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sary Jun 25.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리치의 『1950. 한국전쟁 70주년 사진집』

지난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한 민간용병 바그너 그룹이 무장 반란을 일으켜 모스크바로 향하고 있다는 속보가 전해져서 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가 싶더니 하루도 되지 않아 바그너 그룹의 수장 프리고진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극적인 타협으로 일단락되었다. 위화도 회군인 줄 알았더니 실미도 사태였다는 커뮤니티 글을 보고 실소가 터진 이번 사태를 보고, 생각보다 장기화되고 있는 전쟁이 얼른 끝나야 할 텐데 걱정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던 한국전쟁이 이제 70년이 넘어, 전쟁의 참화(慘禍)를 기억하는 세대들은 점점 사라지고, 게임이나 영화 같은 픽션으로 전쟁을 이해하는 세대들이 다수가 되어가고 있다. 전쟁을 관통해서 살아온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 그때 이야기를 좀 자세히 듣고, 기록으로 남겼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고, 3년이나 전쟁을 겪느라 사춘기 따위는 느낄 사이도 없이 청년으로 건너뛴 부모님의 삶에 대해 마음속에서 한없는 연민과 동정이 생겨났다. 살아계실 때 이 마음을 표현하고, 상처를 어루만져드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후회가 남는다.

『1950. 한국전쟁 70주년 사진집』

2020년 종군기자 존 리치(1917~2014)가 한국전쟁 상황을 촬영했던 사진을 모은 『한국전쟁 70주년』 사진 전시회와 사진집이 발행되었었다. 한국전쟁 관련 사진들은 대부분 빛바랜 흑백인 데다가 주로 군인들을 찍은 것들이라 막연한 옛날이라는 이미지만 남아있었는데 존 리치의 컬러 사진들은 전쟁의 참상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들을 담고 있어 울림이 크고 감동적이다. 

『1950. 한국전쟁 70주년 사진집』

아이들과 곡식을 실은 나무수레를 끌고 가는 아낙네, 추락한 비행기에 올라서 해맑게 웃는 소년, 철모에 꽃을 꽂은 병사의 모습은 웃음도 나고, 눈물도 나는 그런 사진이다. 참혹한 전쟁을 딛고 삶의 터전을 일구는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지만은 않은 걸 보면 삶의 존엄성과 인간의 의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족, 그들과 함께 했던 보금자리를 하루아침에 잃는 감당하기 힘든 슬픔과 절망의 나날을 겪었던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서 살고자 했던 사람들의 의연한 모습을 보면 평화롭고 평범한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감사할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야구, 식물덕후의 일본어와 친해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