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괜찮지 못한 인간> / 박도 지음
타인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게 좋단다. 좋은 거라고 하니까 해보려고 노력한다. 어렵다. 매일 매일 내가 보고 듣고 만나는 것들을 내 멋대로 재단하게 된다. 겉으로 티를 내지 않고 아닌 이해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어쩌고저쩌고 하기도 한다.
그런 내가 어릴 때부터 자랑스럽게 여기는 습관 중 하나는 ‘타인의 몸 훑지 않기’, ‘뒷모습 쳐다보지 않기’ 이다. 중학생 때 딱 붙는 치마 교복을 입다 보니 또래보다 크고 펑퍼짐한 엉덩이가 많이 신경 쓰였다. 앞으로 걸어 나가거나 몸을 수그릴 때마다 아무도 내 엉덩이를 보지 않았으면 싶었다. 내가 싫으니까 남한테 하지 말아야지, 생각해서 실천하기로 한 일이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계속해서 내 엉덩이를 쳐다봤다.
여고에 가니까 상황은 더 악화됐다. 다들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엉덩이가 닳도록 만져댔다. 내가 긴장해서 엉덩이에 힘을 빡 주면 여럿이 우르르 몰려와서 얘 엉덩이 좀 손가락으로 찔러보라고 하며 깔깔댔다. 이것이 케겔운동이라는 건가? 아직도 그게 무슨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 점점 수치스럽기는커녕 여고란 재미있는 곳이구나, 하고 누구보다 그 분위기에 동화되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찰싹 때리거나 스퀴즈! 반죽하듯 꽉 쥐고 도망가는 무례한 여고생 최고봉에 오른 것이다. 가슴 만지고 도망가는 놀이에도 도가 텄다. 그래도 ‘니 엉덩이 이쁘네’, ‘엉덩이가 아주 탱탱하네’ 이런 평가는 안 한 걸로 어렴풋이 타인을 재단하지 않겠다는 습관을 지켜나갔는데……. 뭐 한 마디로 엉망이었다.
대학생 때 동아리 오빠들과 볼링을 치러 갔을 때 다시 엉덩이에 대한 걱정이 새어 나왔다. 무조건 엉덩이를 가려주는 긴 티만 입었다. 당시에는 스쿼트가 유행하기 전이라서 평생 이 엉덩이로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살고 있긴 하다) 설상가상으로 대학에 오니 엉덩이 평가뿐만 아니라 가방도 평가의 대상이 되었다. 누가 어디 가방 샀네, 어떤 오빠가 사줬네, 라는 말이 난무했다.
짝퉁을 들면 뒤에서 가난하다, 거지다, 판단하는 세상에선 돈 주고 산 물건으로 한 사람의 인생과 인성이 평가당한다. 이리 태어난 걸 어쩌라고 얼굴 생김새만으로 그 사람을 다 알겠다는 듯 군다. 모두가 이게 얼마나 나쁘고 피곤한 일인지 발 벗고 나서서 지적하지만 정작 속으로는 여전히 겉만 보고 타인을 판가름한다. 나는 사람의 뒷모습만 평가 안했지 텔레비전에 나온 일반인들에 대해 지나치게 판단하고 있었다. “지상파 나온다고 완전 귀여운 척하는 것 봐! 밤새 대본 준비했네! 했어! 참나!”
그러던 중 “난 Judge People 이에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을 만났다. 보통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이 자기를 포장할 때 하는 말이 “I’m not judging people” 이거나 칭찬할 때도 비슷한 말을 하는 데에 반해 그녀의 말은 마치 비밀리에 오픈하는 커밍아웃으로 느껴졌다.
“난 사람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 다 평가하고 판단해요. 무슨 행동을 보고 ‘아 저런 사람이네. 다신 연락 안 해야지’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친구가 별로 없어요. 뭐 어때요? 난 그냥 내가 싫은 건 딱 싫어요.”
당연히 남을 멋대로 판단하는 건 나쁜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그 말이 새롭고 짜릿하게 느껴졌다. 사회가 정한 문장에 반기를 들고 자신이 정한 가치를 외치며 사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판단하면 안 된다면서 속으로는 무진장 판단하는 사람과 당당하게 판단하는 사람 둘 중 누가 더 낫다, 아니다를 가를 수 있을까.
다만 나는 그 자리가 조금 불편해졌다. 그녀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지 걱정됐다. ‘혹시 내가 셀러리를 손으로 집어먹은 게 더럽게 보였을까? 문자 답장을 3시간 뒤에 보낸 게 무례해 보였을까? 내가 쓴 글을 별로라고 평가했을까?’
판단 당하는 건 생각보다도 더 두려운 일이었다. 그제야 타인에 대한 판단을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한 행동이 누군가의 시험대 위에 올라서 요리조리 평가당하며 뜯기고 있다고 상상하니 내가 너무 가여웠다. 함부로 평가당한다는 게 좀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해명 기회조차 없이 나는 그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딱 그 사람이 된다. 그와 제대로 된 관계를 쌓으려면 ‘혹시 지금 내 행동을 보고 날 이렇게 판단했다고 내가 판단했는데, 맞나요? 그렇다면 내 의도는 그게 아니라 이건데…….’라고 판단의 판단을 거듭해야 하므로 대화가 찌질하게 흘러갈지도 모른다.
뭐, 그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다. 그럼에도 판단은 아무래도 피곤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모아진다. 가뜩이나 타인의 평가와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생인데 굳이 뭐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고 살아야겠어?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적어도 사람들 엉.평 안 하는 걸로 내가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닌 거로 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