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기, 전자레인지 없어도 괜찮아
굳이 불편하지 않다면 쓰지 않을 수도 있더라.
우연히 유튜브 메인에 6년 전 SBS 스페셜 이나가키 에미코 편이 있길래 호기심에 보게 되었다. 3~4분 남짓의 짧은 영상이었지만 재미있어서 도서관에서 그녀의 책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를 대출해서 읽기 시작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충격으로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느껴 전기 사용을 최소화하는 도전이 시작되었다는 동기부여에는 깊은 공감이 생겼다. 나 역시 몇 년 전 우리나라 동해안에 가득 들어찬 원자력 발전소 현황을 보고 절전에 대한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나란 사람은 애초에 전기를 많이 쓰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두 번째 챕터의 제목은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충격(청소기, 전자레인지…)이다. 응? 나는 원래 청소기, 전자레인지 없이 평생 살았는데? 뭔가 이상하다. 물론 청소기와 전자레인지가 가전 필수품이 된 건 이미 오래전이긴 하다. (아마 30~40년 전부터) 그런데 우리 집엔 청소기와 전자레인지가 없었다. 엄마의 고단함과 맞바꾼 것도 사실이지만 가전제품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 TV, 냉장고, 세탁기, 선풍기, 다리미… 이 정도가 다였던 것 같다. 엄마는 혼수로 가져온 일렉트로닉스 다리미를 전압이 110V에서 220V으로 바뀐 후에도 변압기를 사용해서 돌아가실 때까지 50년 넘게 쓰신 분이다. 나중에 청소기나 전자레인지 정도의 소형가전을 들여놓을 정도의 경제적 여력이 생긴 이후에도 그것들은 우리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전자레인지를 썼던 기간은 싱가포르에 머물던 6년이었는데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렌트해서 살고 있는 집에 있던 것이었다. 그나마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용했다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청소기는 그렇다 치고 어떻게 전자레인지를 쓰지 않고 살 수 있냐고 의문인 분들도 있을 텐데 즉석식품을 거의 먹지 않기 때문에 전자레인지를 사용할 일이 없고, 냉동밥 해동은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면 애초에 밥을 냉동하지 않기 때문에 해동할 일이 없다. 일주일에 밥을 두 번 정도 해서 여름에만 냉장고에 보관하고 다른 계절에는 그냥 상온 보관한다.
이나가키 에미코는 5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청소기와 전자레인지를 포기했다는데 나는 평생 쓰지 않았으니 내가 한수 위로구만, 엣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까지는 전기요금이 월평균 2만 원이 넘지 않았는데 올해는 2만 8천 원 정도로 크게 오른 걸 실감하고 있다. 에어컨을 더 많이 가동한 작년 여름 같은 기간에 2만 9천 원이었는데, 세상에 지난달에는 4만 원이 나왔다. 우리나라가 비교적 전기요금과 도시가스요금이 저렴한데도 이제는 공과금이 정말 만만치 않다. 여름에는 전기요금 폭탄, 겨울에는 도시가스요금 폭탄에 시름하는데 난방이 시작되는 계절이 되니 도시가스요금이 걱정이다.
그렇게 입소문이 자자한 다이슨 청소기와 드라이기, 이젠 생활의 필수품이라는 건조기, 의류관리기,… 엄마와 나 같은 소비자만 있다면 다들 망했을 것이 틀림없지만 굳이 불편하지 않다면 종류별로 가전제품을 갖춰놓고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이제 가전제품이 망가져서 바꾸는 게 아니라 싫증 나서 바꾸는 시대에 아직도 망가지기 전까지는 사용하고 싶은 고지식한 소비자가 오히려 답답해진 세상이지만 우리 미래를 빚내서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