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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금빛 제주 01화

난방비의 섬 제주

(가스보일러 줄까, 기름보일러 줄까..)

by 금빛


제주의 봄과 여름은 무지막지하게도 아름답다. 한국에 여름이 왔다하면, 눈앞에 떠오르는 바다는 단연 제주의 낭만 해변가. 반대로 가을 겨울은 무시무시하게도 시린 것이 제주다. 겨울철 제주 여행 중 꼭 며칠은 눈 속에 포옥 잠겨 있곤 했는데, 제주 살이를 맘먹을 땐 왜 이걸 미처 생각지 못했던 건지. 초가을 며칠만 지나면 제주는 속을 모를 여인처럼 시퍼렇게 차가워져 얼른 보일러 틀 때가 되었음을 알린다. 제주의 집들은 가스 아님 기름보일러 둘 중 하나를 쓴다. 가스보일러는 이미 말 다 했고, 내가 일년살이 하던 주택 집은 그나마 낫다는 기름보일러를 썼는데도 기름 한 통 값이 (주유소 기름값에 따라, 즉 경기에 따라) 십삼만 원 내지 이십만 원을 넘어간 적도 있었다. 입주 때 주인아주머니께서는 "아가씨 혼자 사니까 이 한 통이면 석 달은 쓸 거야" 하셨는데 웬걸. 나란 사람 보일러 씀씀이가 헤픈 편인건지 석 달을 갈거라던 한통이 고작 한 달이면 잘도 뚝뚝 떨어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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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이 보일러 때문에 해프닝도 참 많았다. 어느 겨울비가 쏟아지던 아침은, (입주날 딱 한 번 뵌 적 있는) 일층 집 사는 작가님이 부랴부랴 올라 오셔서는 샤워를 좀 하고 가도 되겠느냐고 물으신다. 아침에 줌 미팅이 있는데 마침 기름이 뚝 떨어져 보일러가 꿈쩍을 않는다고, 이 꼴로는 카메라 앞이라도 도무지 설 수가 없다면서. 그렇게 작가님 샤워 한 회 내어드리고 보내는데 그 뿌듯함은 말로 다 못했다. 나 역시 아무 예고 없이 보일러 기름이 다 돼서 샤워는커녕 그 난감한 추위에 맞서야 했던 몇 번의 까만 밤들이 있었으니까. 보일러 기름통은 동네 주유소에서 출동해 채워주시는데, 해가 지면 얄짤없이 닫히는 제주의 주유소에겐 많이 바랄 수도 없는 것이었다. 제주살이란 정말이지 섬살이고, 섬살이란 수많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삶을 말한다. 그 모든 걸 감당 하고도 지켜내고 싶은 가슴속 낭만 이랄까, 뜨거운 열망이란 것이 있는 이여야만 가능한 것이 제주살이. 그렇지만 낭만가들이여, 겨우 여기에서 지레 겁을 먹어선 아니 되오. 이제 겨우 일 번 마친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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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회에 계속..


with love,

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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