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괜찮지 못한 인간> / 박도 지음
사랑에 대해서는 아주 많은 말들을 흘리고 다녔지만 내가 했던 말에 동의할 수 없는 때가 찾아온다. 내 첫 책 <솔직한 서른 살> (2019)에 ‘미지근한 사랑은 싫고, 항상 처음처럼 뜨겁고 빨간 사랑을 원한다’고 썼다. 1년 뒤에 그 글을 읽어보니 “그게 가능할 리가 있나? 말도 안 되지!” 소리가 절로 나왔다.
누군가 내가 사랑에 대해 했던 말이나 글을 전부 다 기억하고 있다면 대체 어디에서 논리와 일관성을 찾을 수 있는 건지 혼란스러울 거다. 한 사람이 했던 말이 맞는지, 혹시 했던 말을 까먹는 사람인 건지 의심스러울 거다. 사랑에 대해서는 시기별로 생각이 달라 글도 달라진다고 해명해본다. 다음엔 또 다른 말을 할 줄 알면서도 순간의 사랑에 대해 부지런히 기록한다. 사랑이 지겨울 때조차 사실 사랑을 모르지만, 모르면서도 떠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어떤 유형이든 내 인생에서 사랑이 끊이지 않길 바란다. 사랑이 내 삶을 한 층 끌고 올라가 줄 것이다. 슬프게 할 때도 있겠지만 그것조차 나를 성장시킬 것이다. 요즘 내가 하는 사랑은 내가 모르는 방향으로 나를 끌고 가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평가자 입장에서 타인의 사랑을 감시했다. 내 사랑은 기본적으로 세팅이 되어있으니 그에 걸맞은 사랑을 달라고 상대방에게 요구했다. “사랑해”라는 말이 줄어들면 훈계를 하거나 화를 냈다. 이상한 사랑을 하고 있었다. 나의 사랑, 내가 주고, 내가 받아내야 할 사랑에만 집중했다. 내가 주는 것과 받는 사랑의 양을 비교해 계산했다.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사랑의 형태를 정확히 구현하길 바랐다. 왜 내가 정한 사랑의 정의와 방식에 따라 날 사랑해주지 않는지 답답했다. 그런 사랑은 없다. 그게 가능하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사랑 연기다. 하물며 나조차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사랑은 언제나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고 사랑해, 표현하고 안아주는 거야. 그걸 몰라? 결혼 전에는 잘만 하던 사람이 결혼 후에는 뭐, 그렇게 하면 감옥이라도 가냐?”
이렇게 말한다고 예전처럼 사랑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시키는 대로 해줬으면 했다. 그러면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내가 사랑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마주하기 겁이 났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은 외롭다는 말로도 다 할 수 없이 외로웠다. 마지못해 “사랑해”라는 말을 들으면 하란다고 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면서, 이래도 저래도 화를 내면서도 그랬다.
사랑은 진작에 끝난 걸까? 사랑 없는 인생을 받아들일 때가 온 것인가? 사랑이 끝났다면 왜 붙잡고 있어야 하지? 인생에서 내가 염두에 두는 건 사랑을 하는가 안 하는가, 받는가 못 받는가, 오직 사랑이다. 너무 사랑 집착자 같나. 결혼에도 당연히 적용된다. ‘사랑하면 계속 살고,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면 따로 산다.’ 이론적으론 이보다 더 간단명료할 순 없다. 현실적으로는 (아시다시피) 사랑이고 나발이고 같이 살 수밖에 없으니 같이 살고 있긴 하지만.
그러다 문득 “사랑해”라는 말이나 그 비슷한 것 하나 없는 순간에 사랑을 발견했다. (오 신이시여. 개 양육권 다툼으로 법정에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겨울 뉴욕은 4시 좀 넘으면 해가 진다. 3시쯤 준군에게 문자가 왔다. 그가 멀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허드슨강이 보이는 연구실 창문 사진을 보냈다. “오늘 노을 예쁠 듯. 올래?”
나의 3시라 하면, 글 쓰려고 앉아서 딴짓하고 있다가 겨우 좀 몇 자 끄적이고 있을 때다. 노을은 보고 싶지만, 머리 감고 옷 갈아입고 엘리베이터 없는 6층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는 걸 생각하면 그깟 노을이야 안 봐도 그만인 것 같기도 하다. 노을을 사랑하지만 사랑은 귀찮음에 너무 쉽게 질 때가 있다. 거기다 준군이 시키는 일은 다 하기가 싫다.
“아니. 안 갈래. 사진 많이 찍어서 보내줘.”라고 답장을 보냈다.
준군은 고집을 부렸다. “빵 사줄게. 대충 준비해서 와.”
꼭 빵 때문은 아니지만, 부리나케 준비하고 10분 거리에 있는 준군이 일하는 건물로 향했다. 그렇게 한 달간 매일 4시에 집을 나섰다. 두 명이 겨우 설 수 있는 작은 발코니에서 우리는 조용히 핑크색 하늘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걸 바라보았다. 밤이 닿자 유명한 빌딩들이 황급히 반짝거리는 불빛을 뿜어내는 것도 함께 보았다. 거기 서서 사랑을 속삭이거나 키스를 한다든가 하는 건 없었다. 노을을 관찰한 거로 끝이었다. (노을 과학자냐?)
언젠가 ‘우리 사랑은 이제 없어. 그냥 이렇게 살다 늙어버리는 거야.’ 하는 생각에 눈물이 주룩 흘렀을 때 하필 그 장면이 떠올랐다. 그가 홀로 노을을 보고서 내가 노을을 좋아했다는 걸 기억한 것. 나에게 그 노을을 보여주고 싶어 한 것. 그건 그의 사랑이었다.
그는 자기의 사랑을 한다. 나는 나의 사랑을 한다. 그러면 된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한다.
노을을 보면 서로를 떠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