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자유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중년을 훌쩍 넘기고 있고 혼자 살고 있지만 지금까지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물론 부모님 두 분 모두 세상을 떠나신 후 그리움과 슬픔에 사무치긴 하지만 그렇다고 외로움이나 쓸쓸함과는 다른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부터 나이 서른 줄에 고시원에서 독립을 시작하기까지 내가 살던 집은 말 그대로 즐거운 우리 집이었다. 사춘기가 되어서도 각자의 방으로 문 닫고 들어가는 일 없이 언제나 네 가족이 모여 앉아 밥 먹고, 이야기하고, TV 보고… 늘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우리 가족의 유전자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유머감각’이어서 서로를 웃기고 웃느라 정신없었기에 가족끼리 모여서 빵빵 터지는 것이 일상이었다. 물론 여느 가정처럼 부모님들도 싸울 때가 있었고, 남매끼리 치고받을 때도 있었고, 야단맞을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반나절이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던가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풀어지곤 했었다.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보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고, 외출하면 얼른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모든 게 완벽한 가족은 없는 것인지라 우리 집에도 단 한 가지 취약한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경제적인 여건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이 서로 상처 주는 말을 퍼부으면서 싸우는 일도 없었고, 우리 남매도 부모님에게 악다구니 쓰면서 대드는 일도 없었다. 이런 어린 시절을 보내서인지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정서가 매우 안정되어 있는 편이다. 크게 화를 내거나 큰소리 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신기한 것은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는데도 내 가정을 이루는 것에 대한 열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성에게 특별히 상처받은 일이 있다거나 비혼으로 살아야겠다는 주관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면 가정을 이룰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했지만 이 나이까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없었으니 아마 이대로 쭈욱 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결혼 적령기에 결혼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처럼 중년의 나이까지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보면 뭔가 괴팍한 데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들 하지만 나를 비롯해서 독거중년들을 보면 별다를 것이 없다. 핑계를 찾자면 그저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버렸다고나 할까. 결혼은 하고 싶을 때 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지나고 보니 결혼은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을 뿐이다. 오히려 내가 보는 시각으로는 그 짧은 순간에 맞춰 결혼한 사람들이 너무 대단하고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스러운 것은 내게 외로움 유전자가 없다는 것이다. 독립해서 생활한 지 십수 년이 지났고, 심지어 머나먼 타국에서 혼자 6년을 살았음에도 가족이 보고 싶다거나, 엄마가 음식을 엄청 잘하셨음에도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먹고 싶다거나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냥 그때그때 적응해서 혼자 잘 살았고, 지금도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혼자 놀기의 달인이라고 해야 할까. 집에서도 시간을 잘 보내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싫증 나면 혼자 외식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야구장에 가거나 여행을 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친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꼭 필요한가 싶지도 않다. 살면서 심심하다고 느꼈던 적이 없어서인지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아직은 없다. 사실은 이제 누군가와 함께 산다고 생각하면 그것만큼 불편한 일이 있을까 싶다. 혼자가 가장 좋은 점은 자유롭다는 것이고, 그 자유를 충분히 누리면서 사는 지금의 삶이 너무나 익숙하고 만족스럽다. 이런 내가 특별한 사람인 걸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그다지 별다른 게 없다.
그저 외로움 유전자가 없는 것일 뿐. 어떤 강박 없이 마음 편하고, 즐겁게 삶을 꾸려가면 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