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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바다 Sep 21. 2024

자살한 남자의 시체는 사라지고

운명의 수레바퀴처럼

차갑고 거센 강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물속에서 겨우 눈을 천천히 떠보니 N의 발 아래쪽에선 더 깊이 강 아래로 가라앉는 그가 보인다.

죽음의 길목에선 오히려 극도의 차분함이 심장 가득히 차올랐다.  


'도망쳐온 이곳에서... 결국 나는 더 깊은 세계에 빠졌구나... 나의 이 생도 끝이구나.."


N은 더 이상 달빛도사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렇게 천천히 물이 폐까지 목까지 차오르고 숨이 멎어간다.


'그저 이 모든 것이 내 운명이었을까?

영원히 행복하고 싶어서 그 모든 중첩된 세계를 바꾼 결과가

결국 운명에서 달아나려다.. 운명대로 죽는 것인가.'


그렇게 낯선 땅에서 만난 그와 함께

거대한 런던의 강물 속에서 죽어가는 중이었다.


문득

죽으면 영국까지 저승사자가 데리러 올지 궁금하다는

웃기지도 않은 생각이 나는 순간


불현듯

강물 저 표면 위에 어떤 강렬한 한줄기 노란빛이 물속을 통과해 뻗쳐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999 대원들의 핸드라이트 같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한바탕 꿈처럼 희망차고 고단했던 짧은 이 생의 문이 닫혀간다.  


왜 비로소 모든 것이 끝날 때가 되어서야

이 모든 생의 집착과 내 뜻대로 살아간다는 착각을 내려놓게 만드는  

주마등이란 선물을 받게 되는 걸까.


N에게도 그런 주마등이 스쳐가듯

마음의 스크린 속에 어떤 영화가 다시 상영되었다.



[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N.

근거리에 두 동강이 난 타이타닉이 점점 바다로 가라앉고 있다.

구명보트에 올라탄 사람들이 참담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바다에 빠진 N의 눈앞에는 남자가 가라앉고 있다.


'이 남자... 살 수 있는데.'


그 순간 바다 위에서 까만 도포를 입은 달빛 도사의 손이 물아래로 수- 욱 들어왔다.


달빛 도사

"N. 내 손을 잡아라."


N은 다시 힘껏 허우적거리며 도사의 손을 겨우 붙잡는다.

그리고 잠시 고민을 하다..

더 아래로 가라앉는 '잭'의 손목을 덥석 잡는다.


달빛도사, N을 바다 위로 대어처럼 당겨 올린다.

"어잌후 무거워라!"


N과 함께 잭이 바다 표면 위로 솟아오른다.

달빛 도사가 타고 있는 짙은 고동색 나룻배 위로 힘겹게 올라탄다.


달빛 도사는 N이 손목을 붙잡고 끌어올린 잭을 황당하게 바라본다.


"아니... 이 남자는 뭐야?

너네 어머니 과거만 설계한다니까.. 다른 사람 과거까지 건드리면 어쩌자는 거야!!!"


꽥 소리를 지르는 도사에게 N은 겸연쩍은 표정을 한다.


"아니.. 그게... 추워서 기절한 거지.. 눈꺼풀이 움직였거든요?

아마 근육이 다 멈춰서 기절한 거 같은데..

이 사람 살 수 있어요... 근데 그냥 죽게 내버려 둬요? 응?!"


달빛 도사, 깊은 한숨을 쉬며 짜증을 낸다


"에라 모르겠다. 난 몰라! 니가 저지른 일이다! 응?

이미 니가 살려서 새로운 인연이 엮이고 있구나...

니가 책임져라. 응?"


N

"아유.. 참...   그러죠 뭐...  "


N은 잭에게 다가가 양손으로 볼을 잡고 입술을 벌려서 숨을 불어넣는다.


달빛 도사,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 난 몰라.. 난 몰라..."



N

"후우- 후우- 후우-!"


몇 번의 호흡을 불어넣고 양손으로 잭의 가슴을 세게 압박하자

물을 토해내며 잭이 눈을 뜬다.


"커억! 컥! 컥..."


깨어난 잭, 자신을 살려준 N을 바라본다.


어디선가 나타난 동양 얼굴의 여인.


잭은 멍하니 N을 바라본다.

분명 모르는 사이인데

말이 없는 잭은 마치 이미 N을 알고 있었다는

반갑고 또 슬픈 눈빛이다.


달빛 도사, 손에서 등나무 꽃잎 몇 개를 훅~ 하고 분다.

타고 있던 나룻배 위 하늘에서 소용돌이가 생기더니

이내 나룻배가 바다 표면 위로 붕 - 떠오른 채

격렬한 소용돌이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잭은 다시 몸이 붕~ 떠서는 바다 위에 첨벙- 하고 떨어진다.


도사와 N은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진다.


잭은 자신의 주변에 있던 시체의 몸에서 구명조끼를 벗겨서 겨우 입는다.  

재빠르게 수영을 해서 멀리 가고 있는 구명보트를 향해 부지런히 헤엄을 친다.


구명보트 위에 겨우 올라탄 잭

도사와 N이 사라진 밤하늘의 허공을 응시한다.

별이 반짝이고 온통 칠흑같이 어둡다.


잭: 'Even if it's late, I'll definitely find you.'     ]



-


N은 다시 눈을 번쩍 뜬다.


그 모든 장면들이 찰나에 모두 선명하게 떠올랐다.


차갑고 어두운 강물 속..

함께 가라앉는 N의 눈앞엔

그의 시체만이 벌러덩 뒤집어 쥔 채 강물의 흐름 속에 너울거렸다.

눈을 감은 그의 얼굴과 방금 주마등처럼 떠오른 잭의 얼굴이 겹쳐진다.


'당신이... 스쳤던 인연이군요...

스치지 않고 이렇게 다시 만났군요.

그런데 왜 이런 모습인가요?

어떤 삶이었기에 이런 선택인가요. 당신은? '


그때

강물 위 표면에서 내리쬐던 노란빛이

아래로 가라앉던 그의 몸을 휘감는다.


그의 시체가 노란빛으로 감싸였다.

잠시 후 빛이 사그라들면서

그의 얼굴이 다른 사람으로 변해간다.

눈을 감고선 창백한 피부의 달빛 도사였다.  


이미 죽은 코벤트 가든의 가수 -  그는 온데간데없었다.

죽은 시체가 되어 가라앉고 있는 달빛도사의 감은 눈. 푸르게 식어버린 그의 붉었던 입술.

그리고 검은 도포가 물속에서 너울거린다.

그가 메고 있던 갓의 끈이 풀어진다.

모자가 벗겨져 나간다.

항상 갓의 살짝은 가려진 채 보였던 그의 얼굴이

온전히 드러났다.

퍽 남자답고 멋있는 얼굴이었다.

  


'... 어째서...  당신 얼굴이 보여?'




-




다시 눈을 떴을 때

N은 런던시내 가장 큰 병원의 응급실이었다.

다행히 N이 강물에 뛰어들기 전 땅에 일부러 떨어뜨린 지갑 속에

길버트 부부의 명함이 있었고

그들은 그것을 찾아 N의 위급상황을 전했다.


귀신이라도 본 듯 너무나 충격받은 표정으로

달려온 길버트 부부가 오히려 안쓰러웠다.


N은 그렇게 이번 생을 마감할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난 것이 결국은 마지막에 보았던 달빛 도사 때문이라 생각했다.



'결국... 여기서도 나를 쫓아다니다 살린 건가... 참..

근데 왜... 시체처럼 보였지... 그 남자는 어디 가고..'



길버트 부부는 울며불며 N에게 왜 그런 선택을 했냐느니...

이러려고 런던까지 온 거냐며 애원을 하다 화를 내기를 반복했다.


'이 사람들 꼭 우리 엄마 같네... 한국인 피가 흐르나...'


이내 실수로 발을 헛디뎠다는 가장 보편적인 N의 거짓말과

길버트 부부에게 선물하려고 멋진 그림까지 사놓고 그랬겠냐 하는

간곡한 설득의 바디랭귀지 표현을 듣고서야 조금 마음을 놓는 듯했다.

당장 한국에 있는 미학 이론 교수에게 전화를 하겠다느니 하는 것을

N은 겨우 부탁해서 뜯어말린다.

더 이상 학교에서 갖가지 소문에 시달리며

큰 친절을 베풀어준 교수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조금 진정이 되자

길버트 부부는 자신들의 이름으로 병원비를 처리하고

그나마 응급 처치를 받은 게 영국에선 다행이라느니

더군다나 보험도 없는 외국인이 영국에서 병원에 오면

기다리다 죽는 일이 가장 흔한 일이라며 한껏 토로를 하며

집으로 가기로 한다.


다행히도 N은 물에서 시체로 건져 올려졌지만  

갑자기 폐에서 물을 토해내며 의식이 돌아왔다고 한다.

응급실에서 더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었고

생각보다 몸의 상태는 건강했다.

시간이 갈수록 병원비만 억 소리 나게 커질 테니

N은 빨리 집으로 가자고 길버트부부에게 부탁을 해야 했다.


바빠서 얼굴도 거의 보기 힘든 영국인 의사 한 명을 겨우 붙잡고서는

진찰을 받고 집에 가서 방의 온도를 높이고 휴식을 취하라는 얘기를 듣고

알약 한두 개로 구성된 약만 처방받고 왔다.

길버트 부부가 무슨 어려운 단어로 설명해 주었지만

진정제와 포도당 뭐 그런 것으로 대략 이해할 수이었다.


'이상하네... 엄청 오래... 허파에 물이 다 차서... 가망 없는 느낌이었는데...

시체였다가 갑자기 살았다니.'


그러나

이제 그 사건보다

N은 중요한 것을 찾아야만 했다.

함께 물에 빠진 갈색머리의 가수. 그가 보이지 않았다.

함께 투신한 남자가 어떻게 되었다는 말도

그 누구도 해주지 않는 게 이상했다.


N,

"Wait! Where is he?

The man who fell into the river with me!"


그의 생사 또한 빨리 알아야 하건만..

길버트 부부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만 갸우뚱 거린다.


"Who are you talking about?

You fell into the river alone..."


부부는 정말 모르는 듯했다.

N이 혼자 물에 떨어졌다느니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이다.


N은 연거푸 묻고 또 묻는다.

"What does that mean?

A guy fell into the river with me! With a guitar!!

I tried to save him and fell in with him."


분명히 N과 함께 기타를 들고 물에 빠진 그 남자가 있다고 해보아도,

분명 그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뛰어든 거라 해도.

왜 아무도 그를 본 사람이 없는 건지.


길버트 부부는 굉장히 안타까워하는 동정의 눈빛으로

N에게 충격을 받은 모양이니 집에서 계속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만 할 뿐이다.

급기야는 의사를 부를 테니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길 바란다는데

N은 길버트 부부가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도 안 돼요...! 내가 무슨 강에 혼자 빠져요!

그 남자 분명히 있었다고요! 코벤트 가든에서 노래하던 가수요!"


N의 한국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다.

길버트 부부는 겨우 놀란 N을 추슬러 외투를 입혀주고

차로 이동했다.


N은 자신이 죽을 뻔한 것보다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한

모든 사람들의 태도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이건...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N은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음을 알고

며칠 회복한 후 다시 코벤트 가든으로 직접 가기로 마음먹는다.


'나에게 그림을 팔았던 그 화가..

그래. 코벤트 가든에서 계속 노래를 했을 테니.

그 화가도 그 남자를 알지.

그리고 나랑 그 남자가 같이 템스강으로 이동할 때도 목격했어.

그리고 다른 상인들도 있잖아.

그들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봐야겠다.

그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마지막에 그가... 왜 달빛 도사로 보인 걸까..

도사가 나타나서 그를 살리거나... 시체를 없애버렸나?

아냐 너무 망상이잖아... 아무튼 코벤트 가든의 그 화가를 다시 만나야 해!"


-



며칠 동안 N은

철저히 휴식을 하라는 길버트 부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잘 들었다.

2층 방에서 하루 반나절은 잠을 자고,

저녁에는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고

다시 늦은 아침에 눈을 뜨면 길버트 부부가 해주는 따끈한 버섯 수프 혹은

토마토홍합스튜 등을 먹으며 연신 감사의 표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니 기다렸다.

몸은 마치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고 묻는 듯 건강했지만

마음은 길을 잃고 방황했다.


세계를 바꾸고 누군가의 선택을 바꾸는 그 세계에서 도망치기 위해

런던까지 왔지만 도망쳐서 간 곳에 천국은 없었다.


N은 더 큰 세계 속에, 그 세계의 가운데 정점에 서 있음을 알아버렸다.


그렇게 일주일쯤 흐르고

N이 건강한 모습을 보이고

더는 그 남자를 찾는 이상한 말도 하지 않자

길버트 부부는 드디어 안심을 하고 N에게 자유를 허락했다.


자유를 허락한 그 이유 중 하나는

N이 한 달 가까이 남은 런던에서의 여행을 접고

다시 한국에 돌아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N은 부부에게 비싸게 주고 산 그림이 강물에 빠졌다며

더 여행할 비용도 없으니

비행기를 변경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였다.

그렇게 N의 런던 생활은.. 아니 도피는 한 달의 시간을 끝으로

막을 내리기로 한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 N은 코벤트 가든에 산책을 하고

기념품이라도 사고 싶다고 해서 길버트 부부의 차를 타고 동행하기로 한 것이다.





- 끝 -


-1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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