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게 비우고 신선한 식재료를 채워요.
1인 가구의 냉장고는 냉장실보다 냉동실이 압도적으로 열일을 하기 마련이다. 마트나 온라인쇼핑에서 할인할 때 냉동제품을 잔뜩 사서 가득 채워놓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열심히 사다 놓은 만큼 부지런히 먹으면 좋겠지만 냉동실에 들어간 냉동제품은 잊고, 같은 메뉴라고 해도 배달앱 주문을 선택할 때가 많다.
피곤하고 귀찮으면 꼼짝하기 싫어지고 배달앱 주문의 유혹을 이겨내기 쉽지 않은 일이니까. 일단 냉동실에 들어간 냉동제품들은 꽤 길게 정해진 소비기한도 까딱하면 넘기기 쉬운데 냉동제품이 바깥에 나오기까지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흐르는 탓이리라.
배달음식에 의존하다 보면 식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가는 걸 느낄 것이다. 요리를 해볼 마음이 있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 분이라면 일단 냉장고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냉장고가 뒤죽박죽이면 음식을 해먹을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에 요리 초보라면 식재료가 한눈에 들어오게 배치하고, 냉장고를 깔끔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냉장고를 가득 채우는 편은 아니지만 한번 맘먹고, 냉장고를 비워보기로 했다. 347ℓ의 작은 냉장고지만 벼르고 벼르다가 마침내 계절이 바뀌는 지금 냉장고 비움을 실행하게 되었다. 외식을 하지 않고 거의 매 끼니요리를 해 먹는 편이라서 냉장고를 비우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데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김치가 없으니 냉장고 비우는 게 비교적 수월했다.
평소 5kg 포기김치를 주문해서 한 달 내로 소진하는데 여름에는 금방 물러지는 것 같아 주문하지 않고 깍두기를 담그거나, 배추 겉절이나 오이김치를 만들어서 먹는 걸로 대신했다. 그나마 만들어둔 것들은 다 먹고 반찬 없을 때 먹기 좋은 마늘장아찌와 오이피클만 한통씩 남았다. 김치통 하나가 없을 뿐인데도 냉장고 공간이 훨씬 여유가 생긴다. 냉동실엔 닭가슴살, 떡갈비, 치킨 한 봉지만 남았다. 막상 냉장고를 비우고 보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한동안 이 상태를 유지하고픈 마음이 든다.
달걀, 우유, 정육, 채소(오이, 당근, 양파, 상추, 토마토 등) 등 늘 냉장고에 사다 두는 식재료 역시 다 먹고 일부러 장을 보지 않았더니 공간이 텅텅 비었다. 당근과 양파 반 개, 두부 1모, 추석 선물로 들어온 사과와 배, 감만 자리를 지킨다. 오랫동안 냉장고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굴소스, 스리라차소스, 핫소스 등 각종 소스를 정리하기 위해 부지런히 먹어치운 결과 케첩과 홀그레인 머스터드 딱 두 가지만 남았다. 아무 생각 없이 방치하다 보면 자주 사용하지 않는 소스류는 냉장고 한 구석에서 부지런히 세균을 만들어내는 일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냉장고를 비우면 냉장고 식재료 파악이 쉬워진다. 냉장고에 어떤 식재료가 남아있는지 정확하게 알면 오래된 재료와 소스 등을 제때 치워서 냉장고를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다. 또한 냉장고에 너무 많은 식재료가 쌓여 있으면 냉장고 청소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다. 그러다 보면 오래된 식재료가 냉장고와 한 몸이 되어 비위생적이고 불결한 상태가 되고 어느 한쪽 구석에서 대참사_뭔가 쏟아져서 지독한 냄새와 얼룩을 만드는 일_가 일어나면 나중에 치우기 힘들다.
우리는 냉장고를 맹신하고, 뭐든 냉장고에 넣은 후 잊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 냉장고에 식재료를 가득 채워 넣다 보면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알 수 없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또 구입한 사실을 잊고 중복구매를 하는 경우도 있다. (냉동실의 미숫가루를 먹어치우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냉장고는 어느 정도 빈 공간이 확보되어야 냉기가 유지된다.
냉장고 비움을 하면서 냉장고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비우고 채워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