을 끊을 순 없는 노릇이다.


엄마가 나에게 뭐라도 잘못했으면 ‘얼씨구나, 좋다! 엄마를 피할 명분이 생겼구나’ 하고 당당했겠지만, 엄마는 나에게 잘못한 게 전혀 없다. 잔소리는 범죄가 아니고 오히려 사랑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게도 그것도 사랑이었다. 


엄마는 나랑 고다를 버려두거나 아프게 한 적이 없다. 그저 자기 자신보다 우리를 사랑한 게 죄다. 그녀의 인생을 희생해서 우리에게 배팅했으니 남은 게 우리뿐이다. 그런 자식들이 어른이 되어 자기 인생을 살겠다고 하는 게 당연하지만 30년 넘게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잔소리뿐이라, 잔소리로 자식들을 묶어두는 것밖에 할 수가 없다.


아, 내가 그런 엄마를 싫어하면 안 되지. 잔소리 좀 심하다고, 하루 종일 잔소리만 한다고 짜증을 내는 딸년이 죄인이지. 그게 나를 괴롭게 한다. 불효녀가 되기는 싫으니까 누가 방법 좀 알려줬으면 싶다. 잔소리를 피하는 법이라든가…….


답이 없어서 나는 가출을 했었다. 수원에서 서울로 대학을 다니면, 통학하는 경우가 다수지만 나는 지각을 핑계로 하숙을 감행했다. 그러다 하숙비를 못 내서 다시 귀향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집 떠나는 법을 궁리했다. 엄마와 멀리 떨어져 사는 게 그나마 우리 관계가 좋아지는 답에 근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자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응, 엄마, 이번 주엔 못 내려가. 다음 주에도 못 내려가. 다다음주에도. 뭐? 엄마가 올라온다고? 아니 아니, 아니야! 괜찮아! 나 정말 바빠서 그래. 카톡으로 사진 많이 보낼게.”


이렇게 100번 설명해도, 엄마는 기어코 구실을 만들어 오고야 만다. 꿀 같은 주말에 집에서 빈둥거리며 누워 있는 시간에 엄마의 잔소리가 끼어드는 것은 상상만 해도 회사에 가는 기분이지만 엄마는 낳아줬으니 그럴 권리가 있다는 듯 당당하게 내 시간을 휘젓는다. ‘그래, 나도 엄마의 젊음을 다 빨아먹었잖아’라고 이해하기엔 내 그릇이 아직 좁다.


주말에도 엄마와의 폭풍 같은 하루를 보냈다. 엄마의 잔소리를 참느라 진이 빠졌다. “잘하자, 잘하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하자.” 이 말을 수백 번 외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무래도 나는 엄마를 ‘좋싫한다’. 좋아하고 싫어해서 우리는 평생 애증관계일 것이다. 


                                        - 책 《솔직한 서른 살》 中 -




더 자세한 내용은 《솔직한 서른 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간에세이《솔직한 서른 살》연재 회차


01.  프롤로그 : 솔직한 서른 살

02. 나는 느리게 살지 못한다 

03. 갑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04. 88년생은 찌질하다

05. 엄마를 좋싫해 













※ <솔직한 서른 살> 은 교보문고 사이트, 예스24, 알라딘, 영풍문고 온라인 및 전국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필름출판사 포스트 보기


작가의 이전글 88년생은 찌질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