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lly Fall
기나긴 여름을 이겨낸 용사들이 노을 아래 춤추고 노래 부르는 계절, 두바이의 환상 가을이 여기에. 두바이에는 화려한 호텔들이 많지만, 내게 가장 좋아하는 호텔이 어디냐 물으면 난 주저 않고 파크 하얏트를 꼽는다. 크릭 너머 두바이 속 유럽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이유지만, 나에게는 그보다도 짙은 추억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 우리가 covid 19라는 단어를 모르던 시절, 난 이곳 대학원의 마지막 학기를 다니며 야무지게 통역 일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세계 속에 한국 브랜드와 제품들을 소개하고 알리는 일은 내게 전율을 주곤 했다. 두바이에 살다 보면 통역의 기회가 많은데, 자신이 없어 두려움에 떨던 첫 경험, 그 바짝 긴장되는 시간을 넘기고 나면 비로소 두바이의 비즈니스 세계를 맛보고 두 국가를 잇는 영광스러운 경험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된다. 더군다나 당시 통역을 맡게 된 한국 기업 분들이 내 또래였다. 한국 친구에게 내가 맡게 될 제품을 물어봤더니 한국에서는 이미 인기템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덕분에 나도 모르게 열성을 지폈더니, 어느새 사흘은 다 지나가 있었고 나에게는 귀한 인연과 두둑한 통역비가 달러로 주어졌다.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표현이 피부로 와닿았던 경험이 그날이었다. 내가 가진 능력을 쓰면서 이로운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그 짜릿함이. 왜 진작 한국에서는 이렇게 살지를 못했을까, 괜히 지난날들을 갸우뚱 돌아보기도 됐다. 육체가 국경을 넘으니 정신마저 자유로워지는 걸까. 용기를 내기에 이보다 더 나은 타이밍이 없단 걸 난 스멀스멀 눈치껏 알아차리게 된다. 그렇게 두바이는 익숙한 껍데기 속 숨기 바쁜 소라게인 나를 한방에 세상 밖으로 꺼내 주었다.
통역 행사가 끝나고 얼마 후, 생일이 다가오던 난 기분 좋게 번 그 돈을 생애 처음으로 날 위한 이벤트를 여는데 쓰고 싶었고, 그곳이 바로 파크 하얏트였다. 생일이란 사실은 숨기고 아끼는 언니와 동생을 두바이로 초대해, 당일 아침부터 크리에이티브 마인드 (Creative Minds)에 들러 헬륨 풍선을 준비해 호텔로 향했다. 진주 같은 동그란 분홍물로 뒤 자석을 가득 채워 크릭을 넘던 그날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마치 도로 위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나의 뒷좌석을 향해 있고, 난 세상 가장 로맨티스트가 된 듯한 그 기분을. 끊임없이 새로운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생겨나고, 여기저기 화려한 공간들로 즐비한 두바이지만, 특별한 추억이 깃든 장소들만큼이나 소중한 건 두바이에 없으니. --
삐걱거리던 주말, 그는 토라진 나를 크릭 사이드를 내다보며 여전히 넉넉한 섬처럼 서있는 이곳으로 데려왔다. 풀장을 낀 바에 앉아 좋아하는 초밥에 망고 디저트까지 해치우고, 지는 태양을 향해 손을 뻗으며 춤추는 행복에 젖은 사람들을 구경한다. 노을이 꺼지는 순간까지 지긋이 기다렸다가 밤 산책을 가려 일어나는 우리에게 그들은 물었다. 분위기는 이제 시작인데, 떠나겠다고? 그럼 우린 웃으며,
"그건 다음을 위해 남겨둘게. 훌륭한 곳에서는 가을을 조금 더 길게, 오래 즐기려고."
https://youtu.be/P9KWNN9B078?si=VQFoQhuG_K2EZXFV
with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