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휴직한 지 3개월쯤 되니 생활리듬이 점점 무너져 간다. 처음 계획했던 미라클 모닝은커녕 점점 늦어지는 취침 시간에 맞춰 기상 시간도 늘어질 대로 늘어지는 중이다. 그나마 다시 학교에 가게 된 아이 덕에 일주일에 3일은 알람에 맞춰 일찍 일어나지만 그렇게 부족해진 잠은 팔자에도 없던 낮잠으로 채우게 되니 바이오리듬이 완전히 망가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침 9시 전엔 모두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세 식구 모두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자마자 책상에 앉는다. 온 식구가 재택근무에 원격수업에 각자 책상 하나씩 붙들고 하루 종일 컴퓨터와 씨름을 하다 보면 꼭 미래의 집 모습을 앞당겨 체험하고 있는 것 같다.
허나 방이 무한정으로 있는 게 아니니 작년부터 재택근무 중인 꼼군과 원격수업과 e학습을 병행하는 아이에게 방을 하나씩 내어주고 나니 결국 옷방이 내게 남은 선택지였다. 그렇다고 옷으로 가득 차 앉을 공간도 없는 옷방에 책상을 놓을 수는 없는 노릇. 결국 난 거실 한 구석에 자리를 하나 만들어야 했다.
가구와 집기, 운동기구, 게다가 아이용 소형 트램펄린까지 있는 거실은 이미 포화상태다. 아침부터 머리를 굴려 어떻게 해야 공부할 만한 자리를 만들 수 있을지 식구들이 모여 십시일반 아이디어를 냈다. 결국 새로운 것이 들어오려면 오래된 것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이 참에 거실 한 벽면을 전부 차지하고 있던 책장에서 아이가 어릴 때 보던 책들을 전부 들어내었다. 내 허리만큼 쌓인 책이 두 보따리가 나왔다. 뭔가 일을 크게 키운 것 같아 조금 미안하지만 덕분에 온 식구가 봄맞이 대청소를 하게 된 셈이다. 책이 비워진 책장도 들어내니 내 작은 책상 하나가 들어갈 자리가 생겼다.
내 자리라는 것이 생기니 자연스레 회사 책상이 떠오른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내 책상은 아무도 손 못 대게 하겠다며 호언장담하던 우리 팀 막내의 귀여운 모습도 눈에 선하다. 키가 180센티미터에 몸도 좋고 얼마 전엔 결혼까지 해서 이미 가정이 있는 사람인데도 팀 막내라는 이유로 내 눈엔 여전히 귀여운 동생이다. 그가 웃으라고 장난스레 한 그 말에 난 주책맞게 마음이 뭉클했다. 다음번에 만나면 이제는 진짜 어른 대접해줘야지 라고 다짐해본다.
청소를 한다고 하고 왔는데 그새 주인 없는 책상 위엔 먼지가 많이 쌓였겠지? 컴퓨터도 없이 텅 빈 책상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헛헛하다. 휴직을 앞두고 책상 정리를 하며 개인 물품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었다. '내가 이 곳에 마음을 많이 주었었구나.' 좀처럼 내 물건을 밖에 잘 안 두는 성격인데 그곳은 정말 '내 자리' 같았나 보다. 박스로도 모자라 쇼핑백으로 며칠을 날랐다. 내가 이 곳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나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정리하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정을 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러나 여전히 이렇게 회사가 떠오르는 날이면 마음 한구석이 찌르르... 자꾸 멍하니 생각에 잠기게 된다.
우리 팀에는 오후 간식시간이 있었다. 우리끼리 정해 놓은 오후 4시가 되면 서로 등을 대고 앉아있다가 빙그르르 의자를 돌려 마주 보고 간식을 먹으며 목소리를 낮춰 수다를 떨었다. 그래서 항상 내 책상 한 구석에는 간식 더미가 있었다. 여러 종류의 차와 과자, 가끔은 빵, 그리고 더 가끔은 과일과 견과류 까지. 아주 바쁘지만 않으면 항상 이렇게 얼굴 마주 보며 10-20분씩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잠시나마 머리를 식혔다. 짧지만 소중했던 그 시간을 통해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알 수 있었고 가끔씩은 업무 관련 얘기를 하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번뜩이기도 했다. 그 시간이 우리를 더 돈독하게 해 주었음은 물론이다.
아마도 당분간은 3개월 만에 다시 생긴 우리 집 거실의 내 자리를 볼 때마다 옆 자리에 있던 동료들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눈에서 안 보이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에 희망을 걸어본다. 아직은 그 말이 내게는 사실로 판명되지 않았기에 조금 더 시간을 줘 봐야겠다.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오늘같이 그들이 떠올라도 내 마음이 조금 덜 쓰라릴 때가 올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