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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Nov 27. 2022

국가부도의 날

재벌집 막내아들이 아닌 평범한 X세대가 겪은 IMF 외환위기

26일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5회에서는 1997년 IMF 외환위기에 따른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했다.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던 X세대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시작할 무렵 갑작스럽게 겪게 된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 사태는 충격, 그 자체였다. 1990년대 중반은 경제 호황 시기였고, 대학에서 적당히 학점 관리만 하면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는 청년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적당한 학점 관리도 못한 데다가 전공과는 전혀 관련 없는 영화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넘게 영화와 관련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었다. 수입이 들쑥날쑥하다 보니 백수나 다름없는 생활이 이어졌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1997년 10월 꽤 괜찮은 조건으로 안정된 직장에 취업을 했다. 그런데 그해 11월 21일 정부에서 IMF 구제 금융을 신청했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와아 한 달만 더 게으름을 피웠어도… 상상도 하기 싫다. 

환율은 달러당 2천 원대를 돌파하였고, 금리는 30% 를 웃돌았다. 주가는 끝을 모르게 추락하였고, 집값은 뚝 떨어져 집주인이 전세금을 내어주지 못해 세입자가 전세금 대신 집을 인수하기도 했다. 한보그룹을 시작으로 삼미, 기아, 진로 등 대기업들의 연쇄 부도가 이어질 정도였으니, 중소기업의 도산은 오죽했을까. 수많은 회사가 망했으니 그 회사에서 일하던 근로자는 실업자가 되어 가정이 파탄 나기에 이르렀다.


암튼 나는 매우 운 좋게도 취업의 막차를 탈 수 있었지만, 대학 친구들에게 들려오는 소식은 우울하기만 했다. 프랑스로 유학 갔던 동기는 1년도 되지 않아, 공부를 중단하고 귀국했다는 후일담은 그나마 양반이었고, 알차게 대학 생활을 보내고 여러 기업에 합격했던 선배가 고르고 골라 갔던 회사가 부도 처리돼서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때 취업 기회를 놓쳐 대기업 취업을 포기하고, 학원 강사의 길을 선택해서 평생직업이 된 친구도 있다. 


풍요로운 시기를 보내던 X세대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경제 한파는 매우 당황스러운 현실 정도였었지만 IMF 사태에 직격탄을 맞은 것은 중년 가장들이었다. 아직 한창 일할 나이였지만 구조조정으로 회사에서 내쫓긴 가장들은 아침에 출근하는 척하고 집에서 나와 하루 종일 공원이나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퇴근 시간에 귀가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려 했지만 얼어붙은 노동시장에 취업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려웠다. 그렇게 괴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신세를 비관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저녁뉴스에 빠지지 않고 자살 소식이 이어졌다. 

출처. 통계청 2022

1990년대 중반까지 10만 명당 10명 내외였던 자살 사망률은 IMF 사태 이후 1998년 18.4명까지 치솟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힌 것 같은 나날들이었지만 2000년 12월 국제통화기금의 모든 차관을 상환하면서 IMF 시대를 벗어났다.  이 기간 동안 정부는 금융, 기업, 공공, 노동 부문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친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200조 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조성해 부실화된 은행에 투입했고, 5대 시중은행들은 합병이나 해외 매각되었다. 포스코, 한국전력, 한국통신 등이 민영화되었고, 노동부문에서는 정리해고가 허용됐다. 4대 그룹 중 하나였던 대우그룹이 해체되는 과정을 지켜본 기업들은 부채비율을 대폭 낮추고 불필요한 투자나 확장을 자제했다. 계열사 거느리기에 경도되었던 기업들은 내실과 수익성 창출로 무게중심을 옮기게 된 것이다.

 

IMF 외환위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희생이 있었지만 사회에 만연된 거품이 꺼지고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전환점이 된 것도 사실이다. IMF 시대는 벗어났지만, 2003년 카드대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사태 등 경제 위기는 반복되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 어떤 형태일지 알 수 없지만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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