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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박도 Apr 11. 2021

코로나 시대 엄마의 카톡

에세이 <괜찮지 못한 인간> / 박도 지음

엄마는 카톡으로 책을 쓰나 보다. 길고 긴 카톡을 하루에 50개는 보내는 것 같다. 그에 대한 내 답장은 한 두 개, 길이도 한 문장을 넘지 않는다. 엄마의 카톡을 안 읽을 때도 있고 쓱 훑고 한 문장도 담아 듣지 않을 때가 잦다. 훑고 또 훑어봐도 내 대답이 필요치 않은 말뿐이라 나도 참 난감하다. 잔소리에는 “뉘에뉘에-”가 답이지 그 외에 답은 없습니다.

어제도 안 읽은 카톡 ‘12’ 숫자가 떠 있는 게 거슬려 습관적으로 읽음을 누르고 대강 넘겼다. 어 이상하다? 웬일인지 엄마 카톡을 보고 눈물이 핑 돈다. 

엄마는 2년 전에 대학생이 되었다. 열아홉 살에 서울에 있는 전문대에 합격했지만 그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학비를 낼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겨우 스물이 된 엄마에게 외삼촌은 돌도 안된 자기 딸을 키우라고 했다. 대학을 보내준다는 말로 꼬드긴 거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월급은 고사하고 계속 ‘1년만 더’, ‘1년만 더’를 외쳤다. 엄마는 스물한 살 새벽에 그 집에서 뛰쳐나가 도망쳤다. 그 후 작은 중소기업 경리로 일을 하면서 지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웠다. 대학은 늘 가슴 한편에 한으로 남았다. 


고졸이면 어떠냐고, 자기 일만 잘하면 된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가, 사람들의 시선이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도록 언제고 상기시키기 때문에 엄마 또한 늘 대학이 콤플렉스였다. 나는 엄마의 상처를 깨부수어 극복하자는 취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엄마는 고졸이래요~ 고졸이래요~” 


(입 닥쳐!) 

엄마는 누가 들을세라 내 입을 단속했다. (또라이 지수가 상승하였습니다.) 고다랑 내가 대학을 졸업해 취업하고 알아서 살 게 됐을 무렵 엄마도 그 세월만큼 쉰이 훌쩍 넘었다. 더 늦기 전에 대학에 지원서를 냈다. 엄마는 대학생이 되었다. 늦깎이 대학생이 아니라 진짜 스무 살이 된 듯 잔스포츠에서 대학생 같은 배낭도 사고 스노우 청바지도(80년대냐) 사고, 수첩과 펜도 샀다. 그토록 간절했으니 맨 앞자리에서 강의를 듣는 열혈 만학도가 될 터였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카톡을 보내는 게 아닌가. 


“딸~ 엄마 지금 수업인데 머리아파서 화장실에서 카톡 하는 중ㅎㅎ”


“엄마 수업 중에 그렇게 나가면 안 돼. 집중해서 교수님 말씀 필기해야지!” 나는 엄마에게 훈계했다.


아. 울 엄마는 꼭 나를 닮았다. 대학생 때 수업을 듣는다고 서문에서 하숙했으나 언덕이 너무 높다는 이유로 통학할 때보다 학교에 더 안 가곤 했다. 언덕이 없는 동문이나 정문에 살 때도 안 갔다. 뭐, 그 피가 어디 가겠어? 엄마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공부보다 더 재미있어했다. 뉴욕에 놀러 왔을 때 대학교 친구들 기념선물을 잔뜩 사 갔다. 엄마의 들뜨고 신난 모습을 보는 게 귀여웠다. 

그랬던 엄마가 코로나로 인해 졸업을 남겨둔 채 1년째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던 거다. 엄마는 내 카톡에 시를 남겼다.


코로나로 대학도 쉬고 좌절된 꿈
언제 끝나고 재기하려나
난 벌써 육십이 됐는데
그래도 열심히 또 살아봐야지


엄마의 카톡을 보고 나는 바쁘게 스크롤 올리던 손가락을 멈추었다. 아, 엄마가 많이 힘들었구나. 난 그것도 몰랐네. 


어쩌면 내가 흘려버린 카톡들 속에 비슷한 엄마의 하소연과 슬픔이 스크롤 넘어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가 아쉬운 엄마는 환갑에 졸업장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


“나 온라인으로 수업 듣기 싫어. 집중 안 돼. 직접 대면 수업이 좋은데. 학교 가고 싶어.”

(대면 수업할 때 땡땡이치지 않았나) 


코로나를 죽일 수도 없고 없앨 수도 없는데 (그럴 수만 있다면 땡큐지) 그로 인해 생활도 꿈도 좌절되거나 지연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정말. 나는 겨우 “힘내”라는 말로 엄마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짧고 흔해 빠진 그 두 글자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대딩!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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