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은 없다.

희망을 보는 법

by 지오바니

휴직 후 처음으로 버스와 전철을 타고 서울 나들이를 가는 중이다. 나들이를 가기엔 강한 돌풍을 동반한 비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날씨에 따라 이리저리 나의 스케줄을 바꾸는 건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좀 늦긴 했지만 올해 1월 제주에서 안식월을 보내며 나와 일주일을 함께 했던 지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 후로 벌써 4개월이란 시간이 지났고 이제야 우린 짬을 내어 서로의 안부를 물을 여유가 생겼다.


몇 년 만인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랜만에 방문한 압구정동은 내 기억 속의 화려한 거리와는 많이 다 모습이다. 서울 곳곳에 새롭게 떠오른 다양한 거리들의 영향으로 이 곳의 상권이 무너졌다는 기사가 언뜻 머릿속을 스쳤다. 국에 가기 전 담동에서 잠깐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일명 명품거리라 일컬어지던 그곳에는 유명한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각종 럭셔리 명품샵들이 즐비했고 그 길과 이어진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를 걷다 보면 꼭 연예인 한 두 명씩은 마주치곤 했다. 그러나 오늘 본 그곳은 연예인은커녕 길을 오가는 사람도 없어 한적했고 곳곳의 상점은 비어있었으며 그 적막 탓일까 비가 오는 데도 불구하고 한때 화려함의 대명사였던 그 거리는 메마른 땅처럼 보였다.


'무엇이든 영원한 것은 없구나'

올라가면 내려가게 마련이고 좋은 날이 있으면 나쁜 날도 있게 마련이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 화려한 거리의 몰락을 보고 있자니 새삼 내리막에 서 있는 것 같은 내 인생도 다시 튀어 오를 반등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외려 희망을 보고 싶어 졌다.


'그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으려나.'

이 곳은 이제 예전처럼 화려한 식당들은 없지만 이 궂은 날씨에도 30-40분씩 밖에서 줄을 서서 먹는 맛집들이 숨어있다. 밖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지하에 위치한 태국 식당 앞에 한참 줄을 서서 들어가니 맛난 음식들과 현지 분위기 물씬 풍기는 인테리어가 내 눈을 사로잡는다. 그 작은 공간에 삼삼 오오 모여 앉아 음식을 매개 삼아 그 공간과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과 다닥다닥 놓인 좁은 테이블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식당 직원들. 그들이 뿜어 내는 펄떡이는 생생함이 밖에서 마주한 메마른 현실과 커다란 대조를 이룬다.

이렇게 살아 숨 쉬는 곳들이 조금씩 모이다 보면 이 거리도 언젠가 다시 살아나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날이 오진 않을까? 그렇다면 하강만 하는 듯한 나의 삶에서도 되살아날 조그만 희망의 씨앗을 찾아낸다면 다시 벌떡 일어나 위를 향해 날아 볼 여지가 있진 않을까?

이름이 어려워 외우지 못했지만 맛은 제대로 기억하는 태국요리

맛난 음식을 앞에 놓고 좋아진 기분 탓인지 어디선가 자꾸만 희망의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냥 다 잘 될 것 같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긍정에 도취된 기분이다. 주변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소음과 계속해서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에 묻힐세라 목청껏 마주 앉은 이와 한참을 떠드니 어느새 접시는 비었고 마음은 부른 배와 함께 즐거움으로 충만해졌다.


오랜만의 외유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뿐인데, 오늘 나는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는 법을 본 듯했고, 메마른 땅에서도 피어나는 싹을 마주한 듯했으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내 인생에서 위를 쳐다볼 용기를 그러쥘 수 있는 내 안의 여지를 본 듯했다.


이 최면에서 당분간은 깨어나고 싶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