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괜찮지 못한 인간> / 박도 지음
나 스스로 “나 이상해! 미친년이야!” 이러는 건 괜찮은데 남이 나보고 “너 진짜 이상하다~?” 이러면 진짜 돌아버리겠다. 아! 다르고 아~ 다른 게 우리 말인만큼 이상하다는 말도 어디에 강세를 두느냐에 따른 억양이나 말 끝을 늘이고 줄이는 길이에 따라 여러 의미로 나뉜다. 동생 고다가 “언니 이제 진짜 이.상.해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진짜 이상하다라. 이게 뭔 뜻일까.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첫째로 내 글이 이상해졌다고 했다. 내가 간혹 이래라저래라 주장하는 글을 쓰는데 그게 재수가 없고 꼰대처럼 보인다고 했다. 자고로 책이란, 읽는 사람들이 알아서 원하는 대로 느껴야 하는 건데 첫 문장에 ‘A는 A입니다!’라고 쓰고 마지막 문단에서 한 번 더 ‘그러니까 A가 A라는 걸 잊지 맙시다’ 하는 게 문제였다.
듣는 순간에는 살짝 반발심이 들지만 가족이나 지인들이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점을 지적해주는 건 고맙고 좋은 일이다. 나는 고다에게 지적을 받았다고 준군에게 말을 전했다.
“고다가 나한테 이상해졌다고 그러더라.”
“역시 처제가 정확하네. 무슨 글 보고 그러는데?”
“내가 뉴스레터 한 달 휴재하고 나서 쓴 글 중 몇 개? 한 번 읽어 볼래?”
준군이 빠르게 내 글을 읽고 평가했다. “이거 한국 영화 같아. 완전 쥐어 짜내고 강요하네. 슬픔!!! 느낌표 백 개!!! 여기서 웃어!!!”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알아듣겠는데 그는 끊임없이 말했다.
“돈 안 냈으면 그냥 읽다가 나갈 듯? 어차피 안 읽어도 손해 아니니까? 근데 돈 냈으면, 냈으니까 억지로 일단 읽긴 하겠는데 좀 아까울듯!”
아. 이런. 고맙다. 고마워. 친구들에게도 카톡을 보냈다. “내 글 변했어? 예전이 나아? 이상해? 솔직하게, 그냥 막 말해줘!”라고 했더니 똑같다고 하는 친구도 있고, 나아졌다고 하는 친구, 대충 읽으면서 ‘웃기네’, ‘안 웃기네’로 평가하는 친구, ‘박도가 이렇게 사는구나’ 근황을 확인하는 친구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크게 도움은 안 되었다.
그때 고다가 중요한 말을 잊었다는 듯 또 연락했다. (너도 좀 그만해라)
“전에 언니한테 안 좋은 메일 보냈다는 분 있지? 그 말 좀 공감되던데?”
그 메일에는 좀 더 책임감을 느끼고 글을 쓰라는 말이 포함돼있었다. 오해를 짚고 넘어가자면 비구독자인 그가 받은 내 글은 오랜 독자들에게 보내는 비밀편지였는데 실수로 전체 메일로 발송된 것이었다. (네.. TMI 잘 들었고요) 후. 그래요. 알았어요. 알았어. 열심히 글 쓰겠습니다. 하하. 나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까? 글을 쓰면 쓸수록 실력이 늘어난다기보다는 한 단어, 한 문장, 한 단락마다 고비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기분이다. 그런데도 무슨 깡인지, 계속 쓰는 인간으로 살아간다. 어이없게도 회원님들의 응원 덕분이다. 타이밍이 소름인 게 우울할 때마다 한동안 감감무소식이던 응원 댓글이나 메시지, 이메일을 받게 된다. (트루먼 쇼도 아니고, 어떻게 딱 안 거지) 나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 없는 살림에 매달 구독료를 입금해주시는 분들의 잘 보고 있다는 말에 ‘계속 써봐야겠구나’ 하는 거다. ‘미친. 박고다! 박준군! 니네만 날 싫어하지. 회원님들이 얼마나 날 좋아하시는데!’라고 착각이라도 하면서 쓰기 위해 주기적으로 힘을 내는 척, 용기를 내는 척한다.
여기서 끝나면 좋겠지만 고다는 내가 이상해졌다는 얘기를 온종일 했다. 내가 가족에게 소홀해진 모습이 이상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인다고 했다.
“엄마가 언니가 한 말 때문에 친구 딸 결혼식 안 간대.” 고다가 말했다.
나는 귀찮아서 대충 답장을 보냈다. “뭔 소리여?”
“언니가 한 달에 한 번도 연락 안 하는 친구는 친구 아니라고 했다며. 엄마가 진숙 아줌마 딸 결혼식 초대받았는데 그동안 연락 안 왔다고 안 가려고 해.”
“잉? 가든지 말든지. 근데 그럴 때만 연락하는 게 뭐 친구냐? 아 몰라 난. 알아서 해.”
“왜 그래. 엄마도 가고 싶어 하긴 하는데 언니 말이 신경 쓰인대.”
“그럼 가라고 해. 나 졸려.”
“언니 진짜 너무 이상해졌어.”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나는 내 옆에 있어 준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마음에서도 밀어내고 있었다. 언제든 그곳에 있을 테고, 돌아가면 과거에 그랬듯 자주 만나서 다시 가까워질 테니까 굳이 뭐 여기서까지, 라고 생각했다. 그건 아니지 정말. 울면서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 진숙아줌마 딸 결혼식 다녀와. 바쁘니까 다들 연락 못 하고 살잖아. 마스크 잘 쓰고 그냥 축하해주고 와. 미안. 내 말을 신경 쓰고 있었는지 몰랐어.”
엄마가 언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었는지 의문스럽지만 그 말에 냉큼 결혼식에 다녀왔더라. 간만에 나들이가 즐거웠는지 마스크 쓰고 진숙아줌마와 찍은 사진을 보냈다.
내가 한국을 떠난 시간 동안 어린 동생에게 효도를 떠넘기고 너무 나만 생각하며 살았다. 가족들은 내 생각을 많이 한다.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니 더 막 했다. 늘 다짐은 하긴 한다. 가족에게 매일 매일 전화를 하자. 카톡을 하고 안부를 주고받자. 한동안 또 잊고 있었다. 준군 엄마에게도 자주 연락드려야지. 그게 귀찮으면 세상에 어떻게 태어났냐 이것아. 배은망덕 그만.
만화책 <20세기 소년>에는 소중한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강하다는 문구가 나온다. 나는 요즘 어떤 게 소중한지 통 모르고 산다. 나는 점점 더 이상하고 나약해지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