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괜찮지 못한 인간> / 박도 지음
카카오톡을 처음 접했던 게 11년 전이었다. 스마트폰이 막 보급되던 시절이었다. 친구 중에 이용자는 세네 명뿐이었다. (그렇게 나이 많지 않답니다) 친구가 문자 대신 카톡으로 연락하라고 하길래 나는 그런 거 안 할 거라고 신문물을 거부했었다. 썸남에게 까이고 나서야 깔았다. 그에게 수단 가리지 않고 연락하려는 이유에서였다. “와 프로필 사진도 있네. 졸라 멋있다.” 프사는 당시만 해도 신세계였다. ‘읽씹’이라는 개념도 덩달아 등장했다. “아 모야. 내 메시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도 알려주네. 어? 읽었다! 근데 왜 답장이 안 오는 걸까…….”
그간 답장이 오지 않을 때마다 나를 위로했던 말은 “문자 못 봤겠지. 바쁘겠지” 였다. 늦게 답장이 오더라도 하루종일 바빠서 못 읽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전혀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다. 카톡은 잔인하게도 팩트를 알려주었다. “읽었는데 답장을 안 보내는 겁니다.” 고작 1이 있고 없고 차이로 ‘마상’ 폭격의 시대가 열렸다. 심지어 카톡에서 1이 사라지지 않아도 ‘바빠서 안 읽었겠지’ 대신 ‘안읽씹’으로 치부하게 되었다. 현대인들은 카톡 지옥에서 웬만해서 벗어날 수 없다. 카톡을 깐 이후로 카톡 하지 않은 날이 없을 만큼 카톡은 인생에 깊이 들어와 버렸다. 피곤하다 피곤해.
카톡 하는 것도, 카톡이 와 있는 것도 다 좋긴 한데, 그냥 너무 피곤하다. 몇 번 탈퇴도 해보고, 앱 삭제도, 무음모드도, 모든 알림도 다 꺼봤다. 실패였다. 카톡을 안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카톡으로 나누는 이야기는 대체로 인생 사는데 몰라도 별 지장 없는 것들이지만 이상하게 듣고 싶다. 사람이 너무 그립기 때문이다.
20대엔 그 쓸데없는 게 지나치게 많이 필요하긴 했다. 남자친구와 싸운 이야기, 누군가의 뒷담화, 쇼핑과 연예인 등 모든 이야기를 카톡으로 나눠야지만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기분이었다. 나만 거기서 빠지기엔 낙오자가 되는 것 같아 무서웠다.
서른이 넘으면서는 20대처럼 사소한 이야기를 꺼내는 게 살짝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친구들도 나처럼 카톡 과도기를 지나는 듯했다. 남자친구 욕을 하다가도 “그냥 짧게 요약하면 걔가 쓰레기 짓한 거지. 미친놈이지? 헤어질 거야.”라고 한 문장으로 말하고 급히 결론을 내 거나, “아 그냥 또 짜증 나는 상사새끼 때문에 퇴사할까 고민했어. 술이나 마시련다!”라고 혼자 말하고 혼자 답했다. “왜 그래?”라고 물어볼 법도 한데, 다들 굳이 안 들어도 아는 뻔한 얘기라는 듯 “야 그냥 치맥이나 먹어. 말해봤자 안 바뀌잖아. 스트레스 노노”라고 말하고 대충 넘어갔다.
가끔 정, 말이 하고 싶을 때는 양해를 구하고 고해성사를 한다. “나 너무 화나서 그런데 하나만 얘기할게. 있잖아~ (블라블라)”. 읽고 씹히더라도, 안 읽은 척 씹힘 당하더라도 어딘가에 털어놓았다는 사실 자체로 기분이 나아진다. 참으로 타인 의존적인 인생이다.
언제부턴가 답장이 없거나 카톡이 덜 울려도 덤덤해진다. 또 한 장의 어른 페이지가 뜯긴 것 같다. 답장이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손가락으로 10초 만에 보내는 안부 대신, 만나서 커피를 좀 마시고 싶어질 뿐이다. 카톡을 10년 하다 보니 어른이 됐다. 나는 밀레니얼 세대가 맞다 (?)
작가 소개
1988년에 수원에서 태어난 후 2019년에 뉴욕으로 이사했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글을 쓰는 일, 영상을 만드는 일 등 다양한 업종에 종사했지만 자세히 소개하기엔 어쩐지 너무 오래된 일 같아 생략한다. 퇴사 후에는 줄곧 에세이를 쓴다. 그렇다고 에세이스트 혹은 전업 작가라고 하기에는……
에세이 <솔직한 서른 살> 출간 후 홀로 172nd BOOKS 출판사를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