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묘약보다는 정신승리가 효과적일 수도...
30대 중반까지는 어디에 가도 동안(童顔) 소리를 듣곤 했는데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사회생활 할 때는 어려 보인다고 하면 프로페셔널처럼 안 보이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30대 중반에 회사를 그만두고 반년 동안 배낭여행을 다닐 때 학생 같다는 말이 은근히 듣기 좋아지는 걸 보고 ‘아, 나도 이제 나이가 드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젊을 때는 젊어 보인다는 말이 큰 의미가 없지만 나이 들면 젊어 보인다는 말은 기분 좋은 칭찬이 되는 거니까.
언젠가부터 “동안이시네요.”라는 말을 듣는 빈도가 줄어들었고, 내가 거울을 봐도 흰머리와 주름이 보여 확 늙었다 싶다. 생각해 보면 ‘동안’이라는 말을 들었던 이유는 특별한 비결이 있어서가 아니라 치장을 하지 않고 다녀서였던 것 같다. 비싼 옷과 가방 같은 것에 관심도 의미도 두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 시절과 크게 달라진 차림이 아니었고 날씬한 편이었으니 ‘학생 같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나이가 들면서 살이 찌고 치장을 하지 않으니 중년의 외형을 갖추게 된 것이다.
나이 든다는 것은 ‘나 스스로는 변한 게 없는데 남이 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이라는 정의를 보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다. 이 나이가 되었어도 내면은 학창 시절의 나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와 언행을 보면 분명 중년이 된 것을 실감하게 된다. 30대 중반까지는 내가 생각하는 나에 나이가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냥 나는 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TV 뉴스나 생활 다큐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시민들 이름 옆에 (나이)가 나오는 걸 볼 때 혼자 깜짝깜짝 놀란다. 아니, 저렇게 나이 들어보이는 사람이 나보다 한참 젊은 나이라니… 또는 드라마를 볼 때 나와 비슷한 연배의 잘 나갔던 연기자들이 주인공의 부모 역할로 출연하는 걸 보면 역시 나이를 실감하게 된다. 30대까지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는데 지금도 문득문득 내 나이가 낯설게 느껴진다.
이런 괴리감에서 오는 감정 또한 죽음의 5단계와 비슷하게 작용하는데 누군가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를 때 강하게 부정하고, 화를 내다가, 계속 듣다 보면 익숙해지고, 이젠 빼박 중년이구나 싶어 우울하다가 인정하게 되는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 같다. 그런데 원래 극도로 긍정적인 성향인 사람이라서인지 중년의 내 모습에서도 괜찮은 구석을 찾아내곤 한다.
요즘 생각하는 긍정 요소는 너무 마음에 드는 형태로 흰머리와 주름이 생겼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흰머리가 잘 안 보이는데 가르마를 바꾸면 마치 흰머리로 염색한 듯 확 나타나는 모습이 멋져 보인다. 여전히 눈가 주름은 거의 없는데 이마에 가늘게 생긴 주름이 얼굴에 엣지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 정신승리의 원조인 아Q와 맞짱을 뜰 정도로 정신승리법이 남다른 편이긴 하다. 나이 들수록 심신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주는 데는 정신승리만 한 게 없는 것 같다.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 1992>에 등장하는 젊음의 묘약은 존재하지 않는데 거울 들여다보면서 한숨 쉬어봐야 볼수록 공사할 곳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나이 들수록 놓치는 것이 많아지는 게 인생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게 최선이다. 차라리 빠르게 나이를 인정하고 익숙해진다면 또 다른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