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아침의 평화가 깨져버린 순간
아점을 준비하는데 꾀가 나서 시간을 미루고 미루다가 뱃속에서 꼬르륵 신호를 버티지 못하고 일단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다가 새로 생긴 샌드위치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사서 돌아오는데 날씨가 너무 화창해서 조금 더 바깥공기를 쐬고 싶어 공원으로 갔다. 요즘은 아침 시간에 집콕 중이라 이 시간에 나와본 적이 없었는데 햇빛은 눈이 부시지만 따갑지는 않았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상쾌했다.
공원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먹는데 순간 이런 게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샌드위치를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책을 읽는데 카톡 한 줄에 행복감이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전세로 내준 아파트 임대차 계약이 연말에 만기가 되는데 재계약을 하려면 전셋값을 낮춰 계약을 할 상황이라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2021년 말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올라서 보증금을 꽤 많이 받게 되었는데 2년 만에 ‘역전세난’이 우려되는 분위기라 우리 집 역시 마찬가지 상황인 것이다. 예상보다 훨씬 큰 목돈을 준비해야 한다는 현실을 확인하고 나니 불과 몇 분 전의 행복감은 후다닥 날아가버리고, 돈 구할 걱정에 맛있게 먹었던 샌드위치가 가슴에 턱 얹혀버린 기분이었다.
예탁금과 적금의 만기일이 내년 1월인데 그전에 해지하면 이자 손해가… 평소 사용하는 입출금 통장 잔고를 확인해 본 지도 오래일 정도로 경제관념이 부실한 내가 비상이 걸린 것이다. 그나마 기본적인 생활비 외 특별한 지출이 없어 통장에 큰 구멍이 나지는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빠듯하지만 어떻게든 준비는 될 것 같았다.
이 나이가 되면 부동산은 기본이고, 주식, 코인까지 통달한 사람들도 많고, 관심도 있기 마련인데 내가 생각해도 나는 그 부분이 매우 취약한 편이다. 허튼 돈을 쓰지 않고 쟁여둘 줄은 알지만 투자에 대해서는 거의 빵점에 가깝다. 나이 들면서 돈의 소중함은 절실하게 깨닫고 있다. 문제는 돈을 어떻게 모으고 불려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려고도 해 봤지만 영 소질이 없었다.
그저 샌드위치 먹을 때까지만 해도 행복했는데 전세금 마련할 생각에 그 순간이 날아간 것이 못내 안타깝기만 하다. 중년이 되어도 여전히 철딱서니가 없는 스스로가 한심하지만 어떡하랴, 이게 나라는 사람인 걸. 사람이 약한 부분이 있으면 강한 부분도 있는 거지, 스스로 위안을 하는 데는 선수니까 이렇게도 살게 되는 것 같다.
이럴 때는 돈 걱정 없이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진다. 그래도 늘 그들을 부러워하는 게 아니라 "이럴 때만" 부러워하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1년 365일을 돈타령을 하고 살게 된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돈이 궁한 것에 대한 걱정을 1년에 한두 번 정도 하는 것에 그치고 있으니 아직은 편안한 삶에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든다. 돈 걱정 없이 사는 사람들은 또 무언가 다른 걱정거리가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