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해 준 밥이 제일 맛있다.

그리운 점심시간...

by 지오바니

오랜만에 순댓국을 먹으니 회사 생각이 난다. 점심시간마다 줄을 서서 먹던 회사 근처 순댓국밥집. 추운 날 밖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겨우 들어간 식당 안, 안경에 김이 서리고 따뜻한 식당 안 공기에 고소한 국밥 냄새가 실려온다. 해장하려는 아저씨들로 바글대는 식당 안. 각자 기호와 양에 맞게 "나는 순대만", "저는 국밥 특으로 주세요." 주문한 뒤 미리 나온 양파와 고추를 쌈장에 찍어 한 입 먹으면 입맛이 싸악 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순댓국밥 한 그릇이면 얼었던 몸이 노곤하게 녹고 그날 오후는 그 국밥 한 그릇으로 말짱하게 버텨 낼 에너지가 넘쳤다.


회사 생활 즐거움의 팔 할은 점심시간이 아닐까.

11시 30분부터 엉덩이를 들썩 거리며 오늘 뭐 먹지? 즐거운 고민을 하며 맛있는 식사를 하고 하루의 유일한 자유시간을 껏 누렸다. 밥 먹고 동료들과 함께 산책을 하는 시간도 빼놓을 수 없다.


휴직도 벌써 세 달째. 이제 점심은 가장 가볍게 먹는 식사가 되었다. 삼시세끼 꼬박꼬박 아침 7시, 정오, 저녁 8시에 챙겨 먹던 것이 언제였는지 모르게 아침은 느지막이 시리얼로 때우고 점심은 분식, 그나마 저녁은 제대로 반찬을 놓고 밥을 챙겨 먹는다. 그랬더니 자꾸만 주전부리가 늘었다.

오죽하면 "오늘 점심은 짜장면 먹을래?"라는 내 말에 요즘 너무 분식을 많이 먹었다며 아이는 오늘 건강식을 먹겠단다. 밀가루도 안 먹고 고기도 말고 야채를 먹겠다며 샐러드를 달라고 한다. 아이가 최애 음식 짜장면을 마다하는 걸 보니 내가 좀 너무했나 싶다.

'요리 못 하는 엄마라 미안.'

아이의 요구에 맞춰 샐러드와 볶음밥을 주문한다.


회사에선 밥때만 기다렸는데 집에선 밥때가 제일 무섭다. 게다가 할머니가 여행으로 며칠이라도 집을 비 우리가 배달의 민족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 된다. 그리고 똑같은 밥통에 똑같은 쌀로 밥을 해도 내가 한 밥은 할머니가 한 것처럼 찰지게 맛난 밥이 안 된다. 거 참 희한하다.


내 생에 요리를 즐겨 한 기억은 사 먹는 게 너무 비싸 어쩔 수 없었던 유학생활 시절과 신혼 때다. 신혼이라면 누구에게나 예쁜 앞치마를 두르고 햇살이 쨍하고 비쳐 드는 주방에서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이면 미소를 가득 머금은 남편이 백허그를 해주며 다정하게 맛있겠다고 코멘트를 해 주는 장면을 한번쯤 재연해 보고 싶지 않나? 그래서 나도 퇴근하자마자 근처 시장에 가서 매일 장을 보고 집에서 무언가를 지지고 볶고 만들었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진 않았다. 장을 보고 들어가면 이미 저녁 7시 30분이 넘었고 허기는 지는데 요리를 해본 적이 없으니 그냥 마구잡이로 했다가 망치기도 여러 번. 어느 날은 가장 쉬워 보이는 샤부샤부를 하겠다며 비싼 한우를 사 갔는데 고기를 그냥 먹는 것이 찝찝해서 그 얇은 고기를 물에 씻었다. 결과는 뭐 말 안 해도... 또 하루는 꼼군이 좋아하는 잔치국수를 해보겠다며 요리책에 나온 대로 멸치를 물에 넣고 20분을 끓였다. 국수를 삶았다. 계란 지단을 해서 위에 올렸다. 분명 요리책에 그렇게 나와있었고 그 말대로 했으나 맛은 상상에 맡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꼼군은 그때 일로 잔치국수만 보면 날 놀려댄다. 그 이후로 요리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고 요리해주는 로봇이 나오길 손꼽아 기다리며 살고 있다.


아~ 언제 다시 밥때가 기다려지는 날이 올까. 대충 때우는 게 아닌 고심해서 메뉴를 정하고 식사시간이 끝날 때까지 1분 1초를 정성스레 사용하던 때가 오늘따라 무척 그립다.


결론은, 남이 해 준 밥이 제일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