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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운명을 치유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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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남바다
Sep 15. 2024
런던의 Knockin' on Heaven's Door
코벤트 가든에서
2009년.
12월 31일.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새해 복을 기원하며
보신각 타종을 기다리고,
새벽 바다의 일출을 기다리고,
혹은 푹신한 소파 위에서 티브이를 보며
그 해의 사건사고 뉴스를 돌아보던 날.
오후 3시 33분.
N은 28인치 대형 캐리어를 끌고 등짝엔 커다란 배낭 하나를 메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다른 도시를 경유해 대략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면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다.
그리고 N의 학과 교수님과 절친한 사이인
글로스터셔 대학 연극 교수 길버트와 그의 부인을 만나
함께 자가용을 타고 런던 시내에 위치한 아담한 집으로 가는 것이다.
N은 지금까지의 그 모든 감당하기 힘들었던 일들.
감히 이 세계를 바꾸는 일, 자신과 연관된 세계가 맞는지 숱하게 들었던 의문들.
그 운명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달빛 도사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어디로든 가장 먼 곳으로 떠날 결심을 했다.
그렇게 휴학 신청을 했을 때
N의 영화적 재능을 알아주던 '미학 이론'수업의 여자 교수가
N의 휴학 소식과 유럽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런던의 절친한 교수네 홈스테이 숙소까지 연결해 주었다.
"영국은 과거 대영제국이었지.
그들이 유럽의 중심이자 세계의 중심이었다.
그 후 일본이 스스로를 대일본제국이라 자칭하며
천황이라 부르더니.. 그 영광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구나.
그 후엔 어떤 국가가 세계의 중심이 될까.
우리- 대한민국일까?
나도 모르지. 우린 그저.. 우리의 세계를 영화로 표현하면 되는 사람들일 테니까...
그런데.. 영국은 내가 추천하는 바야.
나는 그곳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느꼈거든.
과거 대영제국의 흔적 속에.. 인류의 탐욕과 거짓.. 그리고 순수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영화보단 연극과 뮤지컬이 꽃을 피운 나라지.
티켓 줄 테니 라이언킹 공연은 꼭 보렴. 힐링될 거야.
N. 요즘 너한테 이래저래 일이 많은가 보다.. 내가 알 순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위로가 되는 여행이 되길 바란다!"
미학 이론 수업의 교수는 N에게 사뭇 거창한 과거의 감회를 늘어놓았다.
N은 그 말을 곱씹어보지만 더 이상은 커다랗고 무거운 의미의 어떤 일을 겪거나
깨닫고 싶지도, 그 속에 발을 들려놓고 싶지도 않았다.
N은 자신이 토스트 기계 속에 새까맣게 타서 꺼내지지 않는 식빵 같은
기분이라 느꼈다.
그저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새로운 곳에서
복잡한 것들을 정리하며 쉬고 싶을 뿐이었다.
인천공항에선 N이 가방에 꾸역꾸역 챙겨 넣은
항균스프레이와 고추장 등의 반입을 제한받고
아쉬워하며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비행기에 올랐다.
'내가 잠시 떠난다 해도. 정말 떠나는 것일까?
아냐... 다 털어버린다.
전부.. 잊고... 새롭게 시작하자.'
그런 복잡하고 뒤숭숭한 감정으로 불편한 비행기 자리에 끼인 듯 앉아서
오지 않는 잠을 자려고 애써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며 하늘 위를 날아갔다.
길고 긴 비행이었다.
경유하는 공항을 통과하고
왠지 긴장감을 주는 출입국사무소의 하얗고 주글주글한 피부의 백인 남자에게
서툰 영어로 짧은 여행을 갔다 온다는 간결한 답변을 날린 후
드디어 런던에 도착했다.
28인치 캐리어를 찾아서 혼자 어지러이 출구를 찾아 나오니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던 갖가지 인종의 사람들 중에
N의 이름을 적은 팻말을 들고 있는 중년의 부부가 보였다.
길버트와 그의 아내 네롤리였다.
N이 쑥스러운 미소를 띠며 길버트 부부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Hi! I'm N! Thanks for coming!. nice to meet you!"
영어 맥락이 이게 맞는 걸까..? 하는 우물쭈물함은 던져두기로 했다.
영어는 자신감!
N은 영국드라마로 익힌 서툰 회화일지라도 자신 있게 대화하며
이번 기회에 프리토킹 실력을 키우겠다고 결심한다.
길버트 부부 또한 다정한 말투로 N을 환영해 주었다.
함께 공항 주차장으로 가서 부부의 자가용 뒷자리에 타고
런던 시내로 향한다.
미학 이론 교수님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여행 사진첩에서
익히 구경은 했지만
실제로 본 런던은 훨씬 커다랗고 웅장한 느낌이었다.
오밀조밀 뭔가 밀착되고 날렵하고 높고 빛나는 한국과는 달리 런던은 깊은 인상과 적막감마저 주는
그레이 빛이었다.
날씨 때문인지
영국 사람들은 대체로 차분해 보였고 간간이 드리워진 안개는 런던 도시인들의 표정만큼 톤 다운되어
서늘하고 축축했다.
길버트 부부는 이왕 차를 타고 나온 김에 런던 드라이브를 하자며
큰 호의를 베푼다.
서양인임에도 계획되지 않는 이벤트를 해주고
의사를 물어보지 않은 채 좋은 것을 마구 추천해 주고 데리고 다니는 습성이
흡사 한국인 같았다.
알고 보니 그들은 미학 이론 교수와 20대 초반부터 알게 되어 20년이 넘게 절친하게
교류하던 사이였고
아직
한류열풍이
일어나기
전 시대인
2009년임에도
이미 한국 음식과 한국의 역사, 예술문화에 관심이 많아 자주
서울과 부산 등으로 여행을 다녀간 것이다.
사람에 대한 관찰, 연구가 일상인 그들 부부는 연극배우스럽게
한국인을 세세하게 관찰하며
성격과 문화적 특성까지 익혀서
매우 친근하게 느낀다는 많은 수다를 쏟아냈다.
다행히 N은 그런 성격의 영국인 부부를 만나서
왠지 한국인 같은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편안하게 두 달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환전해 온 여행 경비가 그리 넉넉하진 않았기에
N은 관광지 탐방이 아닌 런던의 숨은 골목길을 찾고 복잡했던 마음을 차분히 추스르는 목적으로
2개월의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그 쯤되면 돈도 떨어지고 다시 한국에 돌아가야 할 것이다.
드라이브를 하며
어른들의 관람 열차 같은 '런던 아이'를 보고,
피카딜리 극장을 지나고,
한인 마트도 지나가고,
런던 지하철에서 나오는 회색 빛 표정의 사람들도 구경했다.
이미 해가 바뀌어 2010년 1월 1일이었지만
여전히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으로 연말 분위기가 반짝거리던
코벤트 가든은 특히 아름다웠다.
잠시 내려서 길버트 부부가 마켓을 구경하는 동안
N도 잠깐의 자유 시간을 가진다.
코벤트 가든 마켓은 요일마다 마켓에 나오는 사람들이 바뀐다고 했다.
그날은 고풍스러운 엔틱 제품과 신비한 소품을 파는 상인들이 나오는 날이었다.
유럽 중세 문화의 화려함과 무게감이 그대로 표현된 아기자기한 거울, 팔찌, 만년필 등의 소품은
구매를 자극할 만큼 유니크하고 매력적이었다.
길버트 부부는 N을 데리고 마켓 모서리에 위치한 분홍 꽃무늬 로고의 작은
카페로 데려간다.
맛은 구수하고, 온도는 미적지근한 커피를 마시며
휘낭시에 같은 조그만 빵도 맛보았다.
'.... 음... 확실히 한국 커피가 맛있는 건 왜일까.
온도가 왜 이렇게 미지근한 거지..? 얘네는 진짜 뜨거운 거 안 먹나?'
확실한 한국인 입맛의 N은 서양인 특유의 뜨겁지 않은 커피가
식어서 나온 숭늉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정도면 나름 괜찮았다.
이곳은 런던이었기 때문이다.
온통 피부색이 다르고 눈동자 색깔도 다른 인종 사이에서
N은 충분히 다른 세계로 잘 도망친 것 같은 만족감을 느꼈다.
'좋아... 이런 낯선 곳... 무계획의 하루...
갓 쓴 도사 따윈 나타나지 못할 것 같은 곳... '
간단한 커피 타임을 가진 후
N은 드디어 길버트 부부네 집으로 향했다.
런던 시대 중심가에 위치한 집은 듣던 대로와는 다르게 좀 더 규모가 있었다.
허리 아래로 오는 낮은 고동색 나무로 된 문을 휙- 열고 들어가면
아담한 정원이 나왔다.
그 정원을 몇 걸음 걸으면 집 건물이고
열쇠키를 돌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관 바로 앞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바로 보인다.
문을 열고 또 열고 들어가는 조금은 신기한 집.
1층 현관을 지나 오른쪽엔 작은 거실과 길버트 부부의 침실, 서재가 있고
현관의 왼쪽에는 널찍한 부엌과 부엌을 가로질러 들어가는 화장실이 위치해 있다.
길버트 부부는 N을 2층으로 안내해 줬다.
신발을 신은 채로
어둡고
짙은
나무색의
계단을
오르니
1층보다
조금
좁고
다락같은
느낌의
2층의 작은 복도 같은 공간
이
나왔다.
그리고 바로 복도의 오른쪽에 있는 문을 여니 게스트용 작은 침대와 책상, 책상 옆에 다리가 긴 조명.
그리고 침대 옆에 조그마한 창문이 하나 있다.
N은 2층에서 신는 실내용 슬리퍼를 받고 방으로 들어간다.
길버트는 이제 여기가 너의 방이라며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고
아침 식사시간을 알려주고,
그 외 부엌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있는 욕조에서 샤워를 한 후 머리카락은 잘 치워달라는
부탁 및 동네 근처에 버스가 몇 시간 간격으로 오는지 알려준 뒤
즐거운 여행 되길 바란다는 말을 해주고 1층으로 내려갔다.
N은 드디어 캐리어와 배낭을 방구석에 던져놓는다.
그리곤 신발과 양말까지 다 벗어던지고 침대 위에 벌러덩 드러눕는다.
누워서 보이는 천장은 짙은 나무 그대로의 질감이 살아있었고
침대 옆 작은 창문 밖으로는 2층 높이까지 자란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
푸른 이파리가 싱그러워 보여 좋았다.
'진짜.. 런던이다. 한국이 아닌 지구 반대편.. 다른 나라.!'
N은 뭔가 실감이 나는 듯 안나는 듯하면서도
기분은 들떠있었다.
'오늘은 짐 풀고 좀 쉬다가...
내일 동네산책도 하고 여기저기 다녀야지~!'
그렇게 무계획의 계획을 알차게 세우고
N은 캐리어를 펼쳐 세면도구와 수건을 꺼낸 후
1층으로 내려가 미지근한 물에 샤워를 했다.
그리고 서양답게 한국 같은 난방 시스템이 없는 방에서
차가운 듯한 침대 위에 이불을 돌돌 말고 잠에 빠졌다.
꿈에 문득 누군가 나온 것도 같았지만
잠에서 때면 다 잊었다.
-
N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행자스럽게 방문한 곳은 '대영박물관'이었다.
그래도 영국에 처음 와서 언제 또 올지 모르는데
대영박물관 정도는 가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한국어와 영어로 된 여행안내지도를 번갈아보며
지하철을 타고 내려 박물관까지 가는 길을 찾았다.
부랑자들이 가끔 몇몇 보이고 왠지 찌릿한 소변냄새 같기도 한
회색 시멘트 느낌의
런던
지하철을 타고 내린다.
그리고 여성용 공중화장실을 지나치다가
그 안에 얼핏 보이는 공용 수돗가의 팁 받는 남자를 보고
급한 볼일도 겨우 참은 채 걸어 걸어
대영 박물관에 도착했다.
박물관 입구에 펼쳐진 드넓고 푸르른 잔디밭이 퍽 마음에 들었다.
그 바닥에 '공룡'이 마지막 종족의 흔적이라도 남겨놓은 듯
까만 땅에 움푹 파여있는 발자국이 재미있었다.
발자국 안에 며칠
전
비가 내린 후
고인
물에 N의 얼굴이 비쳤다.
많은 세계들이 어떤 미약한
신호를
보내며
다른
어떤
세계
속에
계속 공존하는
느낌.
박물관 또한 그런 곳이었다.
내부에 들어가니 몇몇 영국인과 다른 유럽인들이 보였고
아시아권 사람은 N 혼자인 걸로 보였다.
대영박물관에는 마치 뼈속의 DNA들이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공룡의 뼈와
다양한 새와 생물들이 거대하게
박제되고 전시되어 있었다.
그 모든 영국의 오래된 자취를 한참 감상한 후
N은 길버트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왔다.
유달리 더 안개가 짙어진 런던에서 혼자 길을 잃으면 곤란한 일이었다.
N이 길버트의 집으로 도착한 시간이 마침 부부의 저녁식사 타임이었기에
함께 식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생일 파티에서 거하게 점심을 먹었다며
저녁이 너무 심플해진 데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그래도 나름 오븐에 구운 통 닭다리 구이와
통째로 삶은 감자 위에 올려진 노란 치즈.
미지근한 버섯수프가 함께 차려져 나름 서양식의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N은 길버트 부부는 왠지 미식가일 거라 예상하며
맛있게 먹고 감사인사를 한 후 2층 방으로 올라간다.
퍽이나 평화로운 시간이다.
2개월 동안은 돈 벌 걱정도 없어 자유로웠다.
치러야 하는 시험이나 제출해야 할 리포트에 대한 압박도 없다.
선후배사이에 껴서 눈치코치를 장착한 채 언행을 조심하는 긴장감도 없었고
모든 것이 새로운 풍경 속에 매일 원하는 방식으로
지극히 나태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퍽
자유로웠다.
그리고 이어서 어떤 생각이 따라온다.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침대에 누우면 아래층에서 길버트 부부가 틀어놓은 티브이소리가 희미게 들린다.
어린 시절 38번 투니버스 채널에서 화려하게 변신하던 주인공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나라의 티브이는 무엇을 보여줄까.
사람 사는 곳 다 비슷하겠지.
나는 무엇을 원했나...
사실 어떤 직업도 장래 희망도 원한 적이 없어.
그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은 영웅이 되고 싶었나 봐.'
다락방 창문 밖으로 흔들리는 푸른 나뭇잎들.
그 사이로 은은하게 달이 보인다.
말 없는 달.
-
런던에서의 N의 시간은 그렇게 차분하고 자유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세찬 바다나 흐르는 강물이 아닌 고요한 호수처럼.
2주쯤 흘렀을 때
길버트가 심각한 얼굴로 N을 부르더니
동양인을 대상으로 한 일명 퍽치기. 혹은 총기 사건을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최근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런던에 들어왔고
부
랑자들이
그들에게
돈을
받고
어떤
정보를
팔기도
하며,
그들에게 총을 얻어 마약에 빠진 채 총을 함부로 난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주에 일본인 여자가 혼자 런던 지하철을 탔다가 약에 취한
부랑자에게 총을 맞았다고 한다.
N도 조금 긴장이 되어 당분간 지하철을 타거나 골목을 혼자 걸어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멀리 갈 때는 길버트 부부의 차를 얻어 타고
가까운 거리는 낮 시간에 버스를 타거나
너무 멀리 가지 않기로 했다.
N은 잘됐다 싶어
방에 틀어박혀 일기를 썼다.
계속 쓰고 또 썼다. 일기를 썼는지 과거 혹은 미래를 썼는지는 N 스스로도 불분명했다.
달빛 도사를 만나기 전부터
만난 후까지.
N은 잠시 잊어버렸다고 믿고 싶었던 그 존재.
달빛 도사를 오히려 더 선명하게 새기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른 아침.
N은 우유에 콘푸레이크 같은 영국식 시리얼로 대충 때우다가
문득 그날이 코벤트 가든의 엔틱 마켓이 열리는 날인 것을 떠올리고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가기로 한다.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꽤 가면
코벤트 가든 근처에 내려준다.
N은 그 주에 가장 화창하고 맑은 날씨에
마켓으로 웅성거리는 코벤트 가든의 상쾌한 향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곳저곳 골동품 마켓과 소품 마켓, 꽃다발 마켓등을 구경하다가
가든 가운데에 이젤을 놓고 작은 캠핑용 의자 같은 것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데 심취한 어떤 여자를 발견한다.
푸른 눈의 금발머리 여자.
그녀는 한눈에 봐서 그저 거리의 화가 같기도 했지만 왠지 모를 고상하고 품격 있는 느낌도 풍겼다.
N은 호기심에 이끌려 다가가서 그 여자가 심취한 채 붓으로 그리는 그림을 보는데
그 순간 너무 놀라 땅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꺄악!"
웬 동양인 여자가 등뒤에서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자
그림을 그리던 금발머리 여자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본다.
N은 정말 놀랐다.
그것이 충격적이거나 공포스러운 놀람은 아니었고
어떤 지독한 인연에 대한 깨달음. 세상의 법칙에 대한 전율.
한편으로는 묘한 안도와 반가움이었다.
금발머리 여자가 그리는 그림은
N이 촉석루에서 만났던 여인.
바로 '주논개'의 초상화였다.
"이 얼굴은.... 논개...?"
주저앉은 N을 보며 유달리 깊고 푸른 눈의 금발머리 여자는
처음엔 당황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어 보인다.
마치 안심하라는 듯이.
그건 N만의 착각이었을까.
금발의 여자가 바닥에 주저앉아버린 N에게 말한다.
"This woman.. in this picture is... me."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그림 속 여자가 바로 자신이라고 말하는 금발머리 백인 화가.
N은 더 이상 머리로 이해하거나 가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알았다.
또다시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손짓을 느끼는 N의 귀에
저 멀리 남자 싱어송라이터의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동안 남자 싱어송라이터는 계속 노래를 하고 있었지만
N은 하얀 캔버스 위 논개를 보고 난 후에야
그 노랫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 ♬"
(사용이미지:TTC 다이어리 메인)
- 끝 -
-10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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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운명을 치유해 줘
07
20살 첫 연애의 악연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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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런던의 Knockin' on Heaven's Door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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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자살한 남자의 시체는 사라지고
너의 운명을 치유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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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살아요.이야기로 세계를 창조하는 영화감독이자 작가 남바다입니다. N이라 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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