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언니와 아는 동생들이 좋아했다던 그녀의 글들은 싸이월드(Cyworld) 다이어리, 혹은 페이스북(Facebook)에 짧게 올려둔 포스팅들이었다. 오늘날 그녀는 네이버 블로그에 일상 이야기를 끄적이고 있다. 이는 마약과도 같아서 ‘누가 보면 어쩌려고’ 하는 생각 따위는 낄 수도 없게, 기록하는 일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고 했다 (이유 불문, 브레이크 없음 주의). 블로그에서 예쁜 것만 추려내 감성적인 사진첩을 만드는 일이 여태 인스타그램(Instagram)이었다. 그러다 뭔가, 그래도 글쟁이들이 모인 플랫폼에서 놀아 보아야 하지 않은가 하여 시작한 것이 브런치(Brunch). 브런치 작가가 되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다. 최근, 드디어 브런치 작가가 됐다며 축하해 달라는 분들을 하루 걸러 만나는 스레드(Threads) 덕분에 그 기억은 되살아난다. 이제와 말하지만, 제주 살이를 시작하던 시절에 그녀는 써보고 싶은 글들이 많았다. 그러던 중에 알고 있던 호주식 커피를 만들던 한 카페 사장님이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을 보고, 글 좀 쓴다 생각한 그녀도 따라 작가 신청을 몇 번이고 했었는데 모두 헛수고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 년 후, 브런치로부터 합격 메일을 받은 건 두바이로 와 총영사관에 입사 후였다.
엑스포 후 들어간 광고 회사를 뒤도 안 보고 나오고, 총영사관 입사 전까지 내게는 애벌레가 한 꺼풀을 벗어내는 듯한 일이 있었다. 당시엔 그게 무엇인지 모르고 내디뎠던 작은 시도였는데, 지금 돌아보면 나는 참 용기 있었던 것이다. --- 무식하기에 가능한 것들이 있다. 때로 위대한 것은 우릴 주눅 들게 하는데, 되려 그게 무언지 모르면 그저 용감해지는 거다. 그 위대한 일을 난 그 공백기 백수 시절에 해냈다. 5주간 매주 목요일, 두바이 시간 오후 두 시 반이 되면 컴퓨터 스크린 앞에 앉아 그녀들을 만난다.
오랜 시간을 집에서만 요가를 해오다 처음으로 오프라인 요가 클래스를 나갔을 때 느낌이 그랬다. 그것은 나의 세계의 확장이었다. 나로 가득 차서, 혹은 수줍음과 불편함을 핑계로 꽁꽁 싸매고 있던 동안은 그 확장의 느낌을 결코 알지 못했다. 시원하고, 더 쉽고, 팽창하는, 혼자가 아닌 넉넉한 그 느낌.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한 두 해가 지나 돌아보니, 난 브런치 작가를 너머 첫 번째 전자책을 냈고, 지금은 이렇게 나의 에세이 책을 쓰고 있다. 이 모든 게 우연찮게 합류한 그 글쓰기 클래스 덕분이 아닐까, 그 수업이 없었다면 아직도 헤매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조금이라도 당신의 호기심을 끄는 것이 있다면 주저 없이 한번 해보자. 조금 불편해도, 장바구니 들고 새벽 장터로 한번 나가보자. 당신을 마치 운명처럼 원하는 곳으로 꿰어줄 우연의 실이 어떤 모양으로 올지 모르니까.
with love,