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치, 냉장고를 스스로 고치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by Rosary

삼성전자가 국내 소비자에게도 갤럭시 스마트폰 등의 자가수리 방법을 공개하고 서비스센터를 통해 정품 부품을 공급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기계치인 나는 언감생심 시도조차 못할 텐데 그저 남의 일이려니 넘겨버렸다. 그런데, 오늘 스마트폰보다 훨씬 덩치가 큰 냉장고를 셀프 수리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2년 전에 구입한 냉장고가 걸핏하면 말썽이라 작년에 이미 2번의 AS를 신청했는데 오늘 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냉장고가 말썽을 부려도 꼭 주말에 문제가 생겨서 AS 기사 방문이 어려워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을 상하기 전에 먹어치우고, 옮기느라 한바탕 난리를 치른다. 작년에는 단골빵집 사장님이 감사하게도 냉동실을 흔쾌히 빌려주셔서 몇 가지 긴급한 식재료를 옮기기도 했다.


가급적 냉장고에 식재료를 채우지 않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시한폭탄 같은 냉장고 사정 때문이기도 하다. 이젠 비상시에 냉장고 대용으로 임시로 사용할만한 택배 스티로폼 박스와 아이스팩을 넉넉히 쟁여두는 요령까지 생겼다. 상할 만한 식재료들은 아이스팩과 함께 스티로폼 박스에 넣어두고 얼려둔 바나나와 고구마는 틈틈이 먹어치우고 점심엔 에어프라이어에 치킨을 돌리고, 저녁엔 안심을 구워 본의 아니게 고기데이가 되었다.


예전에 가족들과 함께 살 때에는 단 한 번도 냉장고가 고장 난 적이 없었고, 그 이전에 사용하던 냉장고도 그만큼 사용하는 동안 고장 난 적이 없다가 부품이 단종될 정도로 오래 사용한 후에라야 교체를 했기에 냉장고가 이렇게 속 썩이는 가전제품이라는 걸 처음 경험하고 있다. 애초에 잘못된 제품인 건지, 소형 냉장고라 냉기가 잘 순환되지 않는 문제가 있는 건지 이유는 알 수 없다.


냉장고에 문제가 생기는 원인도 항상 같다. 냉동실 모터 부분에 성에가 끼어서 냉동실 온도가 올라가서 냉동-냉장 기능이 안 되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성에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부분이면 전원을 끄고 녹이면 될 텐데 냉동실 후면 부분이라 뒤판을 열고 녹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지난번 AS 기사가 왔을 때 그냥 앞부분 조립을 하지 말아 달라고 했지만, 고객이 임의로 수리하는 건 어렵다고 부득이 완전 조립을 해놓고 가서 오전 내내 애를 써도 도저히 해체가 되지 않았다.


몇 시간을 씨름을 하다가 결국 AS센터에 전화를 했지만, 예상대로 오늘은 방문이 어렵다는 것이다. 냉동실 음식을 못쓰게 되니 해체방법이라도 알려달라고 사정하니 기술지원팀에서 연락드리겠다는 답변을 해줬지만 결국 피드백을 받지 못했다. 식재료를 살리기 위해 냉동실 후면을 어찌어찌 조금 열어 드라이어를 쐬어 성에를 녹여 하단부로 흘러가게 해서 수조에 담긴 물을 퍼내고 겨우겨우 수습하여 다시 전원을 연결했더니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살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들과 맞닥뜨릴 때가 있다. 가족과 함께 살 때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부분도 혼자 살면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답이 없어지는데 돌발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당황스럽고 짜증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어떻게든 해결하고 나면 또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이제 난 냉장고도 스스로 고치는 사람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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