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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Jul 18. 2023

1983년 이웅평

전쟁의 공포, 분단을 실감했던 순간

공동경비구역(JSA)을 견학하던 주한미군이 월북했다는 뉴스를 보고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민간인도 아닌 미군의 돌발행동에 애꿎은 우리 군인들만 고생하겠구나 싶었다.  40년 전인 1983년 2월 25일 금요일 오전 11시 갑자기 “여기는 민방위 본부입니다.  지금 서울, 인천, 경기 지역에 경계경보를 발령합니다. 국민 여러분, 지금은 실제상황입니다.”라는 소리와 함께 사이렌이 귓전을 때리면서 난리가 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통장이던 아버지는 무슨 일인지 알아보러 밖에 나가시고 우리 남매는 “아, 진짜 전쟁 났나 봐. 우리 어떡해” 공포에 사로잡혔고, 엄마는 “기다려보자, 아버지가 알아보러 나가셨으니…” 얼마나 지났을까. 아버지께서 돌아오셔서 “괜찮다. 북한군이 귀순한 거란다.”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안심시키셨는데 “사람들이 전쟁난 줄 알고 쌀 사러 가고, 라면이랑 배터리 산다고 나와서 난리도 아니다.”라고 하시면서 웃으시길래 그제야 “와아 진짜 전쟁난 줄 알았네.” 하면서 잔뜩 긴장했던 우리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금까지 살면서 세상이 끝난 것처럼 무서웠던 그날의 공포스러웠던 순간은 정말 잊을 수 없다. 


나중에 북한 공군 장교였던 이웅평이 자신이 탄 미그 19기를 몰고 그대로 연평도 상공의 서해 북방한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넘어왔다는 사실을 알고 어린 나이에도 큰 충격을 받았었다. 당시 북한의 엘리트 조종사인 데다가 키가 180cm 훤칠한 미남형이었던 이웅평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실로 대단해서 4월 14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귀순 환영대회에 무려 130만 명의 인파가 몰리기도 했다. 


북한의 전투기까지 타고 온 이웅평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우는 극진해서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보상금 15억 6천만 원을 지급했고, 공군 소령으로 특별임관되어 공군사관학교 교수의 딸과 결혼하는 등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였지만 북한에 남겨진 부모는 처형되었고 누이들도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남한에서 마냥 편안한 생활을 하기는 어려웠을 그는 2002년 5월, 48살의 젊은 나이에 간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작년 여름 개봉했던 영화 <헌트>에서 이웅평의 귀순 에피소드로 등장한 황정민은 안기부 요원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선보이며 이웅평을 기억하는 X세대의 추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했다. 조사받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꼿꼿하게 자존심을 세우다가도 협상을 하려는 노회한 태도로 순식간에 변하는 황정민의 연기는 짧지만 강렬했다.


이웅평 귀순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인 1987년 2월 김만철 씨 일가 11명이 귀순하면서 1980년대 중반만 해도 남북 대치상황이 극명했던 사건들이 있었고, 우리나라가 분단국가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 꽤 있었는데 이제 너무 오래돼서 까맣게 잊고 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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