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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바다 Jun 12. 2023

나를 찢어줘

 

https://youtu.be/0q_IYyyLPP4


1.


이제는

를 찢어줘.




하얀 종이야.



온갖 뒤틀린 마음들을

뾰족하고 시커먼 먹물로 휘갈겼지.




하얀 너에게 어둠을 쏟아붓고

더럽혀진 네가

꼭 내 모습 같아서




나는 너를 찢어버렸어.






2.



이제는

그만 나를 찢어줘.




하얀 종이야.




한숨 바람에도 날려가던

가녀린 너에게

 벼락같은 번뇌와

폭풍 같은 절망과

그 속에 포로 잡힌 슬픔과 고독까지 얹어

너를 찢어버렸어.




나는 내 시궁창을 긁어내어

하얀 너를 뒤덮었어.




나는 네가 아프길 바래.


네가 찢겨지길 바래.


네가 으스러지길 바래.






그리고


다시 살아내길 바래.





다시



까만 땅에 버티고 선

가녀린 묘목이 되어

다시 살아내길 바래.




내가 찢어버린 네가

이 세상 어두운 시궁창을 떠돌다



어느

또다시

방황하며 걷는 나의 길 위에서

키 작은 묘목으로 마주한다면




그때

너를 알아볼게.




하얀 종이야.





너를 찢어버리던

나를 용서해.





이제는

그만 나를 찢어줘.





나를

그만 찢어줘.








3.


희망을 품어볼게.



늙은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네가

다시 어린 묘목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그런 희망을 품어볼게.





<남바다 스토리텔링.>


쓰던 편지를 찢어버린 바닷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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