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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Nov 26. 2022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루틴

“네가 너무 좋아, 미도리.”

“얼마만큼 좋아?”

“봄날의 곰만큼.”

“봄날의 곰?” 하고 미도리가 또 얼굴을 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봄날의 곰이라니?”

“봄날의 들판을 네가 혼자 거닐고 있으면 말이지, 저쪽에서 벨벳같이 털이 부드럽고 눈이 똘똘한 새끼곰이 다가오는 거야. 그리고 네게 이러는 거야. ‘안녕하세요, 아가씨. 나와 함께 뒹굴기 안 하겠어요?’ 하고. 그래서 너와 새끼곰은 부둥켜안고 클로버가 무성한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온종일 노는 거야. 그거 참 멋지지?”

다시 봐도 참 중2병스러운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_『상실의 시대』라는 한국판 제목 이 아니었으면 한국에서 엄청난 판매고를 올릴 수 있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_의 한 대목이다. 

사랑 고백을 한다면 긱스의 "짝사랑" 가사처럼 직관적으로 하고 싶다.


난 너를 원해, 냉면보다 더. 난 네가 좋아, 야구보다 더 

넌 너무 예뻐, 햇살보다 더. 난 네가 좋아, 우주보다 더


무라카미 하루키는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등단한 이래 『노르웨이의 숲. 1987』, 『해변의 카프카. 2005』, 『1Q 84. 2009』 등 소설을 비롯, 『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 등의 에세이까지 40여 년 넘게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군림하고 있다. 그의 소설은 몇 권을 읽어도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데, 묘하게도 몇 년에 한 번씩 그 귀신 씨나락 까먹는 문장이 끌릴 때가 있다. 

그래서 요즘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985』를 읽고 있다.  여전히 읽을 때는 가독성과 몰입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읽고 나면 빛의 속도로 내용을 까먹게 되는 게 희한한 노릇이다. 하루키 최고의 미덕은 소설 속에 멋진 음악을 많이 소개하고 있어, 찾아 듣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하루키 소설 때문에 슈베르트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올드 팝, 재즈와 가까워졌다. 


아, 그리고 하루키가 마음에 들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야쿠르트 스왈로스 팬이어서이기도 하다. 스티븐 킹이 보스턴 레드삭스 팬이 아니었다면, 존 그리샴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팬이 아니었다면 그들에게 큰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 특유의 페이소스를 가지고 있어 끌렸을지도 모른다. 정말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 없는 야구 경기를 보다 보면 인생을 관조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올해 야구가 끝난 순간 하루키 소설을 들춰보게 된 건지도… 


하루키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글쓰기로 유명하다. 매일 새벽 4시부터 12시까지 글을 쓰고, 12시부터 2시까지 달리기나 수영을, 2시부터 9시까지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9시부터 4시까지 잠을 잔다. 지금 내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하루키 같은 루틴을 만드는 일이어서 마음 같아서는 이 일개미처럼 성실한 작가가 글 쓰는 걸 구경하고 싶다. 하루에 1시간 글 쓰는 루틴도 쉽지 않은 내가 하루키의 일상을 구경한다고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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